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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유럽 인문학 기행] 800년 간 이어져 온 성당 탑지기의 트럼펫 연주

[유럽 인문학 기행-폴란드] 크라쿠프 성모 마리아 성당의 탑지기

크라쿠프 구시가지 스타레 미아스토의 중심 광장인 리넥 규브니에는 성모 마리아 성당이 있다. 폴란드어로는 코스치올 마리아스키이다. 성당에는 탑이 두 개 있다. 두 탑의 높이는 다르다. 왼쪽 탑이 더 높고 조금 더 정교하다. 왼쪽 탑에서는 하루에 4번 트럼펫 연주가 펼쳐진다. 동서남북 각 방향으로 한 번씩이다. 연주는 끝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갑자기 도중에 뚝 하고 끊어진다.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탑지기가 연주한 트럼펫

“성모 마리아시여, 오늘도 몽골의 침입에서 크라쿠프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소서.”

13세기 칭기즈칸의 몽골이 유럽 대륙을 휘몰아치고 있을 때였다. 성모 마리아 성당에서 일하던 탑지기가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탑에 올라가 먼 들판을 바라보면서 하루종일 몽골 군대가 쳐들어오는지 살펴보았다.

 

크라쿠프는 이전에 몽골 군대의 침략으로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마을은 모두 불타 잿더미로 변했고, 수많은 사람이 학살당했다. 가축은 몰살됐고, 논과 밭은 수년간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졌다. 사람들은 몽골의 재침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탑지기를 올려 보내 적의 침입을 살피게 한 것이었다.

 

어느 날의 일이었다. 탑지기는 평소처럼 두 손으로 눈 위를 가리고 먼 들판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흙먼지가 엄청나게 일고 있었다. 몽골 군대가 급하게 쳐들어오고 있는 게 분명했다. 평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공포감이 순식간에 그의 가슴을 얼게 만들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몽골의 침입을 알릴 수 있을까? 밖에 나간 사람들이 다 들어오게 해서 성문을 닫고,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무기를 들고 성벽 위로 올라가 싸울 준비를 하게 만들어야 할 텐데….’

탑지기는 탑 아래로 내려가 거리를 다니며 ‘몽골이 다시 쳐들어왔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건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시간만 걸릴 뿐 효과가 떨어질 것 같았다.

탑지기는 성당에 있는 트럼펫을 생각했다. 성당의 행사나 시내에서 벌어지는 퍼레이드에 사용하는 악기였다.

 

‘그래! 트럼펫을 시끄럽게 연주하면 되겠어.’

 

탑지기는 성당으로 내려가 트럼펫을 챙겨 다시 탑으로 올라갔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가 연주한 곡목은 성당의 신부에게 배운 ‘헤이나우 마리아츠키’였다. ‘성모 마리아의 새벽’이라는 곡이었다.

탑지기는 트럼펫을 계속해서 연주했다. 평범한 음조가 아니라 아주 다급하게 연주를 이어갔다. 시내를 오가던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탑지기가 왜 저러지?”

음악이 계속 이어지자 그제야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왕궁에서도 트럼펫 연주를 듣고 전령을 탑지기에게 보냈다.

“몽골 군대가 멀리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어서 성문을 닫고 싸울 준비를 해야 합니다.”

 

 

 

탑지기의 설명을 들은 전령은 서둘러 왕에게 돌아가 몽골 침략 소식을 전했다. 왕은 신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성 밖에 나간 사람들을 모두 불러들이고 성문을 닫도록 하라. 병사들로 하여금 무기를 들고 성벽으로 올라가 전투 준비를 하라고 지시하라. 백성들에게도 적이 쳐들어왔다는 사실을 알리고, 싸울 수 있는 남자들은 모두 성벽에 올라 가라고 하라.”

왕의 전갈을 받은 병사들은 서둘러 무기를 들고 성벽으로 올라가 깃발을 높이 걸었다. 몽골이 쳐들어온 사실을 알고 있으며 끝까지 싸울 준비를 마쳤다는 사실을 몽골 군대에게 알리려는 뜻이었다.

 

■몽골 군대를 물리치고

몽골 군대는 성문이 닫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크라쿠프 성벽 아래에까지 쳐들어왔다. 그들은 전열을 정비한 뒤 곧바로 성을 향해 진격했다.

크라쿠프의 궁사들은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전쟁에 대비해 화살을 충분히 비축했기 때문에 화살은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노인들은 새총으로 돌과 뾰족한 쇳조각을 쏘았다.

탑지기는 크라쿠프 병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성모 마리아의 새벽’을 계속 연주했다. 병사들은 트럼펫 음악을 들으면서 성모 마리아의 은총을 생각했다. 집에서 문을 걸어 잠근 채 덜덜 떨고 있는 가족을 생각했고, 오래전 몽골 군대의 침략으로 불타버린 크라쿠프의 과거를 생각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어. 항복해도 죽을 게 뻔해. 그럴 바에야 끝까지 싸우다 죽는 게 나아.”

 

 

수천 개의 화살이 몽골 병사들 머리로 날아갔다. 처음에는 화살 따위는 겁나지도 않는다는 듯 달려들던 몽골 병사들은 하나 둘씩 쓰러졌다. 나중에는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들은 성벽에는 다가갈 수도 없었다. 사상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몽골 장군은 할 수 없이 퇴각하라고 명령했다. 이렇게 해서 크라쿠프는 두 번째 전화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와! 몽골 군대가 물러간다. 우리가 이겼다. 크라쿠프를 지켰다. 우리는 이제 안전하다. 국왕폐하 만세, 크라쿠프 만세!”

몽골 군대가 물러갔다는 소식을 들은 국왕은 크라쿠프를 지키는 데 큰 공을 세운 탑지기를 데려오라고 했다. 그에게 큰 상을 내릴 작정이었다. 전령은 다시 성모 마리아 성당의 탑으로 올라갔다.

불행하게도 탑지기는 탑 꼭대기에서 쓰러져 있었다. 트럼펫을 입에 물고 손가락으로는 악기를 잡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그의 목에는 몽골 병사가 쏜 화살 하나가 꽂혀 있었다. 탑지기의 트럼펫 소리가 크라쿠프 군대의 사기를 드높인다는 사실을 깨달은 몽골 장군이 탑에 화살을 집중적으로 난사하라고 지시한 탓이었다.

 

 

탑지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왕은 매우 슬펐다. 그는 크라쿠프를 살린 탑지기를 영원히 잊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포고령을 내렸다.

“앞으로 크라쿠프가 존재하는 한 성모 마리아 성당의 탑에서 매일 트럼펫으로 ‘성모 마리아의 새벽’을 연주하도록 하겠다.”

그날 이후 800년 동안 ‘성모 마리아의 새벽’은 매일 성모 마리아 성당의 탑에서 울려 퍼지게 됐다. 그 덕분에 크라쿠프 사람들은 탑지기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영원히 잊지 않게 됐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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