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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경기도 근대문화유산 탐방·(4)] 부천 '한미재단 소사 4-H 훈련농장 사일로'

전후복구 원조 이끈 그때 그 청년들의 농장… 경제강국 씨앗 뿌렸다

 

 

벚꽃이 한창인 4월의 부천 소사 여우고개. 벚꽃비가 내리는 풍경 사이로 건물이라기보다는 폐창고에 가까운 건물 몇 동이 화사한 경치와 대비되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8동의 건물과 굴뚝같은 모양의 사일로(가축 사료인 사일리지를 만들어 저장해 두는 원통형 창고) 하나가 남아, 이 곳이 농업국가였던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만든 '부천 한미재단 소사 4H 훈련농장'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한때 전국에서 몰려든 훈련생들로 활기가 넘쳤던 곳이지만, 지금은 이 건물 몇 동만이 과거의 흔적으로 남아있었다. 지금은 그 기록도 찾기 힘든 한미재단 훈련농장에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했고, 그 노력의 결과가 어떤 과실로 맺어졌을까.

 

 

전후 한국사회에 상당한 영향 끼친 한미재단

 

한미재단(American Korea Foundation-AKF)은 한국전쟁 과정에서 설립된 비공식 원조기관이다. 한국전쟁 이후 수많은 구호단체가 설립됐는데, 그 중 한미재단은 피폐해진 전후 한국을 체계적으로 지원했다.

사절단이 먼저 현지조사를 수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구호활동을 펼쳤는데, 미국 내에서 기부받은 물품과 기금이 한미재단을 통해 전달되면서 한국의 보건에서부터 사회복지, 교육 등 적재적소에 적절히 분배될 수 있었다.

특히 농업구조와 농촌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조직된 청년단체 4-H와 함께 한국 농업 전반의 고도화를 견인, 경제적 기초를 닦아 지금과 같이 선진국 반열로 도약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그런 한미재단은 왜 부천에 4-H 훈련농장을 지었을까. 부천은 가까이 서울과 인천을 마주하고 있어 경제의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경기도농사시험장·잠종제조소·소사연초시험장 등이 당시 부천에 자리했던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한국전쟁 비공식 구호단체 '한미재단'
서울·인천 가까운 부천에 훈련농장 건립

 

 한미재단은 전후 복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4년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 한미재단 만찬회에 참석해 한국의 재건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연설을 봐도 그 중요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가 고통스런 상황에 처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러나 우리 국민은 도와달라고 울지 않습니다"라며 "국민들은 눈물을 감추고 조용한 결의와 용감한 미소로써 굶주림과 파괴를 이겨내는 싸움에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라고 연설해 미국 측의 원조를 이끌어냈다.

 

 

농업 경쟁력을 끌어올린 훈련농장

 

당시 한국은 저개발 농업국가에 불과한 모습이었다. 1960년대 우리 국민의 60%는 1차산업에 종사했지만, GDP에서 차지하는 1차산업 비중은 불과 35%에 불과했다. 농업에 인력을 투자하고 있지만 이른바 '먹고 사는 수준'을 넘어설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미재단은 1963년 11월 부천군 소사읍 소사리에 훈련농장을 지어 같은 농업이어도 '돈 되는 농업'을 하는 방법을 전수하기로 했다.

1969년 이화여대 김헌규 의예과장이 남긴 '한미재단 4-H 탐방기'를 보면 처음에는 공무원들에게 계단식 개간시범훈련을 하던 장소로 이용돼 1963~1964년 공무원 419명, 군인 50명이 훈련을 받았다.

 

 

기록과 같이 1964년 1기 생은 군인과 공무원이었다. 차츰 그 범위는 20대 청년으로 넓어져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교육을 받았다.    

 

 

'먹고사는 수준'의 농업, 고도화 추진
1964년 공무원·군인 469명 1기생 교육
범위 넓혀 1979년 해체까지 3602명 배출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효시 성격

 

주요 과목은 당시 수입된 젖소(홀스타인)와 돼지(듀록·요크셔), 토끼, 닭(레그혼) 등 외래종을 사육하는 방법부터 집 짓는 방법 등 농촌에서 필요한 과정이 대부분 포함됐다. 특히 언덕에 계단식으로 밭을 개간해 사료용 옥수수를 재배했고 복숭아 과수원, 채소밭, 목초 시험장 등이 있었다.


여성의 경우 미용과 재봉, 음식 등 2차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교육을 받은 청년들은 수료 후 자신의 지역으로 돌아가 마을을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이같은 성격 때문에 훈련농장은 70년대 새마을운동의 효시 격으로 다뤄지고 있다.

훈련농장은 1968년 우유·계란·돼지 등으로 202만9천535원의 수익을 올렸고 그 다음 해에는 400만원의 수익을 올려 훈련비용을 자급자족했다는 기록이 있다. 훈련농장에서 연수를 받은 청년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선진 농업 방식을 퍼뜨렸으니, 같은 기간 한국의 농업 경쟁력이 얼마나 가파르게 상승했는지 상상해 볼 수 있다.

훈련농장은 1979년 한미재단이 해체될 때까지 3천602명의 교육생을 배출했다.

 

 

훈련 농장의 현재

 

훈련농장은 이후 새마을운동이라는 브랜드에 밀려 잊혀진 듯했다. 그간 훈련농장은 개인에게 불하됐다가 부천시가 다시 매입했는데, 소사대공원으로 재단장을 한다는 계획이었다.

우려되는 것은 훈련농장의 가축들에게 줄 사료를 저장한 사일로 하나만 경기도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뿐 나머지 8개동 건물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것은 물론, 지번도 없는 사실상 '불법 건축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남아있는 건물 가운데 기숙사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한 동은 당시로서는 보기 어려운 대중 목욕탕을 갖추고 여러 사료에서도 핵심적으로 등장하고 있어 보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일로 역시 현재 관리되지 않고 있어서 온갖 쓰레기들이 그 속을 채우고 있어 역사에 관심을 갖고 방문한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8개 건물중 1개만 道근대문화유산 지정
사료 가치 높지만 관리부실 '보존 목소리'
부지 매입 부천시 '대공원' 재단장 계획

 

소사마을기획단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 신승직 단장은 "부천 소사를 대표하는 여러 근대문화유산이 무관심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며 "체육공원이 아니어도 다양한 방식으로 주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이에 경기도는 지난해 도 등록문화재 심사과정에서 "주변 부속 건물 등에 대한 추가 등록 신청이 필요하다"며 "도문화재로 등록해 보호해야 한다"고 의견을 낸 바 있다.

 

 

 

한미재단 훈련농장이 남긴 것

 

한미재단 훈련농장과 관련해 3년여간 연구를 했다는 양경직 경기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당시 한국은 농업밖에 없는 국가였지만, 농업의 고도화를 통해 산업화 나아가 민주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며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경제적 성장과 민주적 성장에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청년들이 공장에 허드렛일이나 찾아다니던 시기에 전액 무료로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면서 고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왔고, 또 그 고향이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경제발전 뿌리 관심 없어보여 안타까워

 


그렇기에 무관심 속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보존에 목소리를 높였다.

양 연구위원은 "우리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선 데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그 뿌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보여 안타깝다"며 "한미재단이 경제적 자립과 정신적 자립을 이끌어내면서 대한민국의 토대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훈련농장의 보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