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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작가와 함께하는 고개와 길] 687. 주례 냉정고개

  • 등록 2020.09.24 16:00:25

‘천하일품’ 물맛 좋기로 소문난 장꾼들의 안식처

 

“바로 여기가 냉정고개 아닌교.” “맞아요, 냉정고개.” “여기가 고개요. 저 아래로 가면 주례고 저기로 가면 서면이고.” 여기는 ‘냉정고개’ 버스 정류장. 약간은 실망이다. 고개가 어째 펑퍼짐하다. 오르막은 확실하게 오르막이고 내리막은 확실하게 내리막인 고개를 기대했는데 오르막도 펑퍼짐하고 내리막도 펑퍼짐하다. 정류장에서 십 분가량 꾸물대며 일흔은 돼 보이는 어른 세 분에게 차례차례 ‘여기가 고개 맞느냐’ 여쭤본 것도 그래서다. 대답은 한결같다. 여기가 냉정고개다.

 

미심쩍은 생각에 정류장 육교로 오른다. 육교 중간쯤 서서 바라보자 고개라는 실감이 비로소 난다. 주례 쪽도 그렇고 반대편 서면 쪽도 그렇고 풍광이 아스라하게 펼쳐진다. 특히 주례 쪽은 첩첩산중이다. 저 산을 휘돌아 낙동강 강물은 하단 바다에 닿을 것이며 저 산을 휘돌아 낙동강 노을은 사람들 마음에 스며들 것이다. 서면 쪽은 탁 트인 하늘. 백 년 전, 이백 년 전에도 하늘은 탁 트였을 것이다. 새벽에 첩첩산중을 바라보며 걸었다면 저녁엔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보며 걷던 고갯길이 여기 냉정고개다.

 

동래·구포·김해 5일장 장꾼들의 샘터

택리지 언급될 만큼 우수한 물맛 자랑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물 여전

고개 너머엔 황령산·낙동강 풍광 가득

 

‘이 샘은 예로부터 냉정고개를 왕래하던 행인의 갈증을 해소하는 귀한 샘터였고 특히 부산장, 동래장, 하단장, 구포장, 김해장을 왕래하던 사람에게 물 좋은 샘터로 널리 알려져 왔다.’ 냉정고개는 오일장 장꾼이 걷던 길. 장꾼이 장으로 가다가 잠시 쉬면서 목을 축이던 샘 이름이 냉정(冷井)이었다. 찬 우물 냉정은 부산 여기만 있진 않았을 터. 조선팔도 곳곳에 냉정이 있었고 냉정고개가 있었다. 부산 냉정고개 유래가 된 냉정 샘은 지금도 남아서 동네 빨래터로 쓰인다. 냉정 샘 안내판에 나오는 부산장이며 동래장 등은 몇 번을 읽어도 정겹다.

 

그 시절은 어땠을까. 부산진시장을 부산장이라 그러고 동래시장을 동래장이라 그러던 오일장 그때도 지금처럼 펑퍼짐하고 왕복 10차선 도로가 들어설 만큼 널찍했을까. 물론 아니다. 고갯길 양쪽은 백양산 끄트머리와 엄광산 끄트머리. 두 끄트머리가 겹치던 가파른 고개였다. 주례 쪽에서 장이 서면 첩첩산중을 보며 걷던 고갯길이었고 서면 쪽에서 장이 서면 탁 트인 하늘을 보며 걷던 고갯길이었다. 고갯길은 1910년대 경부선을 놓으면서 평평해졌고 이후 경부선을 따라서 부산방직, 태화고무 등이 들어서면서 넓어졌다.

 

 

고갯길 답사는 어디서 시작하면 좋을까. 도시철도 개금역에서 내려 냉정역 방향으로 걸어도 되고 냉정역에서 내려 곧장 둘러봐도 되지만 고갯길 걷는 맛을 조금이라도 보려면 주례역에서 내려 좋은삼선병원을 끼고 걷는 게 낫다. 주례역에서 냉정고개까지는 은근히 가팔라 등짝에 땀이 밴다. 냉정고개를 거쳐 부산진시장이나 동래시장까지 내처 걸으면 내가 장꾼 같단 생각도 들겠다. 내 안에 도사린 역마살 같은 게 슬며시 불거질지도 모를 일.

 

냉정 실내운전연습장, 냉정 온천찜질, 냉정 폰마트, 냉정마을 어울림센터…. 냉정고개 대로변과 도로 안쪽 이면도로에서 접하는 간판들이다. 냉정고개는 옛 모습을 잃었어도 이름만큼은 도로명으로, 간판으로 남아 고개 맛을 한껏 낸다. 둘러보다가 냉정역 5번 출구가 보이면 걸음을 늦출 것! 5번과 3번 출구 샛길로 길을 꺾으면 이내 눈이 번쩍 뜨인다. 전설이려니 여겼던 ‘냉정 샘’이 화강암 표지석과 함께 샛길 오른편에 실화처럼 버티고 섰다.

 

“안 차가워요.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해요. 이런 물은 부산천지 없어요. 한 번도 안 말랐어요. 빨래하면 때도 잘 빠지고요.” 냉정 샘에서 빨래하는 아주머니는 일흔셋. 당감동에서 이리로 이사 왔다. 큰애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이사 왔으니 여기 산 지는 삼사십 년. 삼사십 년 살면서 단 한 번도 마른 적이 없었다며 샘을 치켜세운다. 지금은 오염돼 빨래할 때나 쓰이지만 샘물은 여전히 맑고 따뜻하고 시원하다. 손을 담그면 여전히 미끌미끌하다.

 

냉정 샘은 여기 주민에게 자부심이자 향수다. 그러기에 빨래하는 아주머니는 부산천지를 들먹이고 초등학교 시절 큰애를 들먹인다. 자부심은 근거가 충분하다. 〈택리지〉는 1714년 나온 조선 지리서. 거기에 언급될 정도라고 냉정 샘 안내판은 밝힌다. 디지털 백과사전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이렇게 나온다.

 

‘택리지에 조선 13도 중 물이 청랭하고 감미로운 곳이 3~4개소가 있는데 냉정동 물맛이 천하일품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일본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지방 제후들이 다도에 심취해 다용수(茶用水)를 조선에까지 와서 구해 갔다고 하는데, 이 다용수가 냉정 샘물이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냉정고개 버스 정류장 부근엔 주유소가 모였다. 육교 저쪽에 두 군데, 이쪽에 한 군데다. 냉정 샘을 보고 난 후라서 그렇겠지만 주유소가 현대판 샘으로 보인다. 장꾼이 샘에서 목을 축이듯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우는 차들. 사람이 쉬어 가기 좋은 곳은 차도 쉬어 가기 좋은가 보다. 여기서 차가 쉬어 가듯 조선시대는 말이 쉬어 갔다. 고개 너머 태화고무 일대에 있던 자연마을 이름은 마철리(馬鐵里). 말을 쉬게 하면서 말발굽 갈아 끼우던 마을이었다. 태화고무 상표가 ‘말표’인 까닭을 알 듯하다.

 

고개 넘어 서면 쪽으로 걷자 저 멀리 황령산 꼭대기가 보인다. 옛 지도는 황령산 꼭대기를 봉(烽)으로 표했다. 봉수대가 있었다. 봉수대는 위급할 때는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봉홧불이나 연기를 피웠다. 평상시엔 왜 피웠을까. 짐작건대 그렇게 해서 봉홧불 담당자의 근무지 무단이탈을 막았다. 비 오는 날 빼고 매일 타올랐던 황령산 봉홧불, 비 오는 날 빼고 거의 매일 고갯길 넘었을 냉정고개 장꾼. 장꾼에게 봉홧불은 내일을 기약하는 희망의 등불이었다. 그새 해는 넘어가고 어둑하다. 봉홧불 같은 등불이 도로변에 하나둘 켜진다.

 

▶가는 길=오가는 시내버스는 많다. 북구나 사상 쪽과 서면을 오가는 시내버스는 거의 다 ‘냉정고개’ 정류장에서 선다고 보면 된다. 도시철도 2호선 주례역에서 내려 서면 쪽으로 걸어가면 고개가 나온다.

 

동길산 시인 dgs1116@hanmail.net

 

 

※이 기획은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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