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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이원선의 힐링&여행] 새해 눈 덮인 선운사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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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겨울 견디고 나면 붉은빛이 찾아오겠죠
커다란 연못 숯·돌로 메워 지은 절…2월 경내 3천여평 동백나무 꽃 피워
동백꽃 끝물일 즈음엔 연분홍 벚꽃…가을엔 화려한 단풍이 방문객 맞아

 

 

 

 

하늘에 두둥실 뜬 겨울구름을 볶으면 함박눈이 내린다. 이런 날이면 솜이불 한 채를 선물 받은 기분이다. 문풍지를 찢어 발기 듯 몸서리치던 황소바람이 잦아들고 콧잔등을 찔러대던 칼바람이 훈풍으로 내려앉은 날이기도 하다. 서해안을 따라서 폭설이란 소식을 접하자 미늘에 꿰인 붕어가 되어 선운사로 향한다.

 

◆지혜의 경계인 구름에 머무르면서 도를 닦은 선운사

 

도솔산(兜率山) 선운사(禪雲寺)는 백제의 고승 검단선사가 위덕왕 24년(577)에 창건하였다는 설과 신라의 진흥왕(재위기간 540∼576)이 만년에 왕위를 내주고 도솔산의 어느 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때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크게 감응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함으로써 이 절의 시초를 열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당시 이곳은 신라와 세력다툼이 치열했던 백제의 영토였기 때문에 신라의 왕이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시대적·지리적 상황으로 볼 때 검단선사의 창건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절이 완성되자 검단선사는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도를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절 이름을 선운(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현존하는 유물로써는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다시 건립한 대웅보전(보물 제 290호),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 제 1752호), 창당암 대웅전( 보물 제 803호), 도솔암 마애불(보물 제 1200호),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79호)등이 있다.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기도 하였다.

 

 

 

또한 선운사에 보은염(報恩鹽)이란 소금이 있다.

 

원래 선운사 자리는 커다란 연못이었고 검단선사는 절을 짓기 위해 못을 매우기 시작했다. 그 즈음 마을에는 눈병이 심하게 돌았는데 연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우니 눈병이 씻은 듯 나았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연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다. 이 자리에 지은 절이 현재의 선운사다.

 

당시 이 마을에는 전쟁 유민 등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이때 검단선사는 불법으로 교화를 하는 동시에 마을사람들에게 바닷물을 이용해서 소금 만드는 법과 숯과 한지 만드는 법을 가르쳐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검단선사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해마다 봄 가을철에 소금을 보시하였는데 이 소금이 보은염이다. 이 풍습은 15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선운사

 

선운사는 사계절이 아름다운 절이다. 봄이면 약 삼천여 평에 걸친 동백나무군락(천연기념물 제184호)지에서 겨울을 지낸 동백이 일제히 붉은 꽃을 피운다. 그 모습이 장관이다. 툭툭 떨어지는 통꽃의 낙화 또한 남다른 감흥을 준다. 이 모습에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찬탄해 마지않는다. 동백꽃이 끝물일 즈음 이번에는 선운사 초입에 쭉 늘어선 벚꽃이 연분홍색으로 흐드러져 사찰을 찾는 상춘객들의 가슴에 아름다운 봄을 선물한다. 또 여름이면 4월부터 거두어들인 녹차를 음미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시원한 바람이 숨을 숙여 땀을 씻어내는 만세루에 올라앉아 신선이라도 된 듯 즐기는 녹차 향은 그윽한 정취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조잘조잘 시원하게 흐르는 도설천의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길고 긴 여름 한낮이 일각처럼 짧기만 하다. 가을철은 어떠한가? 9월 중순부터 상사에 걸린 꽃무릇이 피를 토하듯 도솔천을 오통 붉게 물들인다. 약 20여 일간의 꽃무릇 향연이 끝나면 이번에는 가을단풍이 뒤를 잇는다. 새벽이면 도솔천이 비좁도록 아련하게 피는 물안개와 어우러진 붉은 단풍은 가히 환상적이라 할 수 있다. 그 화려하고도 멋 떨어진 장관을 보려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인파로 인해 조용한 산골에 든 선운사가 한차례 몸살을 앓기도 한다. 이제 겨울이면 좀 조용할까 싶지만 눈이 많이 내리는 선운사는 하얀 설경으로 인해 아름답기가 한량없다.

 

 

◆눈내린 도솔천

 

새벽을 달려 도착한 선운사 앞 도솔천에는 생각보다 적설량이 박하고 무시로 불어대는 바람 탓인지 대롱대로 매달린 감위에도 나뭇가지위에도 있어야할 눈이 없다. 눈꽃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진짜 설경을 보려면 '눈이 왔다고 할 때가 아닌 눈이 온다고 할 때 떠나란'말 뜻을 알 것 같다. 하지만 도솔천을 뽀얗게 뒤덮은 눈은 대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인지라 어딘가 숨어있을 멋진 설경을 찾으려는 마음만큼이나 발걸음이 바쁘다.

 

도솔천의 설경을 곁눈질로 훑으며 가장먼저 찾은 곳은 성보박물관 앞에 있는 감나무다. 잠시도 쉬지 않고 불어대는 골바람의 심술에도 못이기는 척 늦장을 부려 껌 딱지처럼 감에 달라붙은 눈이 있을까 싶어서다. 하지만 그 기대조차 기대에 불과했다. 반면 아직 동이 트기에는 한참이나 이른 시간임에도 온갖 새들이 날아들어 감 잔치를 벌이고 있다. 까치, 청딱다구리, 곤줄박이, 오목눈이, 어치(산까지), 직박구리를 비롯하여 참새 등등이 날아들어 빨갛게 농익은 감을 쫓고 있다. 사위는 아직도 어둑어둑한 것이 새벽잠에 빠졌을 시간, 일찍도 일어났다. 인시(寅時)를 빌어 스님의 목탁소리와 곁들여진 도량석에 이어 운판(雲板)이 크게 울었나보다.

 

겉보기와는 달리 절간의 담장 밑을 비롯하여 마당에 쌓인 눈이 생각보다 제법이다.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둘러보는 눈길이 어느 한곳을 떠날 줄 모른다, 뽀얗게 쌓인 눈 사이를 뚫어 지친 몸을 비틀 듯 빼꼼히 고개를 내민 샛노란 소국(小菊)이 청초하다. 어쩌다가 담장 밑에서 함초롬 첫눈을 뒤집어쓰고는 혹독한 겨울추위를 견디고 있는지 알 수는 없어도 그 모습이 애처로워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어린 시절 눈싸움 중에 빨갛게 언 동생의 손을 보는 것만 같다.

 

 

◆눈속에 핀 새 생명이 새싹을 피워

 

기억을 더듬듯 애련한 소국을 찾아 담장 밑은 헤매는 발걸음이 어지러운데 '앗~불사!'하마터면 어린새싹을 밟을 뻔 한다. 서산대사는 눈밭을 빌어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중략, 즉 눈 내린 들판을 걸을 때에는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걷지 말라."라고 읊었다. 헌데 뽀얗게 눈이 내려덮은 속에 새 생명이 깃든 줄을 미처 헤아리지 못해 밟아 뭉갤 뻔 한 것이다. 동백나무 새싹으로 금년의 어느 봄날, 새들이 씨앗 한 톨을 물어오다가 무심코 떨어뜨린 것인지 아니면 미래의 식량으로 갈무리한 것 중 하나일 것이다. 혹한 뚫고 용케도 싹을 피웠다. 떡잎 두 장이 좌우로 대칭하여 하늘을 향해서 두 팔을 벌린 자세다. 그중 한쪽 떡잎 위로 몇 송이의 눈이 어깨동무를 하듯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어 더욱 신비롭다.

 

본격적인 선운사 관광을 위해 극락교를 지나고 천왕문을 지나 만세루 앞에 섰다. 헌데 일상적으로 보아오던 다른 사찰의 루(樓)와 만세루의 건물 형태가 조금 다르다. 팔공산 동화사 봉서루나 소백산 부석사 안양루 같은 경우에는 루 밑을 통과해서 대웅전이나 무량수전에 오른다. 헌데 선운사 만세루는 백암산 백양사 우화루와 같이 땅바닥에 바닥이 달라붙어 있다. 즉 루 밑을 사람이 통과할 수 없는 구조다. 아마 못을 메워 지은 사찰이다 보니 임의로 공간을 확보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랐는가 보다. 같은 산속의 사찰일지라도 산기슭의 비스듬한 경사면을 십분 이용한 사찰과 편편한 지대에 건립한 사찰과의 차이점인가 보다.

 

 

◆ 따뜻한 차한잔에 차가운 칼바람 녹여

 

이제 막 겨울의 가는 햇살이 산등성이를 불그스레하게 물들이는 아침나절이고 또 눈 속에 잠긴 사찰이라 그런지 내방객이 별로 없다. 간간히 보이는 내방객 또한 잔뜩 웅크려 지난다. 슬쩍 흘겨보는 만세루 안에는 구유처럼 생긴 통나무가 보인다. 여름철 더위를 피해 시원하게 녹차를 즐기는 공간이라 그런지 다탁과 다기가 가지런하게 정돈된 조용한 공간이다.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라 신선놀음이라도 벌일라 칠 때 '이 엄동설한에 어딜 감히'시퍼렇게 날을 세운 칼바람이 소매 끝을 파고든다. 절로 사지가 떨리고 겨울 내방객의 설움이 목구멍에서 울컥할 때 "따뜻한 차 한 잔 하세요!"하며 천막 속에서 보살님이 환하게 웃으며 얼굴을 내민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컵을 양손으로 공손하게 받아들자 공덕을 베푸는 보살님의 마음보다 한층 더 가슴이 따뜻해져 온다. 마음에 훈기가 돌자 안보이던 경내의 풍경이 눈에 든다. "저 앞으로 보이는 푸릇푸릇한 숲이 동배나무군락집니다. 매년 2월이면 불이라도 난 듯 장관이지요!"이어 "그 때는 절간이 비좁지요!"하며 보살님의 자랑이 늘어진다. 군락지 가장자리에 가지가지마다 홍시를 잔뜩 매단 감나무 한그루가 우뚝하고 감을 파는 온갖 새들의 지저귐이 자자구구 귓전에 정답다. 헌데 동백나무 이파리만 유독 거뭇거뭇한 것이 바짝 독이 오른 듯 진녹색을 띄었다. 겨울철은 생명을 품어 갈무리하는 계절이다. 저 동백나무들도 다가오는 2월을 위해서 지금 이 순간 고귀한 생명을 품다보니 낯빛을 달리하고 있으리라! 그 생명의 신비가 이른 봄기운에 화들짝 놀라 일제히 배일을 벗는 날 산비알(비탈)은 붉은 비단을 깔아놓은 듯 온통 황홀지경에 빠지리라! 언제일까? 벌써부터 그날이 기다려지는 것은 또 어인 까닭일까? 알싸한 듯 풋풋하게 혀끝을 감치는 녹차 한 모금을 햇병아리 모양 입에 물고는 떠듬떠듬 손가락을 꼽는다.

 

글·사진 이원선 시니어매일 편집위원 lwonss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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