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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주구묘의 성격

최완규 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한국에서 주구묘의 발견은 마한의 분묘문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나아가 백제문화와 뚜렷이 구별되는 마한문화의 정체성 확립에 기준이 되는 매우 중요한 고고학 자료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주구묘의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토기들은 마한 토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주구묘가 분포하는 공간적 범위는 마한의 정치 문화의 영역과 일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구묘의 축조 방법을 보면, 우선 주구(도랑)를 굴착하여 그 흙으로 낮은 분구를 쌓아 무덤의 외형을 만든 다음, 분구의 중앙에 토광을 되파서 매장부를 만들고 시신을 안치한 후 다시 흙으로 성토가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무덤에서처럼 시신을 지하에 안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안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주구에서 옹관이 안치된 예가 있고, 분구의 대상부에서도 옹관이 안치된 예가 있어 다장도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곧 직계 혈연관계에 의한 가족장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주구묘는 마한 성립기의 토광묘와는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어 두 묘제는 계승적 관계 속에서 발전된 것이라 할 수 없다. 곧 토광묘와 주구묘는 분묘 축조 전통이 전혀 다른 집단에 의해 축조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토광묘는 중국 동북지방에서 철기문화와 점토대토기문화를 가지고 내려온 집단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문헌 자료로는 『삼국지』와 『후한서』에 기록된 “고조선 준왕의 남천” 기사라 할 수 있다.

『후한서』 ‘위서 동이전 한조’에 “조선왕 준(準)이 위만에게 패하여 자신의 남은 무리 수천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와 마한을 공격하여 쳐부수고 스스로 한왕(韓王)이 되었다. 준의 후손이 절멸되자 마한 사람이 다시 자립하여 진왕(辰王)이 되었다”라 하여 고조선 준왕계와 마한계는 계통이 다름을 적시하고 있다.

한반도 서해안 일대에는 마한 성립 이전에 청동기 문화의 중기에 해당하는 소위 송국리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주요 특징으로는 원형 집자리와 계란 모양의 송국리형 토기를 들 수 있다. 그런데 보령 관창리, 서천 당정리, 익산 영등동 등을 비롯한 주구묘 유적에서는 송국리 문화의 유적들과 중복되어 발견되었다. 특히 주구 내에서 송국리 토기편들이 확인되고 있어 송국리 문화 단계에 주구묘가 특정지역에서 축조되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결국 한반도 서해안 일대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던 청동기시대 중기의 송국리 문화단계에 이미 주구묘가 축조되고 있었고, 그것은 한(韓)문화의 뿌리라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마한 성립기 중심세력인 고조선계 준왕의 절멸이후 새로이 등장하는 마한의 중심세력은 한의 기층세력으로 새롭게 부활한 주구묘 축조집단으로 볼 수 있다.

 

/최완규 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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