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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작가와 함께하는 고개와 길] 686. 송도 새띠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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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윗길… 말 다니던 길, 새띠 흰 꽃 피던 길

 

송도중학교는 내 모교다. 송도 윗길 가장 높다란 데 있다. 송도 아랫길로 다니는 48번 버스를 타고 등하교했지만 송도 윗길로 다닌 날도 꽤 됐다. 아랫길과 달리 윗길은 구불구불했다. 이리 꺾이고 저리 꺾이며 속을 뒤집었다. 그래도 윗길이 좋았다. 바다 풍광 때문이었다. 탁 트인 바다를 내려다보며 영어단어를 외웠고 사춘기 시를 외웠다.

 

송도 윗길은 지금도 그때 그대로다. 이리 꺾이고 저리 꺾이며 속을 뒤집는다. 내가 걸어온 인생길 같다. 어떤 날은 길이 꺾여서 꺾였고 어떤 날은 스스로 꺾여서 꺾였던 인생길. 걸어온 길이 걸어갈 길보다 짧은 예전에도 그랬고 걸어갈 길이 걸어온 길보다 짧은 지금도 그렇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리 꺾이고 저리 꺾이며 살아가는 장삼이사의 길이 송도 윗길이다.

 

남부민동~암남동 잇는 유일했던 길

바다 보며 구불구불 고개 넘어 송도로

일제강점기 순우리말 이름 내팽개쳐

‘솔던’ 길이 1920년 부산 첫 신작로 돼

목마장 있던 천마산서 ‘천마로’ 도로명

샛디 커뮤니티센터에 옛 이름의 흔적


 

 

 

 

새띠고개는 송도 윗길 옛 이름이다. 송도 아랫길이 생기기 백 년 전, 이백 년 전 지명이다. 새띠는 풀의 종류. 다 자란 풀은 말려서 초가지붕을 이을 때 썼다. 새띠 어린순은 장노년층 추억이 담긴 ‘삘기’였다. 조선팔도 곳곳에서 무성했기에 조선팔도 곳곳이 새띠마을이고 새띠고개였다. 지금은 국어사전에서나 보이는 말, 새띠. 일제가 득세하면서 조선어라곤 일자무식인 일본인 면서기가 내팽개친 순우리말 지명이 새띠다.

 

‘그때 그 시절 충무동골목시장.’ 도시철도 자갈치역에서 내리자 약간의 갈등이 생긴다. 송도 윗길 가는 버스로 곧장 갈아타나, 충무동시장에 들렀다 가나. 갈등은 이내 사그라진다. 들렀다 가도 길이 만나지는 까닭이다. 들르기 잘했다. 6080세대에게 추억의 먹거리로 재탄생했다는 고갈비거리가 삼빡하고 50년 전통을 내세우는 복국집이 삼빡하다. 시장을 지나 고성횟집에서 오른쪽으로 틀면 ‘천마로’ 도로 안내판이 보인다. 송도 윗길의 우아한 표현이 천마로다.

 

천마로는 송도를 굽어보는 천마산에서 따온 도로명이다. 송도중학교까지 이어진다. 천마산 아랫동네인 초장동과 함께 지명에서 ‘말’ 냄새가 물씬 난다. 실제로 조선시대 말 목장이 천마산 아래 이쪽저쪽에 있었다. 천마산 이쪽 아래인 초장동 일대는 목마장이 영도로 옮겨가면서 목마장 대신 풀 초(草)를 써 초장동이 되었다.〈서구청 홈페이지〉에선 천마산 꼭대기 널따란 바위에 천마 발자국 전설이 전한다.

 

영도 목장원 상호 유래도 목마장이다. 영도에도 목마장이 있었다. 조선시대 목마장은 나라가 관리하는 국마장이었다. 책임자인 감목관은 그 지역 수령이 겸했다. 말을 달라는 데가 차고 넘쳤으므로 목마장은 한 군데만 있지 않았고 여기저기 있으면서 옮겨 다녔다. 옮겨 다닌 이유는 군사적인 필요나 방목지 풀 고갈, 주민 민원 등이었다.

 

주민 민원은 뭘까. 말이 울타리 넘어 민간인 밭작물을 망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국가 재산인 말에 해코지했다간 곤장 맞거나 옥살이를 했다. 그런 탓에 원성이 자자했다. 목마장이 옮겨가면 기쁜 나머지 ‘축마비(逐馬碑)’를 세울 정도였다. 지금은 신주 모시듯 떠받드는 지자체가 적지 않지만, 한 시절 기피 대상 1호가 목장이고 말이었다.

 

목장 이동의 역사는 부산 변천의 역사이기도 했다. 옛 다대강변에서 천마산에 이르는 널따란 괴정 목장은 영도로 옮겼고 영도 목장은 해군부대가 들어선 1881년 이후 송도 모지포로 옮겼다. 송도가 조선 마지막 부산 국마장이 되면서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내보내는 소가 건강한지 혈청을 검사하던 혈청소가 들어섰다. 혈청소는 이후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들어서는 바탕이 되었다.

 

‘샛디 커뮤니티센터.’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느릿느릿 걷는 송도 윗길. 영국 공사관 옛터 표지석이 반갑고 남부민1동 복합커뮤니티센터가 반갑고 영화 〈국제시장〉에 나왔지 싶은 오래된 주택이 반갑다. 새띠고개와 관련해서 가장 반가운 건 남부민2동 행정복지센터 입구 행정그림지도다. 거기에 샛디 커뮤니티센터가 나온다. 샛디는 새띠 변음이다. 남부민동 옛 이름이 샛디다. 새띠고개를 샛디재라 불렀다. 커뮤니티센터 명칭으로나마 새띠고개가 남아 있고 새띠마을이 남아 있는 게 그저 반갑고 그저 고맙다.

 

새띠고개는 남부민동에서 암남동으로 가는 유일했던 길. 일제강점기 충무동에서 송도로 이어지는 해안을 매립해 송도 아랫길이 생기기 전까지 육로는 이 길이 유일했다. 새띠고개를 넘어 송도 송림 초가마을에 닿았고 암남 모지포 목마장에 닿았다. 고갯길 양쪽에서 하늘대는 새띠 하얀 꽃은 사람 발목을 얼마나 붙잡았을 것이며 내가 중학교 시절 그랬듯 탁 트인 바다는 사람 마음을 얼마나 붙잡았을 것인가. 형편이 허락된다면 언젠가는 나도 그러리. 눈동자 선한 말 한 필 끌고 고개 넘으며 새띠 하얀 꽃에 발목이 붙잡히리. 탁 트인 바다에 마음 붙잡히리.

 

“리어카도 못 다닐 정도로 길이 솔았지라. 그래서 소리길, 소리길 그랬어. 솔길이 소리길이야.” 고갯마루 송도중학교를 지나면 왼쪽 아래가 ‘울지마 톤즈’ 이태석 신부 생가다. 생가에 들렀다가 되돌아 나오면 버스 정류장 근처 이정표가 발목을 또 잡는다. ‘백년 송도 골목길’을 가리키는 이정표다. 골목길 축담 평상에서 만난 아흔 살 남짓 할머니는 왜정시대부터 여기 살아 척척박사다. 송도 윗길을 넓혀 차가 다니게 된 이야기며 해수욕장 놀러 가는 송도상고생이 솔길로 몰려다닌 이야기며 말도 또렷또렷하고 기억도 또렷또렷하다. 가다가 먹으라며 양과자까지 건넨다. 골목길에서 접하는 인심이다. 길이 좁다랄수록 인심은 널따랗다!

 

길을 넓혀 차가 다녔다던 송도 윗길. 송도 윗길은 그야말로 떵떵거리던 길이었다. 얼마나 떵떵거렸을까. 긴말 필요 없다. 이 한 문장이면 족하다. 부산 최초의 신작로! 신작로는 황톳길과 시멘트 도로 중간치다. 평평하게 넓힌 황톳길 또는 그런 길에 자갈을 깐 도로였다. 1920년대 부산 최초 신작로가 된 송도 윗길로 해수욕장 가는 차들이 몰렸다. 1950년대엔 한국전쟁 피난민이 길 아래위 터를 잡고 곳곳에 계단을 내었다. 그러면서 원래 모습에서 멀어졌다. 이름마저 새띠고개에서 송도 윗길로 굳어갔다.

 

지금 선 곳은 백년 송도 골목길 끝 지점. 이리 가면 송림공원이고 저리 가면 해수욕장이다. 어디로 갈까. 다리가 뻣뻣한 게 더 걷기는 무리지 싶다. 해수욕장 저 너머 가물가물 보이는 천막은 암남공원 해녀 횟집 촌. 모지포 가는 버스를 타면 금방이다. 횟집 촌은 생각만 해도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가는 길=시내버스 7, 9, 16, 17, 61, 87, 134, 161번이나 직행버스 1003번을 타고 자갈치역·충무동교차로에서 내리면 된다. 도로 건너편이 충무동시장이다. 7번은 암남공원, 모지포마을을 거쳐 감천 수산가공단지까지 간다.

 

동길산 시인 dgs1116@hanmail.net

 

※이 기획은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