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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문득 동네책방] <37> 경주 황리단길 '어서어서'

‘읽는 약 책 봉투’에 책 담아나가는 이들 부지기수
“책은요,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거예요”

 

원룸 크기 정도 될까. 10명 정도가 들어서면 움직이기 쉽지 않을 공간이다. 벽면에 여백이 없다. 온갖 사진과 포스터로 가득하다. 영화 '캐롤' 등의 주요 장면 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대정부 질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그렇다고 어지럽지도 않다. 테트리스 블록을 맞춰나간 듯 공간 활용력은 최상급이다.

 

무엇보다 이곳에선 여느 책방에선 보기 드문 장면들이 반복된다. 손님들이 확 몰려 들어왔다가 확 몰려 나간다. 십중팔구는 사진을 찍으러 들어온다. 이질적인 풍경이다. 책이 안 팔리는 것도 아니다. 매우 잘 팔린다.

 

책을 사려고 작정하고 온 사람들처럼 책을 사서 나간다. 점원은 수시로 책을 정리한다. 책이 빠진 빈자리를 채워 넣는 건 그의 끝없는 업무다. 책이 날개 돋친 듯 약봉지, 이곳의 마스코트가 된 '읽는 약 책 봉투'에 담겨 팔려 나간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서점,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서점', '어서어서'에서 목격된 특이점이다.

 

 

경주 황리단길의 동네책방 '어서어서'는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의 앞글자를 연결해 붙인 이름이다. 책방지기 양상규 씨는 어디에나 있는 게 서점이지만 어디에도 없는 서점을 만들고 싶은 마음을 담아 서점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우리 문학이 이렇게도 인기가 높았나 할 말큼 시, 소설, 에세이 등이 대접받고 있다는 건 북큐레이션으로 알 수 있다.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의 시집 시리즈가 제자리인양 책방 한 면을 채우고 있다. 좁은 책방에서 이 정도 공간을 할애했다는 건 마치 귀한 자식을 위해 아랫목을 내놓는 부모의 심정과 같은 것이다. '이 책도 있네' 할 만큼 웬만한 소설책들도 어디쯤엔가 똬리틀고 있다.

 

그럼에도 이곳의 인기를 설명하긴 쉽잖다. 책방지기가 여유있게 손님과 책과 관련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앉아서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북적임은 어디에서 온 걸까.

 

 

 

책방지기 양상규 씨가 지난해 발간한 책,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대형 서점 부럽지 않은 경주의 동네 책방)'은 그 까닭을 2017년 모든 매체에서 앞다퉈 경주를 다루고 황리단길을 집중 조명한 데서 찾는다. 양 씨는 "어서어서 책방도 2017년 문을 열었다. 시기적으로 잘 맞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너도나도 책을 구매해 나가는 현상도 궁금증을 몰고 온다. 이는 tvN에서 방영된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서 어느 정도 풀린다. 특히 김영하 작가의 평소 지론인지 책방을 살리려는 '한 말씀'인지 알 수 없지만 경구처럼 구전된, "책은요,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거예요"를 실천하려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느낌 오는 대로 두어 권씩 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모습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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