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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경기도 근대문화유산 탐방·(6)] 롤러코스터 탄 경기도 제염산업… 짜디 짠 현실에 멈춘 소금열차

안산·시흥 염전 달리던 소금운반용 협궤열차

영화 '엄마없는 하늘아래(1977)'의 첫 장면은 황량한 염전 풍경과 아이들의 활기찬 모습이 대조를 이루며 시작된다. 스치듯 지나가는 1970년대 염전의 풍경에는 목조 창고와 줄 지은 전봇대 등으로 이국적인 느낌마저 든다. 이 가운데 화물차라고 하기엔 적재 공간이 길고, 열차라기에는 작은 탈 것 하나가 등장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열차 보다 작은 꼬마 열차는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염전에서 소금을 운반할 때 사용하던 이른바 '가시렁차'라고 불린 궤도차다.

국내 제염 산업은 고려시대 기록물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그간 관련 유물이 문화재로 지정된 적은 없었다. 경기도가 지난해 안산 동주염전 소금운반용 궤도차를 경기도 등록문화재로 등록한 것이 사실상 최초의 사례가 됐다.

소금 산업은 어떻게 안산·시흥, 경기도민의 삶을 지탱해왔고, 왜 하향길을 걸었을까. 동주염전 소금운반용 궤도차가 지나온 궤도를 따라 소금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해본다.

 

 

환경 오염이 앗아간 삶의 터전, 경기도 염전

 

 

 

서해는 조석간만의 차로 소금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근현대 소금 산업의 중심이 안산·시흥이었다는 사실과 활발하던 경기도 제염산업이 환경오염으로 사실상 맥이 끊어진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08년 발간된 '한국염업조사보고'에 따르면 인천, 김포과 함께 당시 안산군은 제방이 없는 염전으로 유명했다. '한국수산지(1911)'에서도 '안산군 연안에는 염전 개발을 위해 적당한 곳이 적지 않다'며 '1년 생산액은 약 336만근(2천t)'이라고 기록하고 있어 안산지역의 제염 산업은 역사가 오래됐고 주요 소금 생산지로서 주목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인근 시흥시 정왕동 일대에도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염부가 몰려들 정도였다는 기록을 통해 경기도가 제염산업의 중심이었음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해방 후 정부는 1953년 소금의 자급자족과 수출을 목표로 염증산 5개년계획을 수립했고, 시흥과 안산 대부도 일대에 여러 민간염전이 들어섰다.

그러나 날씨에 영향을 크게 받는 제염산업의 특성상 소금 부족과 과잉이 반복되면서 민간 염전산업은 크게 위축됐다. 1969년 이후엔 값싼 외국산 소금 유입이 늘어 소금제조업자들이 도산하는 상황도 늘었다. 1970년대 초에는 다시 주기적 소금 흉작으로 신규 염전 개발이 시작돼 안산에 군자염전과 구봉염전, 선감학원염전 등 30여 개가 들어섰다.

부흥기도 잠시, 1987년 시화지구 개발로 해수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 된 안산시 사동의 사리염전이 폐업했고 전국 소금 생산량의 50~60%를 차지했던 군자염전, 소래염전, 남동염전 등도 영향을 받았다. 남동염전 역시 주변 바다가 오염되면서 1980년대에 문을 닫았고 군자염전과 소래 염전도 그 뒤를 이었다.

소금 산업과 함께 달린 궤도차

 

안산에서 생산된 소금을 운반하던 궤도차는 철로를 떠나 안산산업역사박물관을 지키는 산업화와 산업 역사의 상징이 됐다.


박물관이 소장하는 소금운반용 궤도차는 1950~1960년대 미국 폴리머스 사가 제작한 기관차F 시리즈 중 하나로 추정된다. 길이 3m에 너비 2.3m, 높이 1.4m로 복원하면서 노란색으로 칠해졌다. 궤도차 앞에 '대한염업' 명판이 부착돼있는데, 대한염업의 업력을 보면 1963년 이후부터 염전 기관차가 완전히 사라진 1990년대 중반 사이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속 20km의 속도로 한 번에 약 20량 정도의 화차를 끌고 소금을 운반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경기만 일대 염전에는 수인선과 연결된 염업선을 통해 전국으로 소금을 공급하는 데 역할을 했다.

박물관에 따르면 발견 당시 이 궤도차는 염전 사무실 옆에서 덮개를 반쯤 쓰고 아무렇게나 방치돼있었다. 당초 소래염전과 남동염전 등에서 사용하던 것을 동주염전에서 재구입해 사용하던 것인데, 염전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자 궤도차는 달리기를 멈춘 것이다.

동주염전에서 근무했던 백승근 씨는 "(근무하던 시기에)궤도차는 소금을 옮길 때 쓰지 않았다. 전기가 없으니까. 발동기로 썼다. 저녁 시간이나 비오는 날 조금 쓰곤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경기도 제염사업이 사실상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면서 궤도차는 염전의 한 켠에서 십수 년 간 자신을 기억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산시 이수빈 학예연구사는 "대부도 동주염전은 오랜 역사를 갖고 운영되고 있는 천일염전으로 점차 축소되고 사라져가는 한국 제염산업의 일단을 보여준다"며 "특히 제염산업은 안산지역의 전통 생업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해 안산지역의 역사와 문화, 안산 주민들의 생활사를 이해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수집·보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짧지만 긴 역사를 담은 안산산업역사박물관

 

 

산업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는 경기도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로 마련된 '안산산업역사박물관'이 오는 7월 개관을 앞두고 마지막 준비가 한창이다.


안산시민들의 쉼터인 화랑유원지에 지하 1층~지상3층, 연면적 5천160㎡ 규모로 조성된 역사박물관은 수도권 최대 산업단지인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상징적 의미와 역사성을 담은 산업유물 450여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그간 산업유물은 보기에 따라 문화재로, 또는 골동품으로 보는 경계에 있어 그리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의 토대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현재에도 과거의 생활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분명 주요한 상징물이자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전시관은 ▲산업과 도시 ▲산업과 기술 ▲산업과 일상을 주제로 도시형성과 산업의 역사부터 대표 산업군을 보여준다. 주요 소장품으로는 경기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기아 경3륜 트럭 T-600 ▲동주염전 소금운반용 궤도차 ▲목제솜틀기 등을 비롯해 인쇄윤전기나 공단에서 제작된 각종 생활용품, 장난감 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기업과 시민들이 실사용을 하다가 기증한 다양한 산업유물들은 실제 사용한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어 산업과 삶을 연관 지어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이밖에도 VR체험공간이나 산업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교육실, 개방형 수장고 등을 갖췄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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