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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굿모닝 예향] 음악·문학·미술·바다…통영으로 떠나는 예술여행

소설가 ‘박경리 기념관’ 토지 친필원고·여권·편지 등 유품 전시
친필악보·여권 등 170점…세월의 흔적 새겨진 ‘윤이상 기념관’
용화사 가는 길 유럽풍 외관 ‘전혁림 미술관’ 700개 타일 인상적
원로조각가 심문섭 ‘조각의 집’ 예술작품 속에서 꿈같은 하룻밤

 

본격적인 여름휴가시즌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해외여행과 유명 피서지로 떠날 계획에 부풀었던 이들의 마음을 위축시키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안전하면서도 색다른 추억을 쌓을 수 있는 테마여행에 눈을 돌리는 게 어떨까. 산과 바다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도 좋지만 미술관이나 문학관 등 거장들의 발자취를 되돌아 보는 예술여행은 번잡하지 않으면서도 일상의 피로를 씻을 수 있는 휴식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함께 떠나볼 곳은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통영이다. 바다와 섬, 그리고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예술의 도시, 통영으로 떠나보자.

 

 

#박경리 기념관과 길

통영을 대표하는 예술인은 소설가 박경리(1926-2008)다. 20대 이후 대부분 서울 등 통영 밖에서 생활했지만,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곳은 단연 통영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에서 통영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소설 ‘김약국의 딸들’이다. 영화와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토지’ 다음으로 많이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다. 실제로 통영 시내에는 ‘박경리 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길 위에 표시된 주요 명소 대부분이 ‘김약국의 딸들’에 등장한다. 조선시대 임란 이후 삼도수군통제사가 있던 세병관과 주변 간창골 새미를 비롯해 배가 드나드는 강구안 항구와 뒷골목, 지금은 벽화마을로 유명해진 동피랑의 서쪽에 있는 언덕이라서 서피랑으로 불리는 서문고개, 서포루 등이 박경리 길에 속한다. 특히 지난 2010년 4월 고인의 묘가 있는 신전리 인근 4천465㎡ 부지에 들어선 박경리 기념관은 매년 평균 10만 여 명이 찾는 통영시의 대표 관광지다.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의 기념관 1층 전시실에는 고인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 나오는 마을을 복원한 모형과 함께 고인의 대표작 ‘토지’ 친필원고와 여권, 편지 등의 유품이 전시돼 있다. 또한 고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영상실, 고인이 집필한 책과 선생의 작품에 관한 논문 등을 모아 놓은 자료실도 마련돼 관광객들이 고인의 문학세계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윤이상 기념관

‘집은 돌아오는 곳이다/ 배를 타고 지구 반대편까지 떠났다가 돌아오고/ 죽어서도 돌아오는 곳이 집이다/(중략) 어제의 집이 있어 오늘의 집이 있듯/오늘의 집이 있어 내일의 집이 있을 것이니/여기 영원히 살아있을 윤이상의 집이 있다/이 집에 20세기 최고의 음악가/윤이상 선생이 살고 있다’(시인 정일근의 ‘이집에 윤이상 선생이 살고 있다’중에서)

통영시의 도심에 자리한 윤이상 기념관 입구에는 ‘이집에 윤이상 선생이 살고 있다’는 시 한편이 새겨져있다. 기념관의 로비를 지나 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거대한 윤이상 흉상이 방문객을 맞는다. 가로 54cm, 세로 49cm, 높이 83cm에 무게가 85kg인 흉상은 전시관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머플러를 두른 선생의 표정이 평탄치 않은 삶을 보여주듯 어둡다.

여기서 몇발짝 발걸음을 옮기면 거장의 예술혼이 담긴 첼로가 눈에 들어온다. 생전 선생이 연주하던 것으로 어디선가 묵직한 선율이 들리는 듯 하다. 전시장 곳곳에는 음악인으로서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친필악보 등 희귀 자료 뿐만 아니라 유학시절 사용했던 여권, 옷, 중절모, 작은 태극기 등 그의 체취가 묻어있는 유품 170여점이 진열돼 있다.

전시관을 나오면 맞은편에 또 다른 ‘공간’이 기다리고 있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2층 규모의 ‘베를린 하우스’다. 지난 2019년 생활 SOC 작은 도서관 조성지원 공모 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된 음악 전문 작은 도서관이다.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받아 2층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베를린 자택에서 사용했던 통영 소목장(3층 장롱)이 고풍스런 자태를 드러낸다.

1995년 타계한 윤이상 선생의 베를린 자택에 남아 있던 유품 148종 412점 가운데 들어 있던 것으로 부친이 그에게 보내줬다고 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선생의 서재와 응접실을 그대로 재현해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게 한 점이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소파와 치열한 예술가의 열정이 녹아 있는 책상, 그리고 부인이 직접 만든 생활도자기들이 전시돼 있다.
 

 

#전혁림미술관

전혁림미술관(관장 전영근)은 통영시가 지난 2015년 전혁림 탄생 100주년을 맞아 통영시 봉평동의 봉숫골 초입에 명명한 ‘전혁림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이 곳에 가면 ‘한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전혁림 화백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그중의 하나가 전혁림 거리를 아름다운 예술의 향기로 물들이고 있는 ‘아트타일’이다. 지난 2020년 통영시 봉평동이 ‘봉수로 벗길 간판개선사업’의 후속으로 전 화백의 대표작 16개 작품을 아트타일로 제작해 봉숫골 거리에 조성했다.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전혁림 거리에 설치된 ‘통영항’, ‘풍어제’ 등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거장을 배출한 통영의 매력에 빠진다.

하지만 전혁림 거리의 ‘핫플레이스’는 다름 아닌 전혁림미술관이다. 용화사로 가는 길목에서 주택가 안쪽에 자리한 유럽풍의 외관이 인상적이다. 통영의 코발트 빛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7500개의 세라믹 타일로 장식된 3층 건물은 마치 전 화백의 작품을 재현해 놓은 거대한 설치미술 같다.

실제로 건물 외벽은 전혁림 화백의 작품과 그의 아들인 전영근 관장의 작품을 20x20cm의 타일로 꾸며졌다. 그래서인지 건물 외벽과 내부 전시장이 한폭의 풍경화 처럼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300평 규모의 미술관은 전시장(160평), 카페 60평으로 구성돼 있다. 1층은 전혁림 화백의 상설 전시장이고, 2층은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아카이브(도자기 작품, 유품, 자료 등), 3층은 화가인 전 관장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다.



#조각의 집

근래 통영을 찾은 관광객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떠오른 명소가 있다. 원로 조각가 심문섭의 ‘조각의 집’이다. 통영 출신인 심 조각가는 한국현대조각의 대가로 자신의 고향인 통영 용남면 꽃개마을의 1000평 규모의 땅에 직접 선정한 국내외 조각가 10인의 작품을 실제 집으로 제작해 조성한 곳이다.

1997년 앤서니 곰리, 장 피에르 레이노 등 세계적인 거장들이 참가한 통영국제조각심포지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그는 예술품 속에서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획했다.

조각의 집에 들어서면 동화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림 같은 집’이 방문객을 맞는다. ‘조각이 집이 되는 곳’을 표방한 콘셉트 처럼 조각에 건축적 조형요소를 반영해 하나의 ‘작품’이지만 그 속에서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는 집으로 탄생시켰다. 일본 조각가 가와마타 다다시가 프랑스 퐁피두 센터 외벽에 목재로 제작해 걸어뒀던 ‘새집’은 이 곳에서 사람의 집으로 변신했고, 최인수 작가가 충주호 인근에 세운 화강암 조각 ‘시간의 문’과 안규철 작가가 5텬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당시 꾸민 공간 ‘1000명의 책-필경사의 방’도 세상에 하나 뿐인 집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글·사진=박진현 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