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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新팔도명물] 오묘한 비색에 실린 고려의 기백… 부안 '청자'

깨지고 흩어져도… 조각조각 서린 푸른 꿈이여

 

20년 전인 2002년 전라북도 부안의 고려청자와 관련된 주목할 만한 사건이 미국에서 있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계 미국인 린다 수 박이 쓴 동화 '사금파리 한 조각'이 세계적 권위인 뉴베리 수상작으로 결정된 것이다. 뉴베리상은 세계적 권위의 아동문학상으로, 1922년부터 매년 그 해 가장 우수한 동화작품이 선정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사금파리 한 조각'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고려시대 최고의 청자 생산지였던 전북 부안군 보안면과 줄포면 일대란 사실이다.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柳川里) 일대에는 고려시대 13조창 중 하나인 안흥창(安興倉)이 존재했다고 문헌(반계 유형원 1656년 편찬 지리지 '동국여지지')에 나와 있으며, 유천리에서 제작된 다량의 청자가 조운(漕運: 뱃길을 통해 지방에서 거둬들인 조세·특산물을 수도로 운송하는 제도)로를 통해 수도 개경을 비롯한 각지에 공급된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 명품 청자의 고장 '부안군'

 

부안 청자는 고려시대 보안면과 줄포면 일대에서 주로 생산된 대한민국의 찬란한 문화유산이다. 부안 청자가 800년의 잠 속에서 깨어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29년이다. 당시 일본인 노모리켄(野守健)에 의해 최초로 발굴·조사됐다.

이때 발견된 고려청자 가마터는 전남 강진에 버금가는 가마터라고 학계에 보고됐다. 1938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12호 가마터의 퇴적구에서는 비색청자·상감청자·무문백자·상감백자와 함께 동화청자가 혼재된 층이 발견돼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후 일본인들에 의해 수많은 청자와 파편이 도굴돼 일본으로 유출됐다.

 

고려시대 보안·줄포면 일대서 생산된 문화 유산
강점기인 1929년 발굴, 800년만에 잠에서 깨어나
일본인들에 의해 많은 유물과 파편 도굴돼 유출
 

 

부안 유천리와 진서리 청자 요지군은 1963년 국가 사적 제69호와 제70호로 지정됐으며, 1966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유천리 12호 일대의 유물 퇴적구 일부가 추가 발굴조사됐다.

 

 

첨단기술의 '상감청자'와 '대매병'

 

부안 고려청자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화려한 상감청자 문양에 있다. 하얀색과 검은색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흑백상감청자는 부안 고려청자의 정수이다. 문양은 단순히 모란이나 국화와 같은 꽃모양을 반복해 새긴 것도 있지만,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부안만의 독특한 정서가 드러난 문양이 있다.

부안청자박물관 한정화 학예사는 "물가의 고즈넉한 자연 풍광을 담은 문양, 즉 물새가 유유히 물 위를 헤엄치는 가운데 물가에 버드나무와 갈대가 하늘거리는 모습이라든가 부부가 아름다운 정원에서 시를 감상하고, 쓰고, 악기를 연주하는 등 고려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문양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부안 고려청자만의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물가 고즈넉한 자연풍광·유유히 헤엄치는 물새
부부가 정원에서 시를 쓰고 악기를 연주하는 등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문양"… 부안만의 정서 담겨
 

 

부안 청자의 또 다른 특징은 크기가 50~100㎝되는 대형 매병이다. 이 고려매병을 '대매병(大梅甁)'이라 부르는데, 유천리에서만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매병의 존재는 일제강점기에 부안 청자가마터에서 유출되어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유천리 일괄 유물 중에 섞여 있는 파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높이가 80㎝에 달하는 상상을 초월한 크기의 용무늬 매병은 비록 일부가 훼손된 상태이지만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매병 어깨부분의 복사무늬와 온몸을 감싼 용틀임, 용의 발과 갈기, 비늘과 강한 기를 내뿜는 용의 얼굴에서 고려의 기백이 느껴진다.

 

 

아름다운 빛깔 '상감동화청자'

 

도자기에 구리 안료를 사용해 붉은색의 아름다움을 구현한 세계 최초의 나라는 고려였다. 청자에서 붉은색을 내는 안료인 산화동은 가마안의 불의 상태에 따라 녹색, 검은색, 붉은색 등 다섯 종류로 색의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에 다루기가 매우 까다로운 재료이다.

자기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산화구리로 붉은색을 낸 것은 14~15세기 원·명대에 들어서였으니, 고려 도공들의 기술은 첨단을 달리고 있었던 셈이다.

동화청자로 가장 명품을 꼽으라면 삼성리움미술관 소장의 국보 제133호인 '청화동화연화무늬표주박모양주자'가 있다. 이 유물은 고려 무인정권의 최고 권력자였던 최항(崔沆, ?~1257년)의 무덤에서 묘지석과 함께 출토됐다고 전해지며, 1257년 무렵 부안군 유천리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안 고려청자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부안지역에서 나오는 자토(자기를 만드는 흙)에 의해 나타나는 신비로운 비색에 있다. 부안청자 제작에 사용된 흙은 강진에 비해 철분이 약간 더 함유되어 있어서 굽게 되면 회색이 짙게 나온다. 여기에 비색 청자유약을 입히면 회색 바탕흙 색깔이 유약 사이로 비쳐 푸른 빛깔의 자기가 나온다.

한편 고려시대 부안에서는 백자도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부안 유천리와 강진 상당리 지역에서 고려백자가 만들어진 사실이 학계에 의해 확인됐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부안 유천리에서 만들어진 고려백자에만 흑상감이나 흑상감과 청자토로 상감무늬를 장식했다는 점이다.

온전한 형태의 부안 고려백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몇 점밖에 없고, 유천리 고려청자가마터에서 출토된 소량의 파편이 이화여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부안 청자의 보고 '청자박물관'

 

부안군은 지역에서 발굴된 청자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문화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난 2011년 보안면 유천리에 청자박물관을 개관했다.

유천리 도요지 복원·정비사업의 일환으로 건설된 부안청자박물관은 국내 최고의 시설과 최대 규모를 갖추었다.

 

 

관람객들은 청자박물관에서 청자 역사, 부안 청자의 발생과 변천과정, 부안 도요지의 특징, 상감청자 등에 대한 모든 것을 감상하고 그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다.

/전북일보=홍석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