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아트 선구자 백남준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 '바로크 백남준'이 막을 열었다.
용인 백남준아트센터 제2전시실에서 오는 2023년 1월 24일까지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그동안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백남준의 옛 미디어 설치작품과 레이저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백남준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빛'과 그 가능성은 이번 전시의 핵심 테마다. 백남준의 빛은 촛불로 시작해 텔레비전과 비디오, 그리고 레이저 작품에 이르며 끝없는 변화를 모색한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이 지난 1995년 독일 뮌스터 외곽의 작은 교회에 설치했던 '바로크 레이저'를 오마주한 작품 '바로크 레이저에 대한 경의'로 문을 연다.
당시 백남준은 순례자들을 위한 교회로 활용되던 '교회의 조건'을 훼손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의 내용과 미학적 측면 모두 바로크 성당이라는 주어진 건축적·역사적·종교적 맥락을 따라가도록 했다.
내년 1월 24일까지 용인 백남준아트센터
국내서 접하기 어려운 설치 작품 등 구성
이번 오마주 작품에서는 형식적 특징에서 나아가, '바로크 레이저'가 홀로그램에 가까운 3차원 이미지를 영사하는 장치로서 레이저의 가능성을 실험한 것에 주목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당시 성소 앞에 거즈로 커튼을 드리우고 레이저 프로젝터로 안무가 머스 커닝햄이 춤추는 비디오를 RGB 세 가지 색으로 투사해 삼차원 공감각을 연출한 것을 재해석했다.
CRT 프로젝터를 활용해 완성된 이번 재현 작품이 백남준의 테크니션이었던 이정성과 미디어 아티스트 홍민기·강신대, 그리고 레이저 아티스트들이 협업한 작품인 것도 눈길을 끈다.
백남준이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의 독일관 작가로 참여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작품 '시스틴 성당'도 이번 전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건설자재로 흔히 쓰이는 비계에 매달린 40여 개의 프로젝터가 사방의 벽에 무작위로 쏘아대는 영상은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잠시 동안 걸음을 멈추고 상념에 잠기게 한다.
백남준은 이 작품을 만든 뒤 "디스코장이 될 뿐 아니라, 당신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흡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적 실험도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바로크 레이저에 대한 경의'로 30년 전 영상을 재현했을 때 쓰인 CRT 프로젝터는 백남준의 1988년 작품 '촛불 하나'를 재현할 때도 활용됐다. CRT는 빛의 삼원색인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등 3개의 브라운관으로 구성된 디스플레이 방식으로, 과거 '배불뚝이 모니터'를 만들 때 쓰이다가 LCD가 나오면서 종적을 감췄다.
백남준은 '촛불 하나'를 통해 벽에 투사되는 영상이 완전히 합쳐지지 못하도록 프로젝터를 조작해 촛불이 다양한 빛으로 보이는 것을 의도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촛불과 카메라·모니터·수 많은 전선 등이 정리되지 않은 채 바닥에 그대로 널브러진 작품의 모습마저 본떴는데, 이는 오늘날 전자기기들이 주는 깔끔한 외관의 이미지와 상반돼 도구의 쓰임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