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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단독] '투기세력 표적'된 달성 공공임대주택…또 임차 보증금 400억 날릴 판

유가읍에 이어 현풍읍에서도 보증 사고
시세보다 저렴하게 매입 후 수익 위해 불·탈법하다 부도
경매로 임차인 쫓겨날 위기…피해 반복돼도 정부 대책 없어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도입된 공공임대주택을 상대로 한 부동산 투기 세력의 탈‧불법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달성군 유가읍 공공임대주택 부도 사태(매일신문 2월 7일·26일·28일·3월 5일)에 이어 인근 공공임대주택에서도 임차인 350여 가구의 보증금 400억원가량이 증발할 위기에 처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테이프 바른 누더기 집이 공공임대주택?

13일 오후 1시에 방문한 현풍읍 한 공공임대주택 임차인 장모(35) 씨의 욕실은 마치 태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어지러웠다. 벽면에는 청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바닥에는 거울을 비롯한 욕실 도구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세면대도 한쪽 귀퉁이가 깨져 있었고, 오른쪽 벽면도 타일이 갈라지고 부서진 모습이었다.

지난해 12월 장 씨가 아이를 씻기려고 욕실에 들어가려던 찰나에 전면 거울이 아래로 떨어졌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장 씨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이 아파트는 5년 분양 전환 공공임대주택으로 민간 건설사가 관리를 맡고 있지만 임차인들은 건설사로부터 집의 하자 보수를 제대로 받지 못해 누더기가 된 집에 살고 있다.

장 씨는 "임대사업자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고 관리사무소가 임시방편으로 벽면에 청테이프를 발라줬다"며 "사비로 고치고 영수증을 받아두라는데 나중에 임대사업자에게 돌려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이 아파트 임대사업자는 3년 전부터 아파트 보수에 손을 놓는 바람에 180가구의 화장실 타일이 갈라지고 70여 가구의 보일러가 고장 났다.

매일신문은 그동안 달성군 유가읍 공공임대주택 부도 사태를 연이어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인근에 있는 또 다른 공공임대주택도 투기 세력의 표적이 된 것을 확인했다. 비슷한 피해를 입은 공공임대주택은 792가구 규모로 달성군 현풍읍에 2015년 준공됐으며 사기 피해가 발생한 공공임대주택과는 걸어서 10분 거리(792m)에 떨어져 있다. 무주택 서민을 위해 지어진 공공임대주택에서 비슷한 피해가 반복되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대책은 없는 실정이다.

◆ 유사한 범죄 수법에 353가구 또 당했다

두 공공임대주택이 투기 세력의 표적이 된 과정은 유사했다. 첫번째 피해가 발생한 공공임대주택은 A 건설사가 지난 2018년 단돈 5천만원으로 사들였다. 시세보다 저렴하게 매입한 후 수익을 올리기 위해 무더기 분양 부적격 판정을 내는 등 임차인을 상대로 온갖 불·탈법을 벌였다.

지난 2020년 자금난에 시달린 A 건설사는 결국 임차인들의 822억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했고 전남 무안과 전북 군산 등에서도 비슷한 보증사고를 냈다. A 건설사 임원들은 임차인 분양 전환 대금 73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이 무렵 A 건설사 전임 대표 조모 씨가 또 다른 회사를 설립해 인근에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17개 은행으로부터 600억원을 빌려 매입했다. 당시 조 씨는 A 건설사 사업에서는 이미 손을 뗀 상태라 기소되지도 않았다. 수사기관 등의 허술한 대응이 또 다른 범죄로 이어진 것이다.

조 씨가 설립한 B 건설사는 A 건설사와 마찬가지로 적은 자본금으로 무리하게 아파트를 매입해 현재 부도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B 건설사는 자본 잠식 상태로 20개 은행에 갚아야 할 돈 340억원을 포함해 부채가 800억원이 넘는다.

현재 추가 피해가 발생한 공공임대주택에는 723가구가 살고 있고, 이 중 370가구가 분양 전환을 완료했다. 문제는 공실 세대를 제외한 임차 가구 353가구인데, 이들의 보증금은 최소 9천200만원부터 최대 1억4천만원까지로 파악됐다. 만약 B 건설사가 부도 처리되면 임차 세대인 353가구의 보증금 약 400억원가량도 증발할 위기다. 이미 B 건설사는 지난해 10월에 임차인들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보증사고 업체로 등록됐다.

공공임대주택을 담보로 B 건설사에 돈을 빌려준 17개 은행도 채권단을 구성해 B 건설사를 압박하고 있다. 채권단은 B 건설사가 갚지 못한 돈을 회수하기 위해 전체 792가구 가운데 분양전환 완료 가구를 제외한 공실과 임차 가구를 상대로 경매 절차에 돌입했다. 관련 소송이 진행되고 있지만 절차가 완료되면 현재 살고 있는 임차 가구들은 쫓겨날 처지다.

하루아침에 쫓겨날 처지에 놓인 임차인 김성수(35) 씨는 "전세 대출 만기가 돌아오고 있는데 혹시라도 대출 연장이 되지 않으면 당장 돈을 갚을 수 없어 걱정이 크다"며 "각종 서류를 작성하고 소송을 진행하느라 직장 생활에도 영향이 있다"고 호소했다.

◆ 사실상 잠적한 건설사…지자체, 정부는 뒷짐만

B 건설사는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들이 빚을 갚지도 않고 소유권 이전도 해주지 않은 채 사실상 잠적한 상태다. 임차인뿐 아니라 관리사무소, 채권단, 심지어 달성군조차도 B 건설사 측 직원들과 연락이 잘 닿지 않는 상태라고 입을 모았다.

달성군 관계자는 "B 건설사가 아파트 관리비인 장기수선충당금을 지난해 8월부터 내지 않고 있어 독촉 공문을 보내고 있는데 계속 반송되고 있다"며 "최근에는 담당자와도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라고 전했다.

또 다른 공공임대주택에서 보증 사고가 발생했지만 달성군과 국토교통부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달성군은 "B 건설사가 공식적으로 부도처리 된 상황이 아니라서 지자체가 마땅히 처리할 방법은 없다"며 "임차인들이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 역시 "임대사업자가 부도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임차인들이 소송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회사가 부도 처리되려면 주택도시보증공사로부터 보증보험 가입이 거절된다거나 파산하는 등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B 건설사는 현재 이에 해당하지 않아 공식적인 부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매일신문 취재진도 빚을 상환하지 못해 일부 세대가 경매에 넘어간 사실 등에 관해 B 건설사의 입장을 듣고자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임차인 대표 여창준(45) 씨는 "정부에서 여러 주택 공급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국민 세금으로 지은 공공임대주택 관리는 엉망으로 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나서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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