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주우면서 환경 오염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했죠. 줍깅을 한 번도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우리에게 ‘줍깅’으로 익숙한 ‘플로깅’은 2016년 스웨덴에서 시작돼 전세계로 확산했다. 스웨덴어 ‘plocka upp(줍다)’와 영어 ‘jogging(달리기)’의 합성어로 걷거나 뛰면서 거리의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뜻한다.
SNS를 통해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던 줍깅은 어느덧 기업·기관·민간까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 캠페인의 일환이 됐다. 단순히 일회성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줍깅이 시발점이 돼 환경을 위한 다양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른부터 아이까지 줍깅을 실천하고 있는 주변의 이야기를 담았다.
◇마산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줍깅= “하천과 바다에서 쓰레기를 줍는 행동이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백 마디 말보다 시민들에게 환경 오염과 플라스틱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할 것이라고 믿어요. 한 순간에 모든 걸 바꿀 수는 없잖아요. 이따금씩 변화가 너무 더디게 느껴져 슬플 때도 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영화 마산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이사장은 2019년 취임 이후 플라스틱 사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취임 전년도인 2018년 중국발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정 이사장이 내린 결론은 ‘조합 안에서 플라스틱 문제를 확산시켜 생활 속에서부터 바꿔나가 보자’였다. 정 이사장은 환경 관련 활동을 쉽고 즐겁게 풀어가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캠페인 팀을 만들었다. 그 안에서 줍깅 활동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에 따라 조합은 올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하천과 바다 등지에서 줍깅 활동을 시작했다. 조합은 한 달에 한 번 조합 사무실과 인접한 마산 내서읍 광려천 일대에서 정기 줍깅을 진행하고 있으며, 번개 줍깅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바다의 날을 맞아 가포해안변, 지난달 25일에는 저도 연육교 비치로드 일대에서 줍깅을 진행했다.
“하천에서는 담배꽁초, 바다에서는 스티로폼 부표 쓰레기가 가장 많이 보입니다. 전부 미세플라스틱의 주범이죠. 심지어 부표 등 폐어구들을 자세히 보면 미생물들이 파 먹은 흔적들이 보여요. 그게 다 미세플라스틱이 되어 우리들의 식탁에 올라오게 됩니다. 환경 관련 공부를 하면서 알고는 있었지만 하천과 바다에 나와 줍깅을 하면서 뼈저리게 실감했죠.”
조합원들이 1시간 여 정도의 줍깅 활동으로 나오는 쓰레기 양은 광려천의 경우 50ℓ짜리 봉투 5~6개, 가포해안변에서는 20ℓ 짜리 봉투 10개와 50ℓ 짜리 봉투 2개 정도. 치우고 가도 다음에 다시 오면 똑같은 양의 쓰레기가 나온다고 정 이사장은 설명했다. 매번 반복되는 상황에 힘이 빠질 때도 있지만 정 이사장을 비롯해 조합원들은 이럴 때 일수록 줍깅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야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지구 온도 1.5도 상승이 코앞에 다가왔어요. 환경에 대한 심각성을 알겠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 지 막막할 때 그냥 쉬운 실천부터 하는 거예요. 마산 아이쿱의 줍깅 활동이 그 본보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해 꽁린이수사대의 줍깅= “뛰어놀고 싶다는 어린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서 놀다 보니 쓰레기가 많다는 걸 발견했죠. 아이들과 함께 줍깅을 해보니 담배꽁초가 제일 많았어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담배꽁초가 결국 바다로 흘러 들어가서 미세플라스틱이 되잖아요. 이 지점에서 문제 의식을 가지고 ‘담배꽁초를 줍는 어린이’, 즉 ‘꽁린이수사대’가 탄생했죠. 어린이들이 직접 환경 문제를 직면하고 나아가 환경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마음에서요.”
김해 꽁린이수사대는 생활문화공동체 ‘맘만세’ 권용우 기획자의 주도로 기획, 지난 5월 ‘경남 2021 사회혁신 실험(리빙랩) 프로젝트’에 선정되며 정식 출범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5학년15명의 아이들은 정기적으로 김해 어방동과 삼방동 일대의 놀이터에서 줍깅 활동을 하고 있다.
권 기획자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 실험을 해보는 거다. 꽁린이수사대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행동이 얼마나 파급력이 있을지와 오픈된 환경 교육의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꽁린이수사대원인 하수연(10)양은 “줍깅을 하다 보면 매번 쓰레기가 엄청 많다는 것을 느낀다. 지구가 쓰레기로 덮힐 것 같아 많은 사람들이 안 버렸으면 좋겠다”며 “가끔은 힘들 때도 있지만 지구를 위해서 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하면 보람 있다”고 전했다.
아이들은 꽁린이수사대 활동을 통해 줍깅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환경 교육도 자연스레 습득한다. 아이들은 길 위에 어떤 쓰레기들이 주로 버려지는지, 쓰레기로 버려지기 이전에는 어떤 물품이었는지, 왜 길 위에 버릴 수밖에 없는지 등을 눈으로 확인하며 생각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진다.
권 기획자는 환경 문제에 대해 주체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아이들로 성장하게끔 길을 터주는 게 이번 실험에서 활동가들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이번 실험으로 우리 꽁린이들의 사고가 커져서 환경을 위해 기업이나 국가가 해야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알고 제 목소리 낼 수 있는 아이들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향후 김해의 그레타 툰베리(스웨덴 출신 청소년 환경운동가) 들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요.”
한유진 기자 jinny@k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