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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시인 이상화가 선물한 죽농 '10폭 병풍', 대구시 품으로

이상화 시인이 독립운동가에 선물한 죽농 서동균 친필 병풍, 대구시에 기증돼

 

 

민족시인 이상화가 동시대 독립운동가 포해 김정규에게 선물한 죽농 서동균 친필 10폭 병풍이 대구시에 기증돼 세상에 공개된다.

 

김정규의 셋째 아들 김종해(82) 씨가 대구시에 기증한 '금강산 구곡담 시'를 담은 10폭 병풍을 공개하는 행사가 3일 오전 10시 30분 대구미술관에서 열린다.

 

김 씨는 생전 선친이 소중히 여긴 이 병풍을 상화의 고향인 대구에 기증하기로 결심하고 직접 대구시로 연락했고,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팀이 기증절차를 밟았다.

 

김 씨는 "선친께서는 이상화 시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병풍이라고 지극히 아끼셨다. 1974년 선친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집에서 소중히 보관해오다가, 이상화 시인의 고향인 대구가 이 작품을 보관해야할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 병풍은 근현대기에 걸쳐 활동한 대구의 대표적인 서예가인 서동균이 행초서로 쓴 작품이다. 병풍은 종이 바탕이 일부 박락된 부분이 있으나 글씨는 거의 손상이 없으며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한 상태다.

 

병풍의 제1~9폭에는 최현구가 1859년 내금강 만폭동 위쪽인 구곡담을 답사하고 지은 시 9수가 쓰여있다. 제10폭에 1932년 죽농이 글을 쓰고 상화가 포해에게 선물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으며 '죽농'(竹農) 호인이 찍혀 있다. 서화 작품 가운데 이처럼 제작 연도와 얽힌 사연이 뚜렷하게 기록된 것은 드문 사례다.

 

김정규는 합천 초계 출신으로 대구에서 활동하며 1924년 대구노동공제회 집행위원을 지냈고, 일본에 유학해 주오(中央)대학, 메이지(明治)대학 등에서 수학하며 독립운동을 주도했으며 신간회 활동을 한 민족지사다.

 

1932년 이 병풍이 제작될 당시 서동균은 30세, 이상화는 32세, 김정규는 34세로, 이들이 친밀한 관계였다는 사실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다. 그러나 이 병풍을 계기로 후속 연구를 통해 근대기 대구에서 활동한 인물들의 서사가 더욱 풍부해질 것으로 연구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서화연구자 이인숙 박사(경북대 외래교수)는 "이 병풍은 이상화가 10폭이나 되는 대작을 부탁할 만큼 서동균과 막역한 사이였고, 김정규는 이상화로부터 이런 대작을 증정받을 만한 인물이었음을 알려준다"며 "기증과 공개를 계기로 앞으로 관련 연구가 더욱 진행돼 이상화와 관련된 스토리로 근대의 문화 지형을 충실하게 확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의 석문과 초벌 번역은 다음과 같다.

 

제1폭 백룡담(白龍潭) 一曲白龍潭水深 銀鱗若照夕陽紅(沉) 波聲不斷千年雨 故洞歸雲曉色侵

 

첫 굽이, 백룡담 물 깊으니/ 은빛 비늘이 노을에 가라앉은 것처럼 비치네/ 물소리는 끊이지 않는 천년의 비/ 옛 골짜기로 돌아가는 구름에 새벽빛 스미네

 

제2폭 흑룡담(黑龍潭) 二曲淸湍是黑龍 雷聲忽動水聲舂 頷珠隱映(暎)無人摘 雲護靈湫尺水濃

 

둘째 굽이, 맑은 여울이 바로 흑룡담인데/ 천둥소리 갑자기 울리니 물소리가 절구질 소리인 듯/ 여의주가 은은히 비쳐도 건져낼 사람 없는 것은/ 구름이 신령한 못을 지켜 얕은 물이 짙게 보이기 때문

 

제3폭 비파담(琵琶潭) 三曲寒潭瑟瑟鳴 斷絃促柱怨秋聲 水痕猶濕湘妃淚 灑落空山月獨明

 

셋째 굽이, 차가운 못에 비파 소리 울리는데/ 끊어진 줄 급히 고르며 가을소리 원망하네/ 물 줄기는 습기 띠어 상비(湘妃)의 눈물인 듯한데/ 상쾌하고 깨끗한 빈산에는 달만 홀로 환하네

 

제4폭 벽파담(碧波潭) 四曲層層鏡面波 無風自動翠雲過 藍田數頃移仙境 梁取綾瀾玉色多

 

넷째 굽이, 층층의 거울 같은 수면의 물결/ 바람도 없는데 절로 움직이며 푸른 구름 지나가네/ 남전(藍田) 몇 이랑을 이 선경(仙境)에 옮겨다가/ 다리를 놓았는지 비단 물결의 옥빛이 많네

 

제5폭 분설담(噴雪潭) 五曲飛飛雪滿潭 瓊花點綴映(暎)晴嵐 觀瀾便若觀梅意 擎出仙橋白玉函

 

다섯째 굽이, 흩날리는 눈 못에 가득해/ 눈꽃이 연이으니 푸른 산기운 물에 비치네/ 관란(觀瀾)은 곧 관매(觀梅)의 뜻과 같으니/ 백옥 함 받쳐 들고 선교(仙橋)를 나가네

 

제6폭 진주담(眞珠潭) 六曲玲瓏石上湍 夜光浮動水晶盤 却難拾取流無跡 倫(偸)樣尼珠箇箇團

 

여섯 굽이, 영롱한 바위 위 여울물/ 야광주가 떠도는 수정반 인 듯/ 자취도 없이 흘러가니 줍기도 어려운데/ 한 알 한 알 모아다가 몰래 여의주를 만들었으면

 

제7폭 구담(龜潭) 七曲淸流落九天 奇巖不老驗龜年 靈雲洗吐神明骨 映(暎)水丹花幻作蓮

 

일곱 굽이, 맑은 물 하늘에서 흘러내리니/ 기암(奇巖)은 늙지 않아 거북처럼 나이를 세어보네/ 신령(神靈)한 구름이 씻어낸 선명한 바위 신비하고/ 물에 비친 붉은 꽃은 연꽃처럼 보이네

 

제8폭 선담(船潭) 八曲搖搖泛石舟 幾年閑繫荻花洲 仙人去後誰先渡 抛却風帆水獨留

 

여덟 굽이, 흔들흔들 물 위에서 떠 있는 석주(石舟)/ 몇 해나 물억새꽃 핀 물가에 한가로이 매어 있었나/ 선인(仙人)이 떠난 뒤 누가 먼저 건넜을까/ 버려진 돛배만 물에 홀로 남았네

 

제9폭 화룡담(火龍潭) 九曲晴雷撼碧山 電光恍惚繞波間 洞天㵳沆雲猶濕 探得驪珠帶月還

 

아홉 굽이, 맑은 날도 우뢰가 벽산(碧山)을 흔들고/ 번갯불이 황홀하게 물결 사이를 둘러싸네/ 동천(洞天)의 넓고 맑은 물에 구름이 오히려 젖은 듯한데/ 화룡(火龍)은 여의주를 찾아 달빛 아래 돌아가네

 

제10폭 우(右) 난사(蘭史) 최현구선생(崔鉉九先生) 구곡담시(九曲潭詩) 세임신중하(歲壬申仲夏) 후학(後學) 죽농(竹農) 서동균(徐東均) 서위(書爲) 포해(抱海) 김정규대인(金正奎大仁) 이상화(李尙火) 정(呈)

 

오른쪽은 난사 최현구 선생의 구곡담 시이다. 때는 임신(1932년) 중하(음력 5월). 후학 죽농 서동균이 포해 김정규 대인을 위해 쓰다. 이상화 드림. (초벌 번역 이인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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