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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조선시대 핫 플레이스, 강원의 명소는 지금]시 읊고 풍류 흐르던 금강정도 어린 왕 그리며 눈물 흘렸으리라

(20·完)영월 낙화암

 

 

단종과 함께한 시녀·시종들
절벽서 뛰어내려 목숨 끊어

300여년 흐른뒤 관기 경춘

 

신임 부사의 수청에 항거해
절벽위 올라서 정절 지켜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겨 영월에 유배됐다가 죽임을 당한 어린 왕의 이야기는 아직도 눈물짓게 한다. 1457년 10월24일, 단종이 죽임을 당하자 단종을 모시던 시녀와 시종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단종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떨어진 절벽이 ‘낙화암(洛花巖)'이다. 낙화암은 뒤에 창절암(彰烈巖)으로 바뀐다. 홍직필(1776~1852년)은 이곳에 들렀다가 ‘창렬암기'를 짓는다. 다음 대목이 목에 걸린 듯 불편하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나, 마땅한 곳에서 죽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만약 마땅한 곳에서 죽을 수 있다면, 죽어도 사는 것보다 영예로운 것이다.” 주민들이 몸을 던진 하인과 시녀의 넋을 기리는 단을 설치한 자리에 영월군수가 1749년에 사당을 세웠다. 바로 낙화암 옆이었다. 그로부터 9년 후인 영조 34년에는 ‘민충'이라는 편액을 내렸다.

낙화암에 순절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곳에 애석한 죽음을 추모하는 비석이 세워졌다. ‘영월 기생 경춘이 순절한 곳(越妓瓊春殉節之處)' 뒷면에 ‘경춘(瓊春)'의 슬픈 사연이 적혀 있다. 16세의 어린 관기 경춘의 삶은 어떠했던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관기가 된 경춘은 1771년 영월 부사로 부임한 이만회의 아들과 사랑에 빠진다. 이듬해 이만회가 한양으로 올라가면서 둘도 이별을 고하고, 신임 부사는 수청을 들 것을 요구한다. 거듭 거절하던 경춘은 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벼랑에서 뛰어내린다. 경춘이 죽은 지 23년이 지난 1795년에 강원도 순찰사 이손암은 ‘비천한 신분으로 이런 일을 해내다니 열녀로다'라며 영월군수에게 순절비를 세우도록 했다. ‘경춘순절비'는 단순히 본보기로 삼아야 할, 정절을 지킨 어느 천한 기생에 관한 기록이 아니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온 몸을 던진 열여섯 어린 여성의 항거다.

영월 사람들은 동강을 금강(錦江)이라고 불렀다.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정자 금강정은 유방선(1388~1443년)이 ‘영월 금강정에 오르다'를 지은 것처럼 풍류를 뽐내던 장소였다. 영월을 찾은 시인들은 왁자한 분위기 속에서 금강정의 풍광을 노래하곤 했다. 단종이 영월에 온 이후에 분위기는 바뀌었다.

이황은 “산이 터져라 우는 두견이는 어느 세월이나 멈추려나, 금강이 촉나라 물 이름과 같음도 우연이 아니리라”라고 노래했다. 옛날 중국 촉나라의 망제가 신하에게 속아 나라를 빼앗기고 원통하게 죽어 두견새가 됐다. 봄이 되면 밤마다 이 산 저 산을 날아다니면서 피가 나도록 울었다. 피를 토하며 운 자리에 붉은 진달래꽃이 피었다. 두견새와 진달래꽃은 한을 상징하는 말이다.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것을 염두에 두고 지은 시다. 촉나라에도 금강이 있었으니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가슴 아픈 우연이다. 1684년에 송시열은 ‘금강정기'를 짓기도 했다.

봉래산 아래 동강 가 절벽 위에 자리 잡은 금강정은 역사의 산증인이 됐다. 조금 떨어진 낙화암에서 시녀와 시종들이 뛰어내리는 것을 봐야 했으며, 16세 경춘이가 벼랑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 것도 목도해야만 했다. 술 한잔 마시고 음풍농월하기에는, 동강의 푸른 물을 바라보며 한껏 여유로움을 읊기에는, 너무 슬픈 역사가 흐르고 있었다.

금강정 아랫길로 접어들면 메타세쿼이아 사이로 김삿갓 시비와 남극 세종기지에서 순직한 전재규 의사 추모비가 보인다. 다음은 ‘라디오스타'를 만나야 한다. ‘라디오스타'는 왕년의 인기 스타에서 무명 가수로 전락한 최곤(박중훈)과 그의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영월의 시골 방송국에서 ‘정오의 희망곡' 프로그램을 맡아 재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단종의 유배길과 오버랩되면서도 비극으로 끝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방송국의 역할은 끝났지만, 낙화암 바로 뒤편에 자리한 건물은 ‘라디오스타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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