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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경기도 근대문화유산 탐방·(10)] 강점기의 독립 열망 담아낸 '근화창가 제 1집'

'굴레 벗은 무궁화는 픠여웃도다'… 일제가 두려워한 조선인의 노래

 

'금지곡=공공장소나 방송에서 부를 수 없도록 규정된 노래.'

표절이나 저속한 가사 등 곡마다 금지 사유가 붙어있지만, 숨은 의도가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근현대사에 등장한 수많은 금지곡 가운데에는 아픈 역사가 담긴 금지곡이 있다. 경기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평택 '근화창가'가 그렇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근현대사를 관통한 비극적 시기에 사연 없는 금지곡이 어디 있겠냐 싶지만,

민족과 역사를 노래할 자유마저 빼앗긴 과거가 아프다. 무엇보다 근화창가에 수록된 곡이 이제는 잊힌 곡들이라는 점이 아쉬움을 더한다.

근대 일본·서구 음악에 맞춰 제작된 '창가' 계몽적 가사·씩씩한 느낌 특징
조선 역사·고난 극복 등 내용 '금지 처분'… '총독부 창가집'과 정반대 성격
'금지 창가집 희귀본' 故 노동은 교수가 발굴·소장… 유족들, 평택시에 기증
'조지아 행진곡' '하이카라부시' 등 당시 유행곡 차용… 음악사적 가치 커
'한국근현대음악관'에 보관… 민족음악 지킨 지영희 기린 '국악관'도 바로 옆

 


■ 근화창가 제1집

창가는 근대기 한국에 수용된 일본 및 서구 음악에 맞춰 제작된 노래로, 창가집은 주로 계몽적 가사와 씩씩한 느낌이 나는 특징을 띤다. 주로 교과서처럼 사용됐다. 평택 한국근현대음악관이 보유하고 있는 근화창가 제1집은 일제강점기에 금지된 항일·애국창가집으로 금지된 창가집 가운데 3번째로 실물이 발견된 희귀본이다.

 

 

1921년 민족음악가 노영호가 펴낸 창가집으로, 1923년 3월 10일 2판이 나오기도 했다. 당초 계획은 제2집, 제3집과 같이 시리즈로 제작할 계획이었겠으나, 1집을 끝으로 근화창가의 이름은 이어지지 않았다.

이를 제작한 노영호는 출판사 무궁화를 뜻하는 근화사의 사주로 근화창가집 출판을 맡았다. 또 제작에 있어서 작·편곡자, 작사가로도 참여한 인물로 알려졌다.

가로 12.6㎝, 세로 19.5㎝(초판본 추정)와 가로 12.7㎝, 세로 16.3㎝(이판본 추정)에 민족의식이 담겼다. '조선의 자랑'과 '을지문덕', '강감찬', '어머니의 사랑', '새벽빗', '시조' 등의 7곡이 수록됐다.

근화창가는 음악학자 고(故) 노동은 중앙대 교수가 발굴·소장했다가 사후 유족들이 2019년 2월 평택시에 기증했다. 경기도는 이를 지난 4월 경기도문화재위원회 등록문화재 분과위원회를 거쳐 도 등록문화재로 등록했다.

분과위원회는 일제강점기에 생성된 유산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버텨낸 우리 선조들의 삶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경기도의 지역성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의미 있는 문화재라고 평가했다.
 

 

■ 민족사에, 그리고 음악사에 한 점을 찍은 근화창가

'닙새라는 닙새에는 구슬먹음고 굴레벗은 무궁화는 픠여웃도다.' 근화창가 1집에 소록된 심훈 작사 추정의 '새벽빗' 중 한 소절이다. 노래가 나온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독립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대일항쟁기 민간에서는 근화창가집과 같이 독립과 조선의 역사, 고난 극복 등을 담은 창가집을 제작했다. 조선 침탈을 합리화하고 태평양전쟁에 참여를 독려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조선총독부 창가집'과 정반대의 위치에서 노래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1939년 12월 1일 '치안'을 이유로 조선총독부가 금지처분을 내렸는데, 당시 일제는 '성자신손'이나 '화려강산', '산고수려' 등 단어가 포함된 노래에 모두 금지곡 딱지를 붙였다.

역사적 상황상 근화창가집은 민족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음악사적으로도 연구할 가치가 있다.

새벽빗은 당시 유행가에 쓰인 '뽕꼬부시-토끼가 뛰는 것같은 리듬을 뜻하는 일본창가의 음악어법적 표현' 리듬으로 연주하라고 표현돼있어 근현대 우리 음악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창가 '조선의 자랑'은 '장하고도 아름답다 무궁화벌판 금수강산 삼천리는 우리집이요'와 같은 가사로 민족의 자긍심을 끌어올리는 곡이지만, 곡조는 미국 독립전쟁 시기에 창작된 헨리워크의 '조지아행진곡'의 곡조를 차용했다는 점에서 전통음악에서 현대음악으로 전환되는 시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지아행진곡은 신흥무관학교 교가나 독립군가 등 항일가요에 널리 차용됐으며, 방정환이 작사한 어린이날 노래에도 사용됐다.

함께 수록된 '강감찬' 역시 곡조는 당시 유행했던 '하이카라부시'의 곡조를 차용했으나 독립군의 대표적 군가, 용진가와 흡사한 선율로 편곡돼 사료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갖고 있다.

 

 

■ 민족음악이 살아 숨쉬는 평택

평일 오후 다소 한산한 평택호예술공원은 평택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하기에 더 없이 훌륭했다. 이 공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근대음악의 선구자 지영희 명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지영희 국악관, 또 근화창가집을 비롯한 근현대시기 음악을 다루는 한국근현대음악관이다.

지영희 국악관에는 민족음악의 아버지 지영희 선생의 삶이, 한국근현대음악관에는 민족의 혼을 지키고자 했던 음악가들의 정신(근화창가집)이 과거 경기음악의 요체로 불리던 평택에서 숨 쉬고 있다는 점이 이 공간을 가치있게 가꾼다.

지영희 선생은 1960년대 박정희 정부 미신타파정책의 영향으로 굿이 소멸될 것을 염려해 무속음악을 채보했으며, 국악인으로는 최초로 민속악을 5선 악보로 채보했다. 창작 국악을 관현악으로 편곡하고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을 창단, 지휘한 인물이다. 지금도 평택 한국소리터에는 지영희 선생의 뜻을 잇는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2020년 개관한 한국근현대음악관에는 현재 근화창가의 경기도근대문화유산 지정 기념 특별전 '굴레벗은 무궁화는 픠여웃도다'展이 진행되고 있는데, 복원된 근화창가 수록곡을 들어볼 수 있다.

이 곳은 근현대시기 음악 등을 다룬 7천여 권의 도서와 사료 7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어 국내 근현대음악사 연구와 음악인 협업 지원 등에 기여하고 있다.

아직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자료도 상당히 남아있다는 점에서 우리 음악사에서 한국근현대음악관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근화창가를 비롯한 한국근현대음악관 소장품을 연구, 관리하는 평택시 문승호 주무관은 "근화창가에 수록된 창가는 민족의 정신과 민족혼이 서려있는 노래이자, 우리 역사가 숨 쉬는 노래, 우리 음악의 정서가 녹아있는 노래"라며 "평택시의 문화적 자산인 경기민요와 지영희 선생을 잇는다는 점에서, 또 평택시가 3·1운동 등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사에 중요한 곳이라는 점에서 근화창가집은 평택의 정신적 자산을 연결하는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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