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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44) 시대를 직시하고 구원(救援)을 노래하다, 석정(夕汀) 연구의 대가, 허소라 시인

송일섭 전라북도문학관 학예사

 

 

시인 허소라(許素羅, 본명은 형석(衡錫), 1936-2020)는 1936년 3월 12일 전북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 499번지에서 부친 허재혁과 모친 송순엽의 3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시인은 금산중앙초와 금산동중학교, 금산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1960년 전북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과정을 거처 1988년 경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인은 전주신흥고와 군산수산전문대학에서 근무한 바 있으며, 1984년부터는 군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진 양성과 문학연구에 매진하다가 2001년 퇴직하였다. 군산대의 대학신문 주간, 대학원장 등의 보직을 맡아 대학발전에 이바지했고, 고려대학교 교류교수와 대만국립정치대학 객원교수, 중국연변대학 조문학과 객좌교수로 활동하면서 우리 문학을 해외에 알리는 데 많은 역할을 하였다.

시인의 글쓰기는 전북고녀(현 전주여고)에 다니는 누나에게 편지를 쓰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남보다 일찍 글을 깨우친 그는 고사리손으로 누나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누나의 친구들이 이를 칭찬하자 더욱 고무되어 열심히 편지를 썼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독서와 습작으로 막연하게나마 문학에의 꿈을 키워나가던 시인은 전북대학교에서 신석정 시인을 만나면서부터 인생과 문학의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스승 석정은 시인에게 시업(詩業)에 평생을 바치려면 저만한 인격, 저만한 자세, 저만한 애정을 지녀야겠구나 하는 객관적인 표본이 되었다. 석정 선생도 시인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으며, ‘소라(素羅)’라는 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시인은 1959년 8월 『자유문학』에 「지열」, 「피를 말리는 」, 「도정」 등 시 세 편이 추천되면서 등단했다. 1964년 첫 시집 『목종』을 출간한 이래 『풍장』, 『겨울나무』,『아침 시작』, 『겨울밤 전라도』, 『누가 네 문을 두드려』, 『이 풍진 세상』 등을 출간했다. 산문집으로는 『흐느끼는 목마』, 『파도에게 묻는 말』, 『숨기고 싶은 이야기』와 평론집 『못다 부른 목가』 등을 펴냈다. 석정의 시 세계를 동경해왔던 시인은 저평가된 스승의 문학사적 위치를 바로잡기 위해서 한평생 석정 문학 연구에 매달렸다. 이러한 공로로 시인은 전라북도문화상과 전북대상, 백양촌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석정 시인과 맺은 인연은 석정 시인의 사후에도 이어졌다. 석정문학회 설립, 신석정문학제 개최, 『석정문학』발간, 신석정 전집 간행, 석정문학관 건립 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2009년에는 『조선일보』에 신석정의 미발표시 「인도의 노래」를 발굴하여 공개하였다. 또한, 시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목가시인, 서정시인’으로 알려진 신석정 시인을 시대의 굴곡과 민족의 수난을 외면하지 않은 ‘현실참여 시인, 또는 저항시인’인 점을 일깨웠다. 시인은 늘 이렇게 다짐했다.

“40여 년간 석정 선생 연구만 해왔는데, 석정이 ‘목가시인’으로만 알려진 점이 늘 가슴에 아렸어요. 푸성귀로 덮어 씌워져 있는 가시면류관을 벗기고 싶었습니다.”라고.

허소라 시인은 1974년 7월 스승의 장례식이 끝난 뒤, 석정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표지도 없이 심하게 파손된 시집 여백에서 13편의 미발표 시를 발굴하였다. 이 작품들은 석정(夕汀)이 암장(暗葬)해 놓은 ’저항시‘였다. 가택 수색이라도 당할 경우를 대비하여 들키지 않기 위한 석정 선생 나름의 고육책이 ’파손된 시집의 속의 여백‘이었던 것 같다. 시인은 일생의 스승이요 어버이 같은 석정에 대한 존경과 사랑하는 마음을 ‘夕汀 스승 시비 앞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달을 보며」라는 시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나보다 먼저 온 풀벌레 울음이

하얀 달빛을 실어내고 있었다

아무리 마다 하고 마다 해도

세상은 지저귀며 다가왔다가

이윽고는 침묵으로 떠난다

 

보름달 바라보며 기울이시던 술잔,

오석(烏石)이 대신하여 세월을 떠받들고

밤마다 첨벙이던 어둠이

더듬더듬 연못을 빠져나와

음각(陰刻)의 비문 속으로 숨으면

 

산을 향해

길게 드리운 그림자 하나

단 몇 줄로 요약된 생애를

성큼성큼 건너뛰며

영원 쪽으로 가고 있다

누워 있음과 서 있음의 차이

그러나 눈 감아도 산이 되고 나무가 되어

우리를 겹겹으로 다스리나니

-「달을 보며」

 

허소라 시인은 그의 마지막 시집 『이 풍진 세상』을 펴내면서 “첫 시집 『목종』(1964)의 자서(自序)를 쓸 때는 세상에 내놓는 최초의 연서인 양 수줍고 설레었는데, 근 20여 년 만에 내놓는 제8 시집의 자서(自序)를 쓰려니 마치 마지막 유서를 쓰는 듯 만감이 교차한다.”라고 하였다. 오하근 평론가는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하여 그가 살아온 능욕의 구렁텅이에서 시대를 건지려 노력했고, 젊은이들의 기지와 풍자로 시대상을 조명하였으며, 또한 노년의 예지와 사랑으로 평화와 평등을 설파하였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시인의 삶은 아래 시 「진달래」에서 보듯 ‘한세상’으로 덮씌워 은폐되고 실제로 존재가 상실된 세상에서 ‘은근과 끈기’의 삶을 추구했던 것 같다.

 

진달래 타는 넋

봄도 지천으로 다발지고

사랑 그리운 날

너를 보니

한세상

진하게 글썽이고

-「진달래」-

 

허소라 시인은 지난해 12월 16일, 향년 84세로 영면하였다. 당시 김남곤(전 전북일보 사장) 시인의 「소라여, 소라여!」라는 조시(弔詩)의 내용처럼 지금쯤 허소라 시인은 그립던 석정(夕汀)님을 만나 목마 타고 흐느끼는 어여쁜 밀어들을 더 고운 이야기로 꽃피우고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 이준호 <허소라, 자기 구원과 시대를 증언하는 시>

 /송일섭 전라북도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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