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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경기도 근대문화유산 탐방·(9)] K-팝 태동 이끈 파주 장파리 미군클럽 '라스트 찬스'

미국 음악과 뒤엉킨 한국인의 흥… 전설들을 키워낸 '무명의 무대'

# 경기도문화유산탐방
# K-팝의뿌리 # 대중음악의산실
# 꿈의무대 # 미군 # 역사의명암 # 라스트찬스

 

"일제 강점기를 겪고 한국전쟁으로 눌릴 대로 눌린 한국인의 흥이 다시 폭발할 수 있던 계기가 파주 라스트 찬스 아니었을까." 파주 파평면 장파리의 한 주민은 화려했던 1960·70년대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미군 클럽이다. 흔히 미 8군을 중심으로 얘기하지만 1960·1970년대 미군 부대 인근에 들어선 수 많은 클럽들이 외화벌이에 나서고 있었다.

 

 

미군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클럽들은 블루스에서부터 재즈, 하드록 등을 연주할 수 있는 밴드를 무대에 세웠는데, 실력만큼은 미국 현지에 웬만한 밴드를 능가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활동했던 밴드들은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음악에 가장 빠르게 반응했고, 유행은 빠르게 한국의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다.

미군클럽은 당시 아티스트뿐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고 배우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꿈의 무대였다. 그때의 청년들이 미군에서 내국인으로 대상을 넓히면서 한국 대중음악이 르네상스를 맞았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문화와 문화, 빛과 그림자가 엉킨 공간

장마의 한 가운데를 지나는 7월 초의 덥고 습한 날씨에 파주시 파평면 장파리에는 지나는 행인 하나 보이지 않았다. 특별할 것 없는 접경지역 시골 마을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 마을이 특별한 건, 한국과 미국의 문화가 뒤섞이고 또 한국 근현대사의 명과 암이 뒤엉킨 장소 '라스트 찬스 클럽'이 위치하고 있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경기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마을 초입에 위치한 160㎡ 넓이의 단층 건물로, 입구 옆에 'LAST CHANCE'라고 적인 간판이 없었다면 낡고 작은 식당, 심지어 창고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특징을 찾아보자면 건물 외벽 조약돌 모자이크 장식이 독특하고, 미국 서부 개척시대 상점건축과 같은 느낌을 준다.

 

1950년대 세워진 '조약돌 장식' 건물
그리스·이집트 등 다양한 문화 담아
1960~70년대 미군 입맛에 맞춘 공연
'세계 유행 관문' 청년 꿈의 스테이지
'기지촌 여성 접객 통로' 아픈 역사도

 

 

그러나 입구를 들어서자, 10여점의 벽화가 이 곳이 한국 대중음악의 인큐베이터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홀에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아폴로와 헤라클레스뿐 아니라 이집트 풍의 벽화가 눈길을 끌었다. 통로에는 한국 전통 사물놀이와 농촌 풍경을 묘사한 벽화가 장식돼 한 공간에 한국과 외국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1953년 리비교와 같은 시기 세워진 건물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리스와 이집트 문화를 담았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소유자인 김해정 씨는 "1950년대에 지금처럼 해외문물을 접할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닌데 다양한 문화를 한 건물에 담아냈다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설명했다.
 

 

라스트 찬스 클럽이 지어질 당시를 지켜봤다는 마을주민 김관철 씨는 "이 건물은 한국사람이 지은 것이지만 미군과 관련된 인물이라고 추측하고 있다"며 "상당히 앞서가는 사람이었던 것은 분명하다"고 부연 설명했다.

 

 

 

잊힌 꿈의 무대, 라스트 찬스

 

한 때 라스트 찬스는 가수 조용필이 공연을 했던 곳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그럼에도 조용필 본인이 직접 이곳을 언급한 적이 없어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다.

패티김 역시 오래 전 인터뷰에서 파주의 한 클럽에서 공연을 했다고 언급했지만, 라스트 찬스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당시 300m 남짓한 장파리 골목에만 5개 미군 클럽이 성업을 했으니 본인들도 어느 무대라고 정확히 말하긴 어려울 듯하다.

'조용필·패티김 등 공연했다' 소문도
박영걸이 발탁한 그룹 '라스트 찬스'
신중현·이은하·산울림 등 많은 영향

 

그럼에도 라스트 찬스가 한국 대중음악의 고향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당시 밴드들은 활동하던 클럽의 이름을 따서 활동했는데, 한국 록의 전설이라 불리는 그룹 라스트 찬스가 이 곳을 무대로 활동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룹 라스트 찬스는 1970년대 한국 가요계에 가장 영향력을 끼친 인물인 노만기획 박영걸에게 발탁된 그룹으로, 기타 김태일·나원탁, 베이스 곽효성, 드럼 이순남, 보컬 김태화가 멤버로 활동했다. 지금은 캐럴 연주곡만 전해지지만 지금 들어도 그 실력이 상당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룹 라스트 찬스 이후에 데블스와 신중현과 엽전들, 이은하, 정애리, 윤승희, 벗님들, 산울림 등 우리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가수들이 박영걸을 허브로 모두 연결된다.

김관철 씨는 "모두 알 수 없지만 당시 라스트 찬스 클럽에서 노래를 하던 친구뿐 아니라 청소나 허드렛일을 하던 친구들 상당수가 나중에 가수가 됐다고 한다"며 "어떤 형태로든 음악을 사랑하던 사람들이 모이던 장소였다"고 회상했다.

 

라스트 찬스가 남긴 숙제

 

라스트 찬스의 소유주 김해정 대표는 "장파리에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물들이 아직 남아있지만,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실제 장파리의 한 공장은 DMZ바(클럽)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저기 수선된 흔적이 있지만, 60년대 화려했던 클럽의 벽화 등이 남아있다.

또 장풍정미소나 미군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던 재건학교, 럭키바(클럽), 장마루극장, 블루문클럽, 브릿지 다방, 장파공소, 적성병원, 황해여관, 장파사진관, 평강상회 등 당시 미군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던 우리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는 건물들이 유적처럼 남아있다.

 

 

"역사적 가치 발굴·보존 개인이 한계"

 


김 대표는 "라스트 찬스가 품은 역사적 가치를 이어갈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 공연이나 전시를 통해 한국 대중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주민들의 동의나 역사적 가치 발굴 등에 있어 개인이 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주민 김관철 씨도 "3~4년 전에 그룹 신촌블루스가 이 곳에서 공연을 하는 등 음악인들도 라스트 찬스의 가치와 그 활용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다른 주민들과 함께 화려했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다"고 현재 방치되는 장파리의 여러 잠재적 근대문화유산에 발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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