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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경인 WIDE] "다 잡아가면 농사는…" 절박한 농촌의 절규

'미등록 외국인' 단속에 속타는 농가

시민 10명 중 2명꼴로 농업에 종사하는 여주시에서 친환경 고구마·감자농사를 짓는 고석재(57)씨의 '농사시계'는 지난 2월1일부로 사실상 멈췄다.

법무부 등 정부 관계자들이 고씨의 농장에 들이닥쳐 고씨와 함께 일하는 미등록(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12명을 연행해간 날이었다. 그로부터 3주 뒤 이들의 숙소에서 6명이 더 붙잡혀갔다.

고씨는 "'합법' 외국인을 구하려고 백방 노력해도 올 사람이 없다. 수십 년 동안 관행처럼 이어져 이제 여기(여주) 농촌인력의 90% 이상이 미등록 외국인들인데, 대책 없이 잡아가면 다 죽으라는 거냐"고 울먹였다. 그는 4천만원에 이르는 벌금도 물게 됐다고 한다.

"합법적 인력 백방 구해도 없어"
여주 고구마 창고, 일손 없어 부패

지난 24일 찾은 고씨 농장 창고에는 썩어 부패가 진행되는 고구마가 플라스틱 보관 박스에 수북했다. 상품성을 잃어 이미 쭈그러진 고구마를 손으로 누르니 끈끈한 진물이 나왔다. 지난해 수확한 고구마를 선별·세척해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데 일손이 없어 놔둔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고구마 농사의 출발인 종자 놓는 시기(3월 중순)를 놓쳐 결국 한해 농사를 접은 판이다. 여주 농가에서 나오는 농작물 가운데 고구마의 비중은 매년 30%를 웃돌 만큼 비중이 크다.

 농번기 농촌 노동력의 대다수를 이루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 단속에 경기도 농가들이 곡소리를 내고 있다. 농민들은 농촌의 현실을 모르는 '단속 일변도' 정책이 농촌을 고사시킬 거라고 이구동성으로 호소한다.

이천시에서 35년 동안 인삼농사를 지어온 유근무(56)씨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지금이 6년근 인삼의 초목을 놓아야 할 시기인데, 기존처럼 미등록 외국인들을 쓸 수 없어 농사 계획에 비상이 걸렸다. 유씨는 "나무 심는 지금 때를 놓치면 6년 농사를 망치게 되는 수준"이라며 "동네 사람들을 수소문해 급히 인력을 끌어오지만, 평소 10분의 1밖에 없고 숙련도의 차이도 있다"고 탄식했다.

정부는 대안없이 고강도 합동단속
현실에 맞는 '계절근로자제' 요구

 농민들의 부담을 키우는 것은 코로나19 완화로 지난해 말부터 재개된 정부 부처 중심의 '불법체류 외국인 합동단속'이다. 법무부와 경찰청, 고용노동부 등은 앞서 지난해 10~12월 합동 단속을 벌인 데 이어, 농번기인 지난 3월 2개월여의 합동단속에 들어갔다.

김영준 여주농민회 정책실장은 "2일 특별단속 이후 여주에서 130명을 잡아간 것으로 파악될 정도로 수위가 높다"고 날을 세웠다.

그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을 쓰게 해달라는 게 농민들의 요구는 아니다. 농번기 계절 수요에 인력이 집중되는 만큼, 농촌 현실에 맞는 계절 근로자 제도를 만들어달라는 게 이들 주장의 요지다.

이들은 지난 17일 여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단속 위주 편의주의적 발상은 농촌 붕괴를 가속화할 뿐이다. 안정적인 농업 인력 수급 제도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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