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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박미영의 '코로나 끝나면 가고 싶은 그 곳']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

'신들의 고향' 지키는 거대한 해와 달의 피라미드

 

나는 고고학자나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마야, 아즈텍, 잉카문명, 하워드 카터의 투탕카멘 발굴이나 하인리히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에 열광했고 옆집 아이를 가르치고 받은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천체망원경을 사리라 꿈꾸기도 했다. 그 막연한 열망이 아직도 사그러들지 않았는지 지금도 출장시간을 쪼개어 전쟁기념관의 투탕카멘전(展)도 다녀오고, 렌즈 배율이 높은 천체망원경 사이트에서 클릭할까 말까를 망설이기도 한다.

 

그 어릴 적부터의 찬란한 꿈 때문인지 아니면 그 꿈을 결국 이루지 못한 애달픔 때문인지 나는 여행지의 폐허 앞에 서면 늘 비감해진다. 신도 인간도 다 떠난 황량한 그곳에서 그 시절의 온기라도 느껴질까 무너진 성벽이나 기둥에 잠시 기대 서 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울컥 아버지의 18번 '황성 옛터' 한 자락이 비애에 잠겨 입술에서 흘러나오기도 한다. 트로이의 폐허, 타클라마칸의 허물어져가던 옛 고창국 토성, 야즈드 침묵의 탑을 오르던 먼지 길, 폼페이, 시테 섬의 콩시에르즈리, 그 모든 폐허가 내겐 그랬다.

 

 

◆아즈텍, 테노치티틀란의 비애

 

멕시코시티의 황금천사상 가까운 호텔에서 소칼로광장 고색창연한 대성당을 지나 테노치티틀란 유적지까지 걸어갔다. 텍스코코호수 한가운데 섬이었다는, 1325년 아즈테카들이 현재 멕시코시티에 세운 옛 수도의 자취가 남은 곳이라 했다. 하지만 1519년 정복자들에 의해 처절하리만치 파괴되고 그 폐허 위에 스페인식 건축물이 세워져 겨우 청계천 크기만큼의 옛 흔적으로 남아있는 그곳을 보며 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스페인의 코르테스와 콩키스탄트들에게 정복당하기 전 중국 베이징과 맞먹을 정도였다는 대도시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그야말로 망국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실질적으로 아스텍의 마지막 왕인 몬테수마 2세는 말을 타고 온 정복자들의 눈부시게 흰 피부를 보고 어리석게도 '오! 우리가 지금까지 기다려왔던 신이 오셨도다!'라며 그들을 환대했다고 한다. 그 결과는 원주민들의 무참한 살상과 신전 파괴, 금은 약탈이었다. 분노한 아즈테카들은 코르테스의 사주를 받아 연설하러 나온 무능한 왕을 화살과 돌로 죽여 버렸고, 일부 용맹한 재규어 전사들은 항쟁도 벌였으나 1521년 왕족과 귀족들의 내분, 스페인에서 옮겨진 천연두 등의 질병으로 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일설에 의하면 인신공양(人身供養, 신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위한 아즈텍과의 잦은 분쟁과 살상 그리고 납치와 약탈로 적대감을 품고 있던 텍스코코 등 타부족들이 스페인의 편을 들었던 것도 패망의 큰 이유였다고 한다. 그 후 300년간 스페인의 아즈텍문명 말살과 유린은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성은 허물어져 빈터'가 되어버렸고 관람객인 나는 그리하여 왕국의 수도를 발 아래 놓고 내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몬테수마 2세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딸 이사벨은 스페인 당국에 의해 다섯 번 정략결혼을 해야 했고 그나마 후손들은 이후 스페인으로부터 황금을 연금을 받는 귀족으로 살았다고 한다.

 

 

 

◆신들의 고향, 테오티우아칸

 

중부 멕시코의 아즈텍을 정복한 스페인은 곧 피사로를 파견해 현재의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볼리비아, 칠레 그리고 아르헨티나에 달하는 가장 광활한 영토를 가진 황금의 제국 잉카를 아즈텍과 비슷한 방법으로 1537년 정복했다. 멕시코 동남부와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북부, 벨리즈, 온두라스 서부, 유카탄반도를 중심으로 아즈텍과 잉카보다 500년 앞서 번영하였던 마야문명권은 그 무렵 쇠퇴기에 접어들었으나 1697년 마지막 마야 도시인 노즈페텐이 함락 당해 스페인에 복속되었다.

 

세계의 불가사의한 미스터리 절반 이상은 마야와 아즈텍, 잉카문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중남미문명권의 피라미드와 광장을 갖춘 거대도시, 상형문자, 시간 계산법, 아즈텍 달력, 마추픽추, 나스카 문양 등에 전 세계인들은 또 열광한다. 그 중 '인간이 신이 되는 장소' '신들의 고향'이란 뜻을 가진 테오티우아칸은 신비롭기 그지없는 곳이다.

 

테오티우아칸은 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40km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83km²(2천5백만평)의 메소아메리카에서 가장 거대한 고대도시로 이집트의 무덤 개념이 아니라 하지와 동지에 제사를 올린 신전으로서의 해와 달 피라미드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스터리한 것은 이 거대도시가 언제 누가 세웠는지 왜 스페인 정복 이후 19세기 말까지 사람들에게 까맣게 잊혀졌는지 정확한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BC 2세기경에 세워져 서기 7세기경까지 전성기를 누리다가 호전적인 톨텍족에게 9세기경 멸망되었을 거라 추정한다. 또한 도시의 쇠락을 알파카와 라마를 기른 잉카와 달리 부족한 식량, 기후 그리고 물의 문제도 있었을 거라는 이론도 있다.

테오티우아칸을 발견한 아즈테칸은 1325년 그곳을 자신들의 뿌리로 여겨 수도 테노치티틀란 건설의 전범으로 삼고 숭배했다. 나는 뙤약볕 아래 드넓은 사자(死者)의 거리를 걸어 고대도시로 들어갔다. 해의 피라미드 정면에 다다르자 깃털이 달린 뱀으로 형상화된 창조와 농경의 신 케찰코아틀이 나를 사납게 바라보았다. 문득 저 높은 계단식 해의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사제가 인신공양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더위가 싹 가신다. 가파른 달의 피라미드로도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린다.

 

세계는 이미 네 번 멸망했고 지금 인류는 다섯 번째 세계에 살고 있으니 종말이 오지 않게 하려면 인신공양을 통해 신을 달래야 한다고 아즈테칸들은 굳게 믿었다. 1940년 달의 피라미드에 함께 오른 레프 트로츠키에게 프리다 칼로는 이렇게 아즈텍의 신화를 전했을 것이다. 아, 갑작스런 깨달음, 매년 11월 1일 멕시코시티 소칼로광장에서 '죽은 자의 날' 행사가 열리고,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도 죽은 자들의 세상으로 워프된 소년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다. 비약적으로 프리다 칼로의 그림들도 신화적 측면으로 읽어볼 필요가 있겠단 생각이 든다. 혹시 아즈텍은 고대부터 신과 인간이 경계 없이 드나드는 공간의 다른 이름은 아닐까. 테오티우아칸은 150년째 발굴 중이라니 무언가 새로운 발견을 인류에게 안겨줄지도 모를 일이다.

 

 

 

멕시코인류학박물관에서 태양석(Sun Stone)과 함께 본 올멕의 거대 석조 두상과 푸른 경옥 마스크는 만리장성 동쪽 뉴허량(牛河梁)에서 발견된 홍산유물들과 마치 쌍둥이처럼 닮았다. 고구려 집안의 장군총도 일종의 계단식 피라미드 아니던가. 이제 멕시코도 조심해야 한다. 중국 당국은 요즘 화이허문명(黃河文明)과는 완전히 다른 동이(東夷) 즉 고조선의 것이라던 랴오허문명(遼河文明)을 이집트나 수메르보다 훨씬 오래된 자신들의 것이라 우기고 있으니 말이다. 동북공정을 넘어 세계공정에 눈이 먼 중국 당국이 상해의 세기공원에 올멕의 거대 석조 두상을 세워 둔 것이 아무래도 꺼림칙하다.

 

 

박미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