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 강제로 군대에 끌려가거나 추후 프락치(밀정) 역할을 할 것을 강요를 받는 이른바 ‘녹화사업’을 당했던 강원도내 대학생들이 전국 지방대 중 가장 많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 과정에서 대부분 고문에 가까운 폭행을 당하는 등 인권유린을 당한 것으로 확인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상조사에 나섰다.
20일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 중인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공작 사건 진실 규명 자료’에 따르면 당시 보안사 명부에 작성된 2,922명 중 55명이 강원대 재학생이었다. 지방대 중에서는 가장 많은 인원이다. 강원대 외에도 강릉대 3명, 강릉간호전문대 1명, 관동대 2명 등 도내에서만 총 61명이 당시 희생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학생 강제징집은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돼 전두환 정권까지 이어진 인권침해 사건으로, 과거사 사건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발생했다는 것이 진실화해위원회의 설명이다.
전국적으로 1,000명 이상의 청년과 학생들이 불법적 절차에 따라 징집됐고, 군에 입대한 후에도 사회와 격리돼 장기간 구금 및 고문, 협박, 회유 등에 시달렸다. 당시 보안사령부는 민주화 운동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강제징집한 대학생들에게 사회 전반에 걸친 사찰의 임무를 부여하는 '프락치'행위도 강요했다.
실제로 당시 강원대생으로 군에 가 있다가 프락치 강요를 받은 전모씨는 진실화해위원회에서의 조사에서 " (중략)4일가량 손을 뒤로 돌려서 꼼짝 못하게 묶고, 혀를 깨물까봐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은 후 몽둥이로 등과 허벅지, 엉덩이, 팔 등을 계속 때려 온 몸에 피멍이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보안대에 끌려가 열흘넘게 당시 강원대 서클이었던 ‘민중문화연구회’ 등에 대해 집중 추궁받기도 했다.
강원대 재학 중 강제징집당한 최모씨도 "1982년 성조기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보름여만에 강제징집됐다"며 "그러다 병장 말년 즈음 5일간 보안대에 끌려가 있었는데 당시를 떠올려보면 힘들었던 탓인지 사람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어두운 방 안과 흐릿한 불빛 정도만 생각난다"고 말했다.
이들 외에도 강원대생이었던 황모씨, 박모씨, 유모씨, 전모씨 등이 서울 후암동 분실로 불려가 대학내의 서클 등의 조직과 관련한 집중 추궁을 당했다. 가혹한 고문과 협박, 폭행도 따라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같은 전두환 정권의 '프락치 공작'에 대해 "학교 친구와 선후배를 배신하게 만드는 '현대판 가스라이팅'"이라고 규정했다. 이와 관련, 진실화해위원회는 강제징집과 사찰의 임무를 강제로 부여한 프락치 행위 모두 국가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보고, 조만간 전체회의를 열어 이에 대한 처리 여부 등을 논의를 할 예정이다.
최윤 강원민주재단 이사장은 “강원대는 1980년 5·18 광주민주항쟁 이후 지속적으로 학생들의 조직적인 민주화 요구가 있어왔고 1982년 4월 성조기 소각사건 이후에는 전국 대학 가운데 시범케이스처럼 무자비한 탄압을 받았다”면서 “당시 고통스러운 인권유린을 당했던 이들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