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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박미영의 '코로나 끝나면 가고 싶은 그 곳'] 불의 사원, 조로아스터교의 본산 야즈드

니체가 말한 초인의 성지, 1600년간 타오른 불꽃이…

 

빛에도 상처가 있다니! 드디어 얼굴을 드러내는 빛의 묘혈(墓穴)들, 아가미 닫혀가는 물고기처럼 사람들 죽음의 집을 향해 오르는 중이었다. 짓이겨진 풀에서 햇볕 냄새, 어린 새들이 무너진 지붕 위로 날아올랐다.(졸시 -'불의 사원')

 

조로아스터교의 조장(鳥葬) 터였던 침묵의 탑을 향해 오르며 그때 내가 외던 것이다. 두 개의 흙탑은 남자, 여자와 아이로 구분되어 역시 주검의 자리마저 이슬람식으로 철저하게 이분법적이었다. 멀리 모스크의 첨탑에서 애절한 아잔(aḏān)이 들려온다. 무슬림들의 기도 시간인가보다. 하지만 여긴 다크메이 자르토슈티얀, 즉 이슬람보다 천 년 전 조로아스터교도들의 장지여서 누구도 메카를 향해 무릎을 꿇지 않는다.

 

무너진 침묵의 탑을 둘러싼 높이 70미터 남짓 풀 한 포기 없는 민둥산 위로 검은 새들이 산 자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불길하게 울며 날았다. 숨이 차고 땀이 흘렀다. 그리고 서글펐다. 뙤약볕 아래 모든 것은 빛이고 흙이었다. 햇빛에 빛나고 반짝거리는 흙더미들에서 매캐한 먼지 냄새가 났다. 시간이 한 일 중 하나이리.

 

◆페르시아, 페르시아

 

이란은 고대 아케메네스왕조의 수도 파르스(fars)에서 파르시어(farsi)를 썼다 해서, 그리스 사람들이 페르시아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케메네스왕조(기원전 550년-기원전 330년),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점령시대(기원전 330년-기원전 250년), 사산왕조(226년-651년), 사파비왕조(1507년-1722년), 카자르왕조(1781년-1925년), 팔레비왕조(1925년-1979년) 시대를 넓은 의미로 페르시아제국 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팔레비왕조는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지나친 사치와 친서방의 진보적 면모를 보여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혁명으로 전복되고 현재 이란은 대통령제 민주주의를 가미한 신정국가로, 국가의 모든 권력이 종교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에게 집중되어 있다. 1989년 호메이니의 뒤를 이은 하메네이가 현재의 아야톨라다.

 

수도 테헤란은 곳곳에서 기관총을 든 군인들이 아야톨라의 초상화가 걸린 건물과 도로를 지키고 있었다. 공항에서부터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게 스카프로 감싼 머리가 지근거려 나는 테헤란에서 늘 투덜거리며 다녔다. 자신들의 관습을 이방인에게도 적용하는 이 무례는 뭐람. 그 애먼 감정은 이어 제대로 터지지 않는 휴대전화와 인터넷으로 옮겨 갔다가 종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한글 이름으로 된 싸인을 해달라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들에서 풀리게 된다.

 

 

당시 한류 드라마 열풍이 세계를 휩쓸던 때여서 테헤란 곳곳의 가는 데마다 양금이(대장금)와 주몽을 외치는 청년들이며 공들여 배운 우리나라 말을 나눠보고 싶은 여대생들이 수줍게 인사를 건네오곤 했다. 특히 싸이의 노래 강남 스타일이 전 세계를 강타하던 중이어서, 아이들이 떼를 지어 말춤을 추며 일행 중 유독 내게만 몰려들었다. 아, 검은 선글라스를 낀 내가 싸이를 닮았나, 살짝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테헤란에서 이틀을 보내고 밤 비행기를 타고 시라즈로 갔다. 이란의 시성(詩聖) 사디와 하피즈의 고향이며 인근엔 페르세폴리스가 있으니 우리에겐 박목월, 김동리 선생의 고향 경주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시를 읊었더냐, 진주를 꿰었더냐, 하피즈여 그대의 시, 하늘의 별 목걸이를 쏟아 붓는다.' 하피즈영묘에서 가져간 그의 시 한 편을 읽고 새 점을 치는 아라비아사내에게서 점괘를 받았다.

 

함께 간 아랍학 교수님이 '곧 귀인이 나타나리라.'란다. 페르세폴리스와 시라즈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많지만 그것은 다음에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난 터키에서도 가장 좋았던 곳이 트로이였던 것처럼 먼저 이란의 고대종교 조로아스터교의 본산인 흙의 도시 야즈드가 더 끌리니 먼저 쓰기로 한다.

 

 

 

◆불의 사원, 조로아스터교의 본산 야즈드

 

7세기 아랍족이 페르시아를 정복하기 전까지 이란인들은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다. 1600년 전 파르스에서 야즈드로 가져온 불씨를 신성시하여 아직도 꺼뜨리지 않고 보존하고 있다.

 

배화교(拜火敎) 또는 선신(善神) 아후라 마즈다(Ahura-Magda)를 숭배하여 마즈다교라고도 하며, 조로아스터(Zoroaster, 기원전 660-583)를 시조로 삼는 종교다. 니체가 자신의 이상적 분신으로 여긴 위버맨쉬(Overman), 독일어식으로 자라투스트라이며, 우리에겐 초인(超人)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야즈드는 이란 중부 자그로스산맥 동쪽 기슭에 있다. 푸른 타일과 스테인드 글래스로 치장된 모스크 외엔 대부분 단층이나 이층인 황토빛 건물들이 주를 이루고, 숙소와 식당엔 커다란 직사각형 분수가 있어 이란의 어느 곳보다 특별한 느낌이 났던 도시다.

 

특히 해질녘 사막 특유의 노랗고 보랏빛이 드는 저녁놀이 펼쳐지고 집과 거리에 하나, 둘 불이 켜지면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삼층 정도의 카페에 앉아 나지막한 시가지를 바라보면 조로아스터교의 여섯 천사 아메셔 스판드가 강림한 듯하다는데 그건 놓치고 말았다.

 

 

앞서 언급한 침묵의 탑을 내려와 아테슈카데사원으로 갔다. '불의 집'이란 뜻을 가진 크림색 조로아스터교사원 중 유일하게 이교도에게 관람이 허용된 곳이다. 정면 상단에 거대한 선신 아후라 마즈다가 푸른 날개를 펼친 채 우리를 맞는다. 청색 타일에 횡서로 새겨진 '바른 생각, 바른 행동, 바른 말'은 3대 준칙이다. 입구 맞은편에는 조로아스터의 성화가 걸려 있다. 1600년 동안 꺼뜨리지 않은 불씨 향로는 사원 안에 놓여 있다. 바싹 마른 살구나무 등으로 불을 지피는 신녀가 어딘가에 있을 듯해 둘러봤지만 보이지 않는다.

 

사산왕조 때 국교로 자리잡은 '지식'이라는 뜻의 조로아스터교 경전 아베스타에는 고대 이란인의 신과 세계 창조에 관한 이야기, 여러 영웅들과 왕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성직자들이 경전의 내용을 소가죽 위에 황금색으로 써서 보관해 두었으나, 알렉산더가 침략했을 때 모두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이후 동진한 이슬람에 잠식당하여 신도 중 일부는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일부는 인도를 비롯한 주변지역으로 탈출, 오늘날 세계적으로 신도 수는 약 15만 명이며 그중 이란의 신도 4만 5천명 중 1만 5천명 가량이 야즈드에 산다. 현재 인도 봄베이 지역에도 10만 명 정도가 살고 중국에는 수•당시대에 천교(祆敎)로 유입되어 원대까지 이어졌다. 홍콩의 무협소설가 김용의 '의천도룡기'의 주인공 장무기가 건곤대나이를 익히는 명교가 바로 이 조로아스터교다.

 

야즈드 시가지 중심의 미르 차크막 모스크, 이란에서 가장 높은 미나레(첨탑)을 가진 자메 모스크, 주위가 사막이라 절대 도망칠 수 없다는 알렉산더의 감옥, 흙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그렇게 정겨울 수 없던 구시가지, 물박물관까지 이틀에 걸쳐 다닌 일행을 위해 숙소에서 마련해 준 장작불을 뛰어넘는 조로아스터교 방식의 파티는 정말이지 잊히지 않는다.

 

글 박미영(시인)·사진 박순국 (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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