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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신들의 뜨락서 울려퍼진 시와 음악의 향연

(3)제주문학관(下)
고향의 바다를 노래하는 시
해녀의 고단한 삶을 담은 춤
감미로운 플루트·색소폰 연주
자연 벗삼은 힐링 공연 펼쳐져

 

플루트연주를 듣는다. 플루티스트 이관홍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OST로 알려진 <형을 위한노래> 와 ‘나와 호랑이님’ OST고 <호랑수월가>를 연주했다. 1만8000 신들이 이 뜨락에 있다면 플루트의 소리에 맞춰 춤을 추지 않을까. 관객 중에서 연인이 나란히 앉아 있다면 두 손을 꼭 잡고 눈빛으로 사랑을 주고받을 만큼 아름다운 곡이다.

플루트 연주자의 모습이 연못에 반영으로 나타나니 마치 두 사람이 연주하는 것 같았다.

김정희 낭송가가 조영자 시 ‘반공일엔 물질 간다’ ‘강정 그 이후’ 두 편을 낭송했다.

토요일은 반공일

안경 대신 수경 쓰는 날

칠·팔순 이미 넘긴 테왁 무리에 나도 섞여

단단한 납덩이 시간 파도에 묶어본다

육지 날씬 상관마라

바당만 맑으면 된다

내 동생 학비마저 내어주는 바다 한켠

점심을 거른 낮달이 숨비소리 토한다

눈 들면 고향 바다

개군기지 깃발들

새별코지 끝자락에 테왁들 어디갔나

일강정 구럼비 바위, 그 바위는 어디갔나

꺄르르르 꺄르르르

봄 바다 저 윤슬아

하얀 교복 하얀 칼라 그리고 하얀 물소중이

중년의 아주망 되어 서성이는 붉은발말똥게

-조영자 시인의 ‘반공일엔 물질 간다’전문

그래도 고향이다, 강정은 고향이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오월동주 같은건지

범섬도 돌고래 떼도 비켜 가는 강정 바다

나는 단발머리 중학생 해녀였다

외상으로 들고 온 테왁 하나 둘러매면

마을은 바다 한 켠을 나에게 내주었다.

야트막한 그 바다 자그마한 숨비소리

서귀포 매일시장 보말 몇 줌 팔고 나면

못 본 척 등을 돌리던 웃드르 출신 어머니

노랑 깃발 태극 깃발 여태껏 펄럭여도

강정천 줄기 따라 은어 떼는 돌아왔다

밤이면 방파제 너머 집어등도 돌아왔다.

-조영자 시인의 ‘강정 그 이후’전문

시 두 편이 모두 고향 바다를 노래한다. 반공일날 바다에 물질가는 어린 해녀의 고향에 있던 구럼비 바위는 어디가고 이제 노랑 깃발, 태극 깃발 펄럭이는 곳이 되었다.
 

 

이번에는 장경숙 선생의 춤사위가 너울거린다. 흰 적삼 입고 테왁 매고 나오는 발걸음 자체가 예술이다. 버선코처럼 발끝을 바짝 들었다.

사뿐히 내려놓는 그 걸음이 춤꾼임을 알려준다.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이어도 사나’의 노래와 조성구 선생의 북장단에 맞추어 몸으로 해녀의 삶을 노래한다. 빙그르르 돌다가 소라도 캐고 미역도 캔다. 해녀의 물 숨을 참는다. 해녀의 삶의 고단함을 흐느적거리는 몸짓으로 말한다. 마치 바닷속으로 헤엄쳐가듯 연못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녀에게 연못은 바다다. 온몸으로 바닷속을 누빈다. 테왁과 망사리를 힘차게 걷어 올린다.

춤사위가 끝나자 이번에는 정아 어멍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모슬포에서 왔수다. 열두 살 때 해녀를 시작했고 열아홉 살에 시집간 정아 어멍은 밭일, 바당일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살았수다.

‘서방 생각하면 속에서 천 불이 나마씨, 폼생폼사로 살다가 일찍 저 세상으로 가버렸수다.’

끝날 줄 모르는 이야기에 사회자가 한마디 한다.

“정아 어멍, 인제 그만 고릅써, 다음 사름도 해살거 마씨.”

그 재치에 관객들도 깔깔깔 웃는다.

“아이고 말허당 보난 시간 가는 줄 몰랐수다게, 미안허우다양, 고맙수다.” 서둘러 테왁과 망사리를 챙기고 무대 밖으로 나간다.

노래를 듣는 순서다. 윤경희 님이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을 부른다.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오면 벌판에 한 아이

달려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새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그이는 아름다운 사람이어라

-가수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전문

한 편의 시가 노래로 울려 퍼지니 관객들도 모두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흥얼거린다. 감성이 풀풀 묻어나는 목소리다. 관객과 함께 손뼉을 치며 ‘조개껍질 묶어’를 부를 때는 통기타를 치며 노래했던 윤형주 가수가 생각났다.
 

 

강상훈 선생의 시 낭송은 여름밤의 낭만 그 자체였다. 그는 무대로 나오더니 연못에 발을 담그고 걸터앉았다.

소주 한 병이 공짜

막 금주를 결심하고 나섰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이 감자탕 드시면 소주 한 병 공짜란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삶이 이렇게 난감해도 되는 것인가?

날은 또 왜 이리 꾸물거리는가

막 피어나려는 싹수를

이렇게 싹뚝 베어내도 되는 것인가

짧은 순간 만상이 교차한다

술을 끊으면 술과 함께 덩달아

끊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 한둘이 어디 그냥 한둘인가

세상에 술을 공짜로 준다는데

모질게 끊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있는가불혹의 뚝심이 이리도 무거워서야

나는 얕고 얕아서 금방 무너질 것이란 걸

저 감자탕집이 이 세상이

환히 날 꿰뚫게 보여줘야 한다

가자, 호락호락하게(문학의 전당, 2011)

-임희구 시인의 ‘소주 한 병이 공짜’전문

는 말에는 누구라도 솔깃해진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하는 어른들 말씀이 떠오른다. 마지막 공연은 최경숙 님의 색소폰연주다. 색소폰 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가 흘러나오니 모두가 들썩들썩하며 손뼉을 친다.

신들의 뜨락에서 울려퍼진 색소폰 소리와 춤사위, 낭랑하게 흐르는 시와 노래, 이 모두가 제주문학관 개관 300일을 기념하는 푸닥거리로 충분했다. 돌과 바람과 연못과 소나무가 있는 이곳에서 음악과 시, 춤과 노래, 연주를 종합선물로 받았으니 오늘도 복된 날이다.

▲사회=정민자 ▲소금연주=현희순, 전병규

▲플루트=이관홍 ▲색소폰=최경숙

▲시낭송=강상훈, 김정아, 김정희

▲성악=윤경희 ▲즉흥춤=장경숙

▲북장단=조성구 ▲사진=허영숙 ▲글=김순신


제주일보 jjnews1945@jejusin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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