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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심층 인터뷰] “‘예배 지옥’에 공황장애”…신천지 전 신도의 참담한 고백

 

“공황장애 약이 없으면 단 하루도 버틸 수가 없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날’ 이전으로 시계를 되돌리고 싶습니다. ”

 

은정(가명·40) 씨는 신천지 신도였다. 이번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보며, 각종 정신병에 시달리게 했던 신천지 ‘예배 지옥’을 되새겼다고 한다.

 

<부산일보>는 인터뷰에 응한 은정 씨의 신변 보호를 위해 주거지역 등 구체적인 내용을 최대한 노출하지 않았다.

 

‘미친X’이 됐다

 

“친인척의 수술과 장례에도 무조건 ‘예배 인증’을 해야 했습니다. ‘하늘나라를 누려야 한다’며 구역장 등이 수십 통 전화와 문자를 해댔습니다. 가족의 불상사에도 못내 예배를 하러 가는 스스로의 모습에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가족에게 ‘미친X’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신천지의 예배 인증은 ‘지문’과 ‘휴대전화의 QR 코드’로 이뤄진다. 한 번은 은정 씨가 예배에 끝까지 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자, “대신 인증해 줄테니 우편함에 휴대전화를 넣어라”는 지시도 받았다고 한다.

 

타 지역을 여행할 때는 해당 지교회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 신천지 신도인지 모르는 가족 몰래 여행지에서 빠져 나와 예배 후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만일 지문과 QR 코드 인증이 안된다면, 해당 지교회 부녀회장과 ‘인증샷’ 사진을 남겨 증명해야 한다. 

 

은정 씨는 예배 강요로 아내가 신천지 신도임을 알아차린 남편의 외출 감시까지 더해져,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예고된 코로나19 확산 

 

 

은정 씨는 코로나19 사태 확산의 근본 원인도 이같은 예배 특성 때문으로 본다. 아무리 확진자라도 걷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면, 예배는 무조건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늘나라의 지도자인 14만 4000명에 들기 위해 꼭 가야 한단다. 은정 씨가 독감으로 입원했을 때도 ‘감염 우려’에 관계없이 마스크를 낀 채 예배에 참석하라고 강요를 당했다. 

 

“31번 확진자가 ‘예배만 갔다가 집으로 왔다’는 말은 믿기지 않습니다. 예배가 끝나면 구역장, 구역 식구와 반드시 만나야 하고 식사도 자주 합니다. 예배 말씀도 다시 나누는 ‘구역 예배’가 다시 시작되는 거죠.”

 

은정 씨는 코로나19가 덮친 이 시국에도 어디선가 신천지 예배는 계속될 것으로 본다. 건물은 폐쇄됐지만, 카페나 다른 사무실 등지에서 은밀한 신도들의 집단 만남이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여러 언론에서 알려진 대로 예배 때의 감염 위험도 높다고 한다. 양반다리를 했을 때 무릎 끝이 부딪힐 정도로 붙어 앉고, 가끔 앞에 노래하는 사람의 율동을 다 같이 따라하기도 해서다.

 

모두가 나를 속였다 

 

 

5~6년 전이었다.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 교실’에 나갔다가 알게 된 사람이 매일 연락을 해왔다. “집에는 잘 들어갔나요?” “오늘은 뭐했어요?” “오늘 기분은 어때요?” 계속 안부를 물었다. 부담스러웠지만, 살던 동네가 아니어서 친구가 없던 터라 큰 거부감은 없었다. 

 

몇 번의 만남 후 그 사람은 자기가 다니는 한 교육 프로그램에 은정 씨를 초대했다. 거기서 새로운 만남을 가진 은정 씨는 다른 치료 교육까지 받게 됐다. 처음에는 카페에서 교육을 받다 밀폐된 공간이 있는 센터로 장소를 옮겼다. 

 

만남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이뤄졌다. 자주 보다 보니 마음에 맞는 친한 친구까지 생겼다. 함께 술도 먹고, 속사정도 나누며 친분을 다졌다. 

 

그러던 중, 모임에서 식사를 하다 바로 옆 테이블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끈질기게 쳐다보던 그 손님은 갑자기 은정 씨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은정 씨의 가정사를 언급하며 “당신을 위해 하늘에서 얼마나 기도하는데,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당황은 잠시, 은정 씨는 계속 눈물을 흘렸고 이내 신천지까지 이끌리어 입교하게 됐다. 

 

“저와 친해진 친구도 ‘정 아니다 싶으면, 탈퇴하면 되니 같이 가보자’라고 하더라고요. 마치 새 신도였던 것처럼 저를 속인 것이죠. 저의 기분, 속사정, 태도 등을 신천지 쪽에 다 보고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모두가 나를 포섭하기 위한 ‘집단 연기’였습니다.” 

 

벗어날 수 없다 

 

신천지를 탈퇴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정확하게는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예배 강요에 지칠 대로 지친 은정 씨는 구역장과 다툰 후 탈퇴를 선언했다. 처음에는 “이때까지 배운 게 있는데 왜 그만두느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이후 전화와 문자가 쏟아졌고, 구역장이 집까지 찾아오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은정 씨가 만나주지 않자, 5~6명의 신도가 번갈아 가며 은정 씨 집 앞에서 ‘땅 밟기’라는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은정 씨가 돌아오도록 주변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은정 씨는 마침내 8번 연속 예배에 빠지면서 제명처리가 됐지만, 이후에도 신천지 신도들이 집 주변을 서성였다고 한다.

 

“한 번은 공황장애로 집 마당에 바람을 쐬러 나왔는데, 누군가 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 얼굴을 드니 ‘구역 식구’였습니다. 눈이 마주치니 전봇대 뒤로 숨더라고요. 지금도 여러 교육장에서 친해진 사람들의 연락이 계속 옵니다.” 

 

포교 못 해 벌금만 100만 원 

 

최근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이 코로나19 사태에 책임을 지겠다며 12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신천지의 막강한 자금력이 논란이 됐고, 6일 대구시 등은 이 지원금을 거부했다.

은정 씨는 신천지가 반강제적으로 헌금과 벌금을 강요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한 해 동안 포교를 못 해 벌금 100만 원을 부과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왜 돈을 안내냐고 하더라고요. 건축 헌금을 내야 한다며 1구좌(100만 원) 이상을 요구하는 각서 같은 것도 써야 했습니다. 돈이 없다고 해도, 기도하면 저절로 생기게 돼 있다고 합니다. 적잖은 돈 때문에 청년들은 아르바이트까지 하고요.” 

 

언론 등에서 수차례 거론된 정치권 연루설도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은정 씨는 전했다. 실제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특정 후보를 찍으라는 구역장 요구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신천지가 밝힌 명단도 강한 의심이 든다. 1년 전에 함께 탈퇴한 지인이 이번 신도 명단에 자신이 들어있다고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다. 

 

더는 피해자가 없기를… 

 

은정 씨는 신천지를 탈퇴할 때 구역장으로부터 “신천지 안에서 있었던 일은 밖에서 절대 언급하지 마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도 이같은 '폭로'에 나선 것은 더는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신천지의 실체를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신천지가 계속 뉴스에 나오면서 포교 당했던 과거 기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상대로 사기를 쳤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완전히 신천지에 빠진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저처럼 의심이 든다면 현실을 직시하길 바랍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