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놓인 절이 있었다. 지금은 폐사지로 변해 석조물만이 남아 있어 이곳이 절터였음을 그저 추측할 뿐이다. 천천히 자연을 거닐다 절터에 다다르면 거대한 느티나무가 우리를 기다린다. 느티나무를 따라 마저 올라가 보면 오랜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거돈사지 삼층석탑을 만날 수 있다. 맑은 하늘 아래 서 있는 탑 앞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배례식이 놓여있다. 그 위에 쌓여진 흙과 모래, 얼마나 오랜 시간 이 곳을 지켰는지 쉽사리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양길수, 김병기, 박종수 작가는 남다른 전통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석탑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 오는 4월까지 원주전통문화교육원 전시실에서 ‘석탑이 있는 풍경, 거돈사 터 삼층석탑’을 주제로 사진전을 펼친다.
고대 사원에서 중문을 지나 제일 처음 만나는 것은 금당 앞에 세워진 불탑. 사원의 불탑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곳으로 사원 건축에서 가장 정성을 다해 공들여 만든 예술성 높은 석조물이란다. 특히 거돈사 삼층석탑은 사원이 처음 세워진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신라 석탑의 양식을 충실하게 반영해 경주에 놓인 불국사 삼층석탑을 떠올리게 한다. 놀랍게도 석탑은 바라보는 방향과 계절, 시간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는 봄에서 여름, 가을, 겨울에 이르기 까지 석탑이 담은 계절의 변화를 통해 역사가 간직한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양길수 작가는 오랜 시간 거돈사지 삼층석탑 주변을 머물며 밤마다 찾아오는 별에 몸을 맡겼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별들의 물음에 답하듯 최근 이곳은 작가들의 ‘별 사진 성지(星地)’가 됐다. 또 거돈사 터에 떨어지는 유성과 6,800년마다 한번씩 지구 가까이에 온다는 니오와이즈 혜성을 포착한 사진도 만날 수 있어 눈길을 끈다. 불교가 전해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넘어 긴 시간을 그 자리에서 굳건히 버틴 석탑의 모습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박종수 작가는 “거돈사지 삼층석탑은 원주의 도시 정체성이 담긴 곳이지만 아직까지 그 가치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며 “역사의 가치를 알리고, 1,000여년 전 신라와 고려 사람들이 거돈사를 거닐며 보았던 은하수와 별을 통해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