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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회복의 첫걸음은 '인정'

[통큰기획-세계 마약퇴치의 날 특집] 치료시설 '경기도 다르크' 임상현 센터장
"교도소 7번 보낸 아내가 은인… 중독 인정해야 치료 가능"

 

40년 동안 마약전과 9범 이력을 쌓았다. 죽는 순간까지 이별할 수 없을 것만 같던 마약을 끊을 수 있었던 건 그의 곁을 지켰던 사람 덕분이었다.

'마약 같다'는 표현이 있을 만큼 끊기 어려운 마약에 작별을 고한 경기도 다르크 임상현(71) 센터장은 이제 중독자들에게 "마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의지를 전한다.

임 센터장은 17살부터 마약을 시작했다. 학교 선배와 친구의 권유로 처음 시작한 마약을 50대 후반이 될 때까지 끊지 못했다. 그는 "약이 주는 쾌락이 나를 사로잡았다. 끊으려고 마음을 먹기까지 10년이나 걸렸다"고 말했다.

17살부터 손대 '40년간 전과 9범'
치료 도운 아내 직접 신고해 수감
"끊게 해달라 간절히 기도" 울먹
가정 피폐… 50대 후반에야 끊어

마약 중독자라는 사실을 숨긴 채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가라오케 등 사업을 하며 부를 축적했지만 마약은 번번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단약 3년 뒤, 8년 뒤 끊은 줄 알았던 마약에 다시 손을 댔다. 마약중독에 도박, 알코올 중독까지 더해져 가세는 기울었다.

그 사이 모델 출신의 아내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돼 쓰레기를 주웠고 두 아들은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원에 가는 대신 고깃집 불판을 수없이 닦았다. 지난 2009년 50대 후반의 나이에 9번째 옥살이를 끝낸 그는 마침내 단약을 결심했다.

"되돌아보니 내 가정이 가정이 아니었어요. 내가 중독으로 점점 망가져 간 사이 가족은 피폐해졌죠. 하나님께 정말 도와달라고, 내 가족을 봐서라도 한 번만 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임 센터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울먹였다.

병원도 상담시설도 없던 시절, 아내는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마약에 대해 공부하며 임씨의 단약을 도왔다. 임씨가 중독된 마약이 무엇인지,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지 자료를 뒤져 연구했다.

"약물중독으로 적발된 9번 중 7번은 아내가 신고해 교도소에 들어갔어요. 아내에게 왜 신고했냐고 물으니 '사랑해서'라는 답이 돌아왔죠. 처음엔 죽을 만큼 미웠지만 지금은 아내에게 고맙다고, 제 인생의 은인이라고 말합니다."

아내의 도움으로 단약에 성공한 임 센터장은 낮에는 남산에서 주차장 관리요원으로, 밤에는 대리기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주치의였던 감호소장 '센터장 권유'
본인 경험 바탕 입소자 회복 도와
매일 미팅 '중독자 ○○○입니다'
서로 의지… 갈망 하루하루 견뎌

 

그러던 중 과거 임 센터장의 주치의였던 조남호 치료감호소장이 "경기도 다르크의 센터장 자리를 맡아보라"고 제안했다. 중독자로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중독자들을 도와보라는 것이었다. 일본 다르크와 국내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지난 2019년 3월 경기도 다르크가 문을 열었다.

임 센터장은 현재 12명의 입소자들과 함께 지내며 이들의 회복을 돕고 있다. 그는 약을 끊기 위해 본인이 중독자임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센터장은 "나는 중독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오랜 기간 단약에 실패했다"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 자신이 중독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그때부터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은 마약을 치료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아무도 자신이, 가족이 중독자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다르크를 알아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저 나라만 믿고 기다릴 수는 없어 시작하게 됐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중독자들을 돕고 싶다"고 전했다.

지난 13일 찾은 남양주시 경기도 다르크 시설에서 중독자들이 재활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날 오전 10시 입소자들과 임 센터장이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매일 오전 10시에 열리는 '다르크 미팅'은 입소자들이 단약에 대한 의지를 다지며 서로 격려하는 시간이다.

다르크 미팅엔 규칙이 있다. 이야기를 시작할 땐 항상 '중독자 누구입니다'라고 밝혀야 한다. 임 센터장은 "회복의 시작은 자신이 중독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입소자들은 약물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망가뜨렸는지, 그럼에도 다시 생각날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곳에서의 생활이 자신을 어떻게 바꿨는지 가감 없이 대화를 나눴다.

이날 미팅에서 입소자 이동재(23)씨는 "약을 끊고 있는 건지, 그냥 여기 와서 멈추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24시간 약을 하고 싶다고 갈망한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지난 2월 다르크에 처음 입소했던 이씨는 약에 대한 갈망을 이기지 못해 퇴소한 뒤, 얼마 전 재입소했다.

그러자 오랜 시간 단약 중인 입소자가 "단약하며 초반에 겪는 감정은 실연의 고통과 비슷하다"며 "원천 차단되면 무기력하고, 그걸 이기지 못하면 재발한다. 처음에 끊으면 신이 나다가 추억을 하나씩 붙잡고 늘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단약하면 무엇을 해내겠다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기보다 하루하루 회복에 힘쓰며 견뎌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화가 끝난 후 입소자들은 서로 손을 잡고 기도했다. 종교가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모두 자신의 의지를 신께 맹세하며 미팅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임 센터장에게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입소자들은 서로를 의지해 마약과의 이별을 준비한다. → 관련기사 3면([통큰기획-세계 마약퇴치의 날 특집] 치료 시스템 지원 부족… '인식 전환'해야)

/이자현기자 naturele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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