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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창간 75주년·'대전환의 시대']뉴트로 열풍, 구도심 활기 되살릴 기회

신세대 찾아오는 백년 전 골목 '새로운 감성이 싹트다'

 

도시재생, 낡으면 지우는 재개발과 달라
'까페 팟알' 민간서 최초 근대건축 부활
원형대로 복원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인천아트플랫폼 개관 이후 관광객 몰려

공공 앵커시설 조성과정 민간 갈등 늘어
"철지난 영화 세트장처럼 될라"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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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로'(Newtro)라는 신조어가 최근 들어 더욱 사회·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과거의 문화나 풍습, 물건 따위를 새롭게 즐기는 일'이라고 의미를 정의한다.

요즘은 유·무형 콘텐츠를 가리지 않고 뉴트로의 간판을 달면 잘 팔린다. 2020년 상반기에는 1990년대 가요를 재현한 '싹쓰리'(유재석·이효리·비)가 대중문화를 휩쓸면서 뉴트로 열풍이 각 분야로 확산했다. 지금 거리 곳곳에서는 옛것으로 인테리어를 한 음식점이나 카페를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다.

특히 사람과 공간 자체가 오래된 구도심에는 뉴트로 열풍이 도심의 활기를 되찾을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국립국어원의 용어 정의처럼 과거를 새롭게 즐기는 매력은 구도심 활성화의 화두인 '도시재생'과 밀접하다. 오래된 흔적을 모두 없애고 새로움으로만 채우는 '재개발'과는 확실히 다른 의미로 뉴트로를 접목할 수도 있다.

최근의 뉴트로 열풍 속에서 개업 10년 차가 되어가는 인천 중구 개항장거리의 '카페 팟알'을 다시금 주목했다. 카페 팟알은 인천에서 순수 민간인 주도로 잊힌 근대건축물을 본래 기능으로 되살려 낸 거의 첫 사례로 꼽힌다. 또 뉴트로를 정책적으로 도시재생에 접목할 때 경계해야 할 점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카페 팟알의 뉴트로

카페 팟알은 1880년대 말에서 1890년대 초께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식 목조건물(점포 겸용주택)이다. 개항기 인천항에 노동인력을 공급했던 하역업체인 대화조(大和組)의 사무실(1층)이자 숙소(2~3층)로 쓰였다.

조그만 어촌마을이던 제물포는 1883년 개항으로 무역항이 됐고, 순식간에 항구도시가 탄생했다. 배와 부두 등지에서 짐을 나르는 하역노동자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화조는 부두노동자들을 해운회사에 공급하는 업체 중 하나였다. 대화조 사무실은 개항기 일본인들이 모여 사는 치외법권 지역인 일본 조계 안에 있었다.

이 건축물이 현재까지 남아있음으로써 개항기 제물포항과 일본 조계를 이야기할 수 있고,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면 조선인 하역노동자의 노동력 착취 현장을 기억할 수도 있다. 인천 일본 조계 내 현존하는 유일한 정가(町家·마찌야) 유형의 건물로 건축사적 가치도 크다.

옛 대화조 사무실이 카페 팟알로 재탄생한 때는 2012년 8월이다. 문화운동가 출신 백영임(사진) 팟알 대표가 2011년 8월 건물을 매입해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작업을 거쳐 카페를 열었다. 건축물뿐 아니라 그 안에 묻혔던 옛이야기까지 함께 복원된 순간이었다.

문화재청도 그 가치를 인정해 2013년 카페 팟알은 등록문화재가 됐다. 카페 팟알의 대표 메뉴인 팥빙수와 카스텔라도 옛 문헌을 통해 많이 팔렸다는 이야기를 확인하고 선정한 메뉴다.

백영임 팟알 대표는 "예쁘게 만든 것은 사진 한 번 찍으면 그걸로 끝이지만, 그대로 남기면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다"며 "팟알에 오는 손님들은 예뻐서 오는 게 아니라 스토리가 있는 집, 무형의 가치를 채운 집을 찾아서 온다"고 말했다.

 

 

 

카페 팟알 3층 다다미방에는 벽면 일부에 벽지를 바르지 않고 유리장을 씌워 액자처럼 전시하고 있다. 그 벽면에는 술 약속이나 음담패설 등 하역노동자들이 쓴 낙서가 그대로 있다. 옛것을 흉내만 내는 게 아니라 옛것의 이야기를 채워넣어 지금 이야기하는 게 팟알의 뉴트로다.

팟알에서 근대 인천을 담은 엽서나 마스킹 테이프, 머그컵, 지도, 노트 등 이른바 '인천 굿즈'를 판매할 수 있는 것도 그때 그 공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뉴트로와 도시재생

2009년 인천 중구청 인근에 근대건축물을 활용한 인천아트플랫폼이 개관한 이후 이 일대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활동 근거지가 됐다.

카페 팟알이 문을 연 이후에는 개항장거리 일대 근대건축물에 새롭게 둥지를 튼 가게들이 늘어났다. 지자체는 일반 건물들을 일본 조계의 옛 모습처럼 꾸미는 사업을 추진했다. 인천도시공사 등 공공영역에서 아예 근대건축물을 매입해 활용하는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개항장거리 일대가 제법 '뉴트로 느낌'이 나면서 관광객이 몰렸다. 강화·옹진·월미도 등 해양관광지를 제외한 인천 도심 관광은 개항장과 인근 인천차이나타운이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긍정적인 변화일까. 카페 팟알 백영임 대표 얘기를 더 들어봤다.

그는 "도시재생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계속 남아서 살게끔 하는 것인데, (인천 개항장 일대는) 몇몇 어르신을 빼고는 원주민이 떠나고 있다"며 "문제는 공적인 기관에서 원주민이 계속 살 수 있게 지원하는 게 우선인데,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원주민의 생계와 겹치는 사업을 추진해 경쟁을 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중구 신포동이나 인천차이나타운 등지를 포함한 개항장 일대를 다시 활성화할 앵커시설로는 이미 인천아트플랫폼이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근대건축물이 밀집한 이 일대에 카페 등 특색 있는 가게가 늘어나 민간영역에서 활성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은데, 공공영역이 지속해서 앵커시설 조성을 목적으로 민간영역과 부딪치는 갈등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인천시가 근대건축물인 제물포구락부를 세계 맥주 판매점과 카페로 활용하려다 계획을 철회한 일이다. 문화재에서 맥주를 판다는 발상에 지역 역사학계는 물론 지역 상인들의 반발도 심했다.

인천도시공사가 중구 송학동의 단독주택을 매입해 활용하는 '이음 1977' 등도 공공영역이 민간영역을 침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지역사회에서 나온다. 개항장거리 일대가 모양만 흉내 낸 일본식 건물로 채워지면서 그저 사진만 찍고 지나칠 영화 세트장처럼 변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카페 팟알은 다시 치열한 고민 속에 새로운 생존 전략을 찾고 있다. '인천 굿즈'를 다양하게 기획하고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팟알 문방구'를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운영방식과 공간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개항장 뉴트로에 이야기를 입히는 시도는 분명하다.

백영임 대표는 "나는 장사꾼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남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라며 "단순히 겉모습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닌 오래갈 수 있는 무형의 가치를 채워나가는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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