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강릉 1.3℃
  • 서울 3.2℃
  • 인천 2.1℃
  • 흐림원주 3.7℃
  • 흐림수원 3.7℃
  • 청주 3.0℃
  • 대전 3.3℃
  • 포항 7.8℃
  • 대구 6.8℃
  • 전주 6.9℃
  • 울산 6.6℃
  • 창원 7.8℃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순천 6.7℃
  • 홍성(예) 3.6℃
  • 흐림제주 10.7℃
  • 흐림김해시 7.1℃
  • 흐림구미 5.8℃
기상청 제공
메뉴

(광주일보) ‘오월 광주’로 날아온 두 통의 편지

아이들에게 ‘오월 그날’의 이야기 전합니다
1988년 ‘강아지똥’ 권정생 작가 편지 지난해 추도식서 발견
고정순 작가, ‘봄꿈 - 광주의 조천호군에게’ 그림책에 담아

2022년 5월, 광주에 두 통의 편지가 당도했다. 한 통은 ‘강아지똥’의 작가 고(故) 권정생 작가가 1988년 쓴 편지 ‘경상도 아이 보리문둥이가··광주의 조천호군에게’로 고정순 작가의 그림책 ‘봄꾼’과 함께 도착했다. 또 한 통의 편지는 현재 베니스에서 열리고 있는 5·18 특별전 ‘꽃 핀 쪽으로’를 관람한 캐나다 역사학자 돈 베이커 교수가 쓴 글이다. 1980년 현장에 있었던 그가 42년이 흐른 후 만난 ‘오월 작품’들에 대한 감회를 적은 편지는 깊은 울림을 준다. 시대를 뛰어 넘어 ‘오월’을 기억하는 귀한 편지를 만난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는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

유언장과 함께 그가 남긴 통장에는 10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있었다. 결핵에 걸려 평생 아픈 몸으로 살았던 작가는 이 세상 가장 낮은 곳 이야기들을 동화로 썼다. 경북 안동의 작은 교회 문간방에서 종지기로 일하며 ‘몽실언니’, ‘강아지똥’을 집필했고, 8평짜리 흙집에서 평생 살면서 소박한 삶을 이어왔다.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 통증으로 고통받던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이들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꿈꿨던 그에게 1980년 5월에 찍힌, ‘영정 사진을 든 다섯 살 아이’의 모습은 가슴에 박혔을 터다.

 

 

최근 출간된 고정순 작가의 그림책 ‘봄꿈:광주의 조천호 군에게…’(길벗어린이)는 고(故) 권정생(1937~2007) 작가의 편지에서 시작된 책이다.

2021년, 권 작가의 유고를 정리하던 중 1988년에 작성된 편지 한통이 발견됐다. 5월17일 작가의 17주기 추도식에서 공개된 편지는 ‘경상도 아이 보리 문둥이가… 광주의 조천호 군에게’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5월15일 아침신문에 실린 사진을 통해 “아버지의 영정을 보듬고 앉은 너의 착한 눈을” 본 그는 같은 땅에 살면서도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을 8년이나 지나서야 알았던 사실에 놀랐고, 어른들 때문에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향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안고 조천호 군에게 편지를 썼다.

 

 

“천호야. 정말 우리는 몰랐다고 말해도 될까/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는 텔레비전이 쇼를 구경하고/ 싱거운 코미디를 구경하며 못나게 웃고 있었다/그 긴 8년의 세월을(중략)/천호야. 지금 이렇게 늦었지만/ 넌달래꽃 한 다발 꺾어/ 너의 가슴에 안겨주면서 약속할게/ 우리 함께 따뜻하게 참을 나누며/ 우리들의 슬픈 어머니를 위로하며/ 저 백두산 꼭대기까지/남북의 아이들 모두가 하나 되어/이 땅의 거짓을 쓸어내고/ 다시는 피 흘리는 일 없이 살아갈 것을”

권정생어린이재단으로부터 편지를 건네받은 출판사와 고 작가는 그에게 편지를 전달하고 어린시절을 그림책으로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5·18의 진실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옥춘당’ 등의 작품을 통해 따뜻한 이야기를 전달해온 고 작가는 오월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보다는 평범했던 일상을 빼앗겨 버린 아이의 이야기로 전하고 싶었다.

‘아빠아~!’ 하고 부르는 아이가 등장하는 첫 장면으로 시작하는 그림책은 따뜻하고, 안쓰럽고 슬프다. 마지막 장에 닿기 전까지는 어느 평범한 가정의 아빠와 아이의 일상이 행복하게 펼쳐져 더 아련하다. 수채화로 그린, 아이같은 그림체도 인상적이다. “아빠처럼 큰 사람이 되고 싶고, 쑥쑥 자라고 싶었던 아이”는 “아빠가 좋아하는 꽃을 제일 먼저 찾아주고” 싶었고, “아빠와 놀 때가 가장 즐거웠지”만, 결국엔 아빠의 영정 사진을 들어야만 했다.

 

 

“오월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 한 인간의 비극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어느 집의 평범한 이야기이자, 나한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려 했어요. 행복한 사람들 사이에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었고요. 그 과정에서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해 버린 어떤 거대한 세력에 대한 이야기도 전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 작업을 하며 권선생님 편지를 수십번 읽고 필사 작업도 했어요. 당사자에게, 또 광주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고민도 많았습니다.”

지난 9월 고 작가는 광주로 내려와 조 씨를 만났다. 5월의 상징적 인물이 되어버린 그는 중학교,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둔 아빠가 돼 있었다. 그에게는 “학생들을 지켜야한다”며 금남로에서 시위를 하다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 대신, 가난과 외로움, 주위의 차가운 시선에 고통받았던 순간들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어릴 때 그 초롱했던 눈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놀랐어요. 아이들이 받을 충격이 커서 아버지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셨다고 하더군요. 자기 대신 아이들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으로 만들어달라고 하셨는데, 책을 읽고 아이들이 할아버지 묘에 헌화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책을 만들어줘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뭉클했습니다.”

 

책 마지막에 실린 권 작가의 육필 편지 ‘전문’과 책 뒷표지에 실린 “미안해, 어른들이 바보 같아서 미안해···”라는 권 작가의 말은 우리 모두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30년 세월이 지나 그날의 ‘아이’에게 도착한 편지는 권작가가 오늘의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많이 본 기사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