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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안동을 걷다, 먹다] 2-병산서원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음식을 먹는다.

 

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

 

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

 

2-병산서원

 

'7칸 병풍'가득 낙강(洛江)과 병산(屛山)이 들어찼다.

 

산은 어느 새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고 하늘은 더없이 높아졌다. 바람결이 달라진 게 하루하루 느껴질 정도로 가을색이 완연해졌다.

 

게으른 해도 요즘엔 서산 넘어갈 때는 표변(豹變)한다. 서둘렀다. 너무 늦으면 '만대루'(晩對樓)의 '7칸 병풍'이 고즈넉함을 느낄 수 없을 지도 몰라서였다.

 

걷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바람은 '살랑살랑' 콧등을 스치고 햇살은 따뜻한 온기를 머금고 있는 날들이다. 한참 걷다보면 땀이 콧등에 송글송글 맺힐만하다. 낙강따라 불어오는 바람은 땀이 콧노래를 날릴 정도로 기분좋은 상태로 만들어준다.

 

안동의 가을은 안동댐과 임하댐 등 두 댐을 거느린 '호반의 도시' 안동과 찰떡궁합이다.

 

가을하늘이 높아지기 시작하는 메밀꽃 필 무렵, 나는 병산서원에 간다.

 

안동의 병산서원과 도산서원은 2019년 다른 7곳의 서원과 더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래서 안동에서 '세계문화유산'은 발에 굴러다닐 정도로 흔하기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안동사람의 자랑이나 자부심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고 해서 도산서원, 병산서원, 봉정사와 하회마을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 그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다.

 

퇴계를 모신 '도산서원'에 비해 병산서원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서원이다.

 

우리 주변 곳곳에 산재해있는 '서원'(書院)이 어떤 곳인지 조차 잘 모르기 때문에 관심이나 이해가 덜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그냥 병산서원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이 좋을 뿐이다.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음식을 먹는다.

 

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

 

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

 

2-병산서원

 

'7칸 병풍'가득 낙강(洛江)과 병산(屛山)이 들어찼다.

 

산은 어느 새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고 하늘은 더없이 높아졌다. 바람결이 달라진 게 하루하루 느껴질 정도로 가을색이 완연해졌다.

 

게으른 해도 요즘엔 서산 넘어갈 때는 표변(豹變)한다. 서둘렀다. 너무 늦으면 '만대루'(晩對樓)의 '7칸 병풍'이 고즈넉함을 느낄 수 없을 지도 몰라서였다.

 

걷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바람은 '살랑살랑' 콧등을 스치고 햇살은 따뜻한 온기를 머금고 있는 날들이다. 한참 걷다보면 땀이 콧등에 송글송글 맺힐만하다. 낙강따라 불어오는 바람은 땀이 콧노래를 날릴 정도로 기분좋은 상태로 만들어준다.

 

안동의 가을은 안동댐과 임하댐 등 두 댐을 거느린 '호반의 도시' 안동과 찰떡궁합이다.

 

가을하늘이 높아지기 시작하는 메밀꽃 필 무렵, 나는 병산서원에 간다.

 

안동의 병산서원과 도산서원은 2019년 다른 7곳의 서원과 더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래서 안동에서 '세계문화유산'은 발에 굴러다닐 정도로 흔하기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안동사람의 자랑이나 자부심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고 해서 도산서원, 병산서원, 봉정사와 하회마을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 그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다.

 

퇴계를 모신 '도산서원'에 비해 병산서원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서원이다.

 

우리 주변 곳곳에 산재해있는 '서원'(書院)이 어떤 곳인지 조차 잘 모르기 때문에 관심이나 이해가 덜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그냥 병산서원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이 좋을 뿐이다.

 

 

병산서원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선생과 그의 셋째아들 류진(柳袗)공을 배향한(기리는) 서원이다.

 

병산서원의 구구절절 내력이나 건축물에 대해서는 사실 그다지 관심을 기울일 필요는 없다. 다만 서원이 무엇을 하는 곳이었는지 정도만 알면 된다. 서원은 조선시대 유림이 설립한 '사립'교육기관으로 성리학(유교)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저 오래되고 밋밋한 서원 건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잡소리하는 게 미덥지 못할 것도 같다. 그러나 건축에 대한 심미안이라고는 도통 없는 나조차도 병산서원에 들어서면 '아 '하고 탄성을 지르게 됐다. 정문이라고 할 복례문을 들어서면 바로 만나는 드넓은 누마루로 이루어진 7칸짜리 누각과 맞딱뜨린다. 병산과 낙강을 담은 '7칸 병풍'은 만대루를 통과해서 '입교당'에서 바라보면서 비로소 만난다.

 

낙강의 은빛 백사장을 배경으로 철마다 달라지고,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병산 풍경에는 학이 날아오르기도 하고 나비와 벌이 튀어 들어오기도 한다. 요즘 같은 때는 '배롱나무'의 붉은 꽃들이 추색(秋色)을 더한다.

 

그렇게 만대루 앞을 한참 어슬렁거리다가 보면 해 떨어질 시각이다. 만대루라는 누각의 이름은 두보의 '백제성루'(白帝城樓)란 시에서

 

江度寒山閣(강은 겨울 산 누각 옆을 지나고)

城高絕塞樓(성은 높아 변방의 보루에 우뚝하다)

翠屏宜晚對(푸른 병풍 같은 산 늦도록 마주할만하고)

白谷會深遊(하얀 계곡은 모여 오래 놀기 좋아라)

...

 

'翠屏宜晚對'(취병의만대)에서 취했다. 두보가 마치 이 병산서원 만대루에 앉아 늦도록 놀다가 지은 시처럼 딱 들어맞는다.

 

 

만대루에 담긴 풍광이 마음을 움직였다면 이제 만대루도 자연에 들어맞아야 했다. 만대루를 받치는 기둥과 주춧돌을 바라보면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던 선현의 지혜가 도드라진다. 기둥은 쭉뻗지 않고 휘어진 그대로 만대루를 받치고 있고 그 기둥의 주춧돌은 원래 그 자리를 지키던 막돌이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지어올린 목수와 선비의 심미안이 그대로 드러난다.

 

병산서원을 가로막는 듯한 만대루지만 어느 한 군데 막힘없이 트인 구조는 열린 세상을 향한 선비들의 가르침인 것 같다. 중국대륙 건축물의 거대한 스케일에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7칸 만대루에 담은 세상은 아무 것도 가두지 않고 비우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은 절제의 미학이다.

 

안동에선 종종 양반과 선비정신을 이야기한다. 선비 정신을 가리치는 곳에서는 서양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연결시키는 고리타분한 강연도 종종 한다. 조선의 성리학이 만들어 낸 선비는 한자로 쓸 수 없는 추상명사다. '선달'이기도 하고 동네 '건달'이기도 한, 소박한 그러나 절제하면서 자기 도리를 다하는 그런 선비는 신선도, 도사도 아닌 우리 주변에서 늘 만나는 안동사람이었다.

 

'만대루'는 그런 선비의 우주로 향해 열린 마음을 담았다.

 

서애 류성룡을 배향한 병산서원이 여기에 있는 것은 지척 간에 '하회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붐비는 하회마을은 관광객이 몰리는 주말을 피해 가서, 늦은 오후에 병산서원을 찾는 것이 좋다. 병산서원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병산손국수'도 소문난 안동국시를 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