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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보) [신팔도명물] 한입 콕 베어물면 달콤한 행복 빵빵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천안 호두과자

 

 

천안을 처음 찾는 이들이 놀라는 것 하나가 있다. 어딜 가나 눈에 띄는 호두과자 판매점. 별다방이 세계를 석권했어도 천안에서는 호두과자 판매점이 대세다. 만약 당신이 경부고속도로의 천안톨게이트를 나와 도심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길가에 즐비한 호두과자 판매점들을 보게 되리라. 아니 당신은 이미 고속도로 상에서 천안이 호두와 호두과자의 고장임을 접했을지 모른다. 지난 여름부터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향 하행선의 천안휴게소 명칭은 '천안호두휴게소'로 바뀌었다. 천안의 호두과자 위상은 천안시청에서도 엿볼 수 있다. 청사를 방문한 내방객들의 만남 장소로 인기 높은 천안시청사 1층 카페에는 호두과자 제조·판매점이 있다. 제조 틀에서는 따끈따끈한 호두과자가 연신 구워져 나온다.

# 대한민국 호두 최초 재배지 천안

 

 

천안은 호두과자의 고장이기에 앞서 호두의 '시배지'이다. 호두나무가 처음 식재된 곳으로 천안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주연이 광덕사의 '호두나무'다. 천안의 대표 청정지역인 광덕면에 자리한 천년사찰 광덕사의 보화루 앞에는 고려시대 유청신이 심었다는 전설이 깃든 호두나무가 있다.

국가문화유산포털에 따르면 1290년(고려 충렬왕 16) 9월에 영밀공 유청신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올 때 어린 호두나무와 열매를 가져 와 심었다고 전해진다. 어린 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유청신의 고향집 뜰 앞에 심었다고 한다. 광덕사 호두나무 앞에는 '유청신 선생 호두나무 시식지'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높이 20m, 둘레 3m의 광덕사 호두나무는 1982년 11월 1일 천안시 보호수로 지정됐다. 수백 년 성상을 한 자리서 묵묵히 지켜온 광덕사 호두나무는 1988년 12월 23일 천연기념물 제398호로 지정돼 각별한 관심과 보살핌을 받고 있다.

 

 

나무의 수령을 감안하면 광덕사 호두나무의 전설은 그야말로 전설일 뿐 '팩트'와 무관할 수도 있다. 어쨌든 광덕사 호두나무는 자의반 타의반 우리나라의 원조 호두나무로 알려지며 천안의 호두산지 유명세를 더했다. 요즘이야 다른 지역에 재배량 1위를 빼앗겼지만 한때 천안의 호두 생산량은 전국 수위를 다퉜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감귤나무가 자식들 뒷바라지에 밑천이 되는 대학나무였다면, 천안사람들에게는 호두나무가 대학나무였다.

재배량은 감소했지만 천안의 호두나무 경쟁력만큼은 지금도 전국 으뜸이다. 이 달 열린 '2020 대한민국 대표과일 선발대회'에서 산림과수분야 호두 부문 최우수상(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은 천안시 안서동의 최무흠씨가 수상했다. 최씨는 천안서 11년째 2㏊ 규모로 호두를 재배·생산해오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과일 선발대회의 호두 부문 최우수상은 지난해도 천안시민이 차지했다. 2년 연속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호두 시배지 고장의 자존심을 세웠다.

# 연원 깊은 천안 호두과자

광덕사 호두나무만큼은 아니지만 천안의 호두과자도 연원이 깊다. 천안 호두과자의 탄생 관련해 향토사에 일가견을 지닌 이정우 충남문인협회장은 "1934년 대흥동 천안역 앞에서 제과점을 경영하던 조귀금·심복순 부부가 호두를 첨가한 실제 크기의 호두 모양 과자를 개발"했다고 디지털천안문화대전에 기록했다.

 

 

역 주변에서 탄생은 호두과자의 운명을 결정짓는 요소이자 정체성이 됐다. 간편식이 드문 시절 호두과자는 간식거리는 물론 한 끼 대용식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휴대성이 뛰어나 분주히 역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용이한 선택지였다. 철도 발전과 더불어 영역을 확장한 천안 호두과자는 고속도로 개통과 그 뒤 도래한 마이카 시대로 휴게소 문화가 정착하며 국민 간식의 지위에 올랐다.

첫 인상과 추억의 힘은 세다. 어린아이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전국 팔도 어디에서 호두과자를 접하건,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천안을 떠 올릴 만큼 70여 년 세월 속에 호두과자는 천안의 강력한 브랜드가 됐다. 브랜드로 성장해 영광만 있고 시련이 없다면 팥소 없는 찐빵. 호두과자의 본고장인 천안에 앞다퉈 생긴 호두과자 제조판매점들이 오히려 성공의 덫이 되기도 했다. 재료의 원산지 때문이다. 부푼 기대를 품고 천안에 와 직접 호두과자를 구입해 음미하던 중 눈 여겨 본 원산지 표시를 보고 실망했다는 소비자들의 원성이 인터넷과 개인 SNS 등에 종종 올라왔다. 자신이 맛 본 호두과자가 호두를 비롯해 천안 재료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각종 다국적 재료들의 집합체였다는 고백이다.

'천안' 없는 '천안 호두과자'의 문제가 언론지상에도 보도되며 지역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었다.

# 천안 호두과자에 천안을 담자

 

 

천안 호두과자에 '천안'을 담기 위해 민관이 의기투합했다. 천안에서 창업한 어느 호두과자 제조·판매사는 호두과자의 원재료로 천안산 호두와 팥만을 뚝심 있게 고집하고 있다. 호두과자의 천편일률적인 형태나 맛에서 벗어나는 도전도 이어졌다.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몇 제품은 형 만한 아우 없다는 속설을 무색케 했다.

천안시도 호두과자 명품화 사업으로 천안 호두과자의 한단계 도약을 지원했다. 호두과자 명품화 사업의 일환으로 천안시 수신면에는 올해 제조 및 체험시설이 건립됐다. 내년부터 제조시설이 본격 가동되면 천안에서 재배한 팥과 밀로 만들어진 앙금이 지역 호두제조사들에게 공급될 예정이다. 체험시설은 천안의 호두 유래와 특징, 천안 호두과자의 변천 등 역사를 접하고 호두과자 만들기도 경험할 수 있도록 꾸며진다.

천안시 박종태 농식품산업팀장은 "천안의 호두제조사 및 판매점포가 70여 곳을 넘어 밀집도에서 당연 전국 최고"라며 "제조사마다 사용하는 원재료와 비율 등이 각각 달라 조금씩 다른 맛을 알아가는 것도 호두과자의 고장 천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색다른 재미"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시대, 여행길 호두과자와 만남도 예사롭지 않게 됐다. 그래도 오늘 오랜만에 호두과자를 구입해 주변과 나눠 보자. 혹 아는가, 누군가의 '푸른 열매'였던 호두과자 속 호두의 진심에 가 닿을지. "부러웠어, 너의 껍질/ 깨뜨려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진심이 있다는 거". 안희연 시, '호두에게' 중에서.

 

윤평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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