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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르포] ‘쾅, 쾅’ 망치질 소리 살아난 대우조선해양 1독…1만 5000명 휴가 반납 ‘구슬땀’

달궈진 철판 열기 살갗 파고들어

곳곳 망치질 소리와 용접 불꽃

공기 맞추려 뙤약볕 속 사투

‘민·형사상 소송 면책’ 미해결 등

노사·노노 갈등 불씨 ‘그대로’

‘손배·가압류 제한’ 등 제도 시급

 

 

“아무리 더워도 물 들어오는데, 노 저어야죠.”

닷새째 폭염 특보가 이어진 28일 오전 대우조선해양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 1번 독. 한 번에 초대형 상선 4척을 건조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 작업장이다.

900t급 골리앗 크레인과 한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철 구조물로 둘러싸인 현장. 뙤약볕에 달궈진 철판 열기가 살갗을 파고든다. ‘땀이 비 오듯 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10시 20분. 짧은 휴식을 끝낸 노동자들이 발걸음을 재촉하며 뿔뿔이 흩어진다. 대부분 한겨울에 입을 법한 두꺼운 점퍼에 안전모를 눌러썼다. 곧이어 요란한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지고, 곳곳에서 번쩍이는 용접 불꽃이 피어오른다.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훔치며 분주하게 움직이던 한 작업자에게 ‘여름휴가’ 이야기를 꺼냈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는 “휴가는 다음에도 갈 수 있지만, 이 일은 지금 아니면 못 한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같은 심정”이라고 했다.

 

혹서기를 맞아 지난 23일 시작된 2주간의 하계 집중 휴가 기간. 평소라면 필수 인력을 제외한 현장 노동자는 무더위를 피해 휴가를 보낸다. 하지만 올해는 정반대다. 대부분 현장에 남아 있다. 하청노조 파업으로 지연된 공정을 만회하기 위해서다. 파업 철회 직후인 지난 23일과 24일엔 직영과 협력업체 직원 2만여 명 중 현장 직원 1만여 명이 정상 출근했다. 25일부터는 70%가 넘는 1만 5000여 명이 휴가를 반납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조업 중이다.

 

선박탑재1부 심대영 반장은 “선주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책임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 행여 조급하게 일하다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그 부분도 유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통 선박 건조 계약에는 조선소 측 귀책 사유로 인도가 미뤄지면 하루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지체보상금을 물어야 하는 조항이 포함된다. 앞서 하청노조의 1번 독 점거 농성으로 선박 3척의 공정이 계획보다 5주나 밀렸다. 이대로라면 원청이 270억 원 상당을 배상해야 한다.

금전적 손실보다 우려되는 게 선주사와의 신뢰 관계다. 대우조선해양이 세계 조선 빅3로 발돋움한 비결 중 하나는 철저한 납기 준수였다. 2015년을 전후해 최악의 경영 위기를 겪는 와중에도 납기일만큼은 반드시 지켜냈다. 경영진은 물론 전체 구성원이 휴가를 마다하고 공정 만회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빠듯하지만 지금 추세라면 납기일을 맞추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 생산 계획을 잡을 때 인도 예정일에서 한 달 정도 여유를 두기 때문이다. 여기에 30~40일 납기 유예기간도 설정한다. 휴가 기간을 활용해 2~3주 치 공정을 만회하면 약속한 날짜를 지킬 수 있다는 판단이다.

 

공정이 지연된 선박 3척은 작년 3월 터키 선사로부터 수주한 10척 중 3~5호선이다. 3호선 인도 예정일은 11월 말. 현재 진수를 마치고 마무리 공정에 들어갔다. 하청노조가 반선(半船) 상태로 점거했던 4번째 선박은 공정률 50%를 넘었다. 대형 블록 9개를 붙이면 하나의 배가 완성되는데, 현재 4개를 붙인 상태다. 인도 예정일은 내년 1월 3일이다.

 

관건은 인력 수급이다. 파업 장기화로 일감이 끊기면서 어렵게 확보한 현장 인력 일부가 조선소를 떠난 데다, 주52시간제에 묶여 인력 충원이 없다면 평일 잔업, 주말 특근까지 돌려도 공기 단축은 쉽지 않다.

 

 

좀처럼 꺼지지 않는 노사·노노 갈등 불씨도 부담이다. 하청 노조 파업으로 막대한 손실을 떠안게 된 대우조선해양은 “법과 원칙대로 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미 지난달 하청노조 집행부 등을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 고발한 상태다. 손해가 명백한데도 회복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경영진이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 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청 노사가 ‘민형사상 소송 면책’을 놓고 마지막까지 줄다리기를 이어갔지만 끝내 ‘미결’로 남아 있다.

금속노조는 ‘노란봉투법’ 제정에 집중하기로 했다. 노란봉투법은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를 제한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다. 19·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 강병원·임종성,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각각 발의했지만 계류 중이다.

원·하청 노조 간 불거진 갈등의 골은 내달 꾸려질 태스크포스(TF)를 통해 메운다. 협상 타결 직후 민주당도 “제2의 파업사태를 막기 위해 실질 사용자와 하청노동자의 교섭구조 마련, 파업 관련 손해배상·가압류를 제한하는 등의 법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최근 여야 정치권의 관심이 경찰국 사태로 옮겨가면서 자칫 공염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대우조선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치권의 관심과 지원이 필수”라며 “조선업계의 고질적인 다단계 하청 구조와 저임금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이 없다면 유사한 사태가 언제든 반복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 경찰은 하청노조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거제경찰서는 지난 26일 업무방해 혐의를 받는 하청노조 김형수 지회장 등 조합원 9명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벌여 4명의 휴대전화를 확보했다. 경찰은 조사 대상자의 건강이 회복하는 대로 소환할 계획이다.

 

고용노동부도 유최안 부지회장 등 점거 농성을 주도한 조합원을 노조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유 부지회장은 건조 중인 선박 바닥에 고정한 가로, 세로, 높이 1m 철 구조물에 자신을 가두고 31일간 ‘감옥 농성’을 벌였다.

현행 노조법 42조 1항은 주요 업무 시설을 점거하는 행태의 쟁의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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