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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안동을 걷다, 먹다] 4. 선비순례길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음식을 먹는다.

 

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

 

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

 

 

4. 선비순례길

여전히 걷기 좋은 계절이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선선하다. 추색(秋色) 완연한 자연은 무작정 야외로 나가고 싶은 욕망을 부추긴다. 그래서 걷고 또 걷는다.

 

이번에는 순례길로 떠난다.

 

마음을 정화시키는 종교적 의미의 순례는 아니지만, 안동에는 '코로나 19'로 지친 몸과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순례길'이 있다. 굳이 스페인 '산티아고'에 가지 않더라도, 제주 올레길을 걷지 않더라도 충분히 재충전할 수 있는 길이 도처에 널려 있다.

 

선비니, 양반이니 하며 '고담준론'을 논하지 않아도 된다. 안동의 순례길은 삶의 지혜와 철학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길이다. 그것이 '선비순례길'이다.

 

'선비'는 순 우리말이다. '선달도 아니고 건달도 아닌 사회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풀이할 수 있는 선비는 신분을 표시하는 양반과는 전혀 다른 개념인데도 우리는 간혹 '선비'와 '양반'을 혼동하기도 한다.

 

서양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우리의 '선비정신'을 대체하면 엇비슷하게 맞아 떨어질 것 같다. 선비문화수련원 김병일 이사장은 '개인보다 공동체, 이익보다 가치를 추구하는 지도자'를 선비라고 정의하고 선비의 전형을 퇴계 선생으로 꼽았다.

 

퇴계선생은 1569년 음력 3월, 선조 임금에게 하직인사를 고하고 봉은사(서울 강남 소재)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안동의 '도산서당'까지 320km를 12일간 걸어서 귀향했다. 이 귀향길이 '선비순례길'의 원조였다.

 

퇴계가 귀향한 도산서당과 도산서원, 퇴계종택, 이육사문학관, 월천서당, 국학연구원 등 퇴계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길이 안동의 선비순례길이다. 코스는 다양하고 91km에 이를 정도로 장대하다.

 

 

오늘은 안동호를 따라 조성한 '선상수상길(수상데크)'이 압권인 선비순례길의 대표이자 제1코스 '선성현길'을 걸었다. 도산면 '선성현 문화단지'에서 출발하는 것이 수상데크로 가는 지름길이다. 데크길은 5.6km에 이르지만 문화단지에서 호반자연휴양림까지 이어지는 수상데크 1.1km를 걷는 기분은 세상 어느 호수를 걸어도 느끼지 못할만큼 짜릿하다. 데크는 수위에 따라 오르내릴 수 있는 구조여서 안전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고 중간 중간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문득 짙은 녹조로 아래가 보이지 않는 호수 바닥이 궁금했다. 선성현 문화단지는 사실 안동댐이 조성되면서 수몰된 도산과 예안마을 사람들이 이주해서 건설된 수몰민의 아픔이 서려있는 수몰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안동댐이 건설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처럼 호수 위가 아닌 퇴계선생이 걸었던 그 옛길을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댐을 조성하려면 사전에 자연영향평가와 주민의견조사 등 온갖 절차를 통과해야 하지만 안동댐을 조성하던 1970년대는 서슬퍼런 유신시대였다. 측량조사를 하고 댐 수몰지로 확정되면 어쩔 수 없이 수백 년 동안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야 했다. 세간하나 변변하게 챙기지 못한 채 고향마을이 가장 잘 보이는 이곳 선성현 문화단지로 쫓기듯 올라와야 했다. 물속에 잠긴, 사라진 고향마을에 두고 온 어린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날마다 눈물을 흘렸다.

 

 

 

'물의 노래' (이동순)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
죽어 물이나 되어서 천천히 돌아가리
돌아가 고향 하늘에 맺힌 물 되어 흐르며
예 섰던 우물가 대추나무에도 휘감기리
살던 집 문고리도 온몸으로 흔들어 보리
살아생전 영영 돌아가지 못함이라

 

오늘도 물가에서 잠긴 언덕 바라보고
밤마다 꿈을 덮치는 물꿈에 가위 눌리니
세상사람 우릴 보고 수몰민이라 한다
옮겨간 낯선 곳에 눈물 뿌려 기심매고
거친 땅에 솟은 자갈돌 먼 곳으로 던져 가며
다시 살아 보려 바둥거리는 깨진 무릎으로
구석에 서성이던 우리들 노래도 물속에 묻혔으니
두 눈 부릅뜨고 소리쳐 불러 보아도

 

돌아오지 않는 그리움만 나루터에 쌓여 갈 뿐
나는 수몰민, 뿌리째 뽑혀 던져진 사람
마을아 억센 풀아 무너진 흙담들아
언젠가 돌아가리라 너희들 물 틈으로
나 또한 한 많은 물방울 되어 세상길 흘러흘러
돌아가 고향 하늘에 홀로 글썽이리​

 

 

 

수몰민의 아픔을 노래한 이동순 시인의 '물의 노래'는 마음을 아릿하게 했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 죽어 물이나 되어서 천천히 돌아가리…'라는 첫 대목에서부터 수몰민의 아픔이 절절이 묻어난다.

 

선성현길은 수상데크가 끝나는 지점인 휴양림에서 월천서당까지만 갈 수 있다. 월천서당에서 유교박물관을 거쳐 도산서원까지 가는 길은 장마로 인해 일부 구간이 통제되고 있다.

 

수몰의 아픈 기억은 선비순례길 제1코스가 시작되는 '군자마을'에서도 묻어난다.

 

군자마을은 안동댐 조성으로 수몰된 예안면 오천리에서 20대에 걸쳐 대대로 살던 광산 김씨 예안파 집성촌 마을의 문화재급 고택을 원형 그대로 이전해서 재조성된 마을이다.

 

600여년이 넘게 조상대대로 살던 고향이 물속에 잠기게 되면서 조상의 숨결까지 수장하게 된 후손들의 심정이야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군자마을'은 20여 채의 고택들이 옹기종기 산비탈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고택마을로 마치 바깥세상과 차단된 별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산으로 둘러싸이고 마을 앞으로는 호수가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길지다.

 

이주한 마을이지만 군자마을에 들어서면 물속에 잠겨있어야 할 마을이 그대로 살아난 듯 생생했다. 고향마을 동구 밖 동수나무와 서낭당도 물 위로 올라왔다. 조상대대로 물려 쓰던 맷돌과 절구통도 그대로다. 기억은 복원되었지만 마을 길 돌아다니며 뛰어놀던 아이들의 분주한 모습도, 조상들의 숨결도 느껴지지 않았다. 수몰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그래도 도산구곡으로 이름난 운암곡에 자리잡은 군자마을에서 느끼는 고즈넉함은 선비 순례길을 걷는 의미를 배가해줬다.

 

 

 

걷다가 출출해지면 도심까지 나와서 안동 특색의 각종 먹거리를 먹어야 한다. '도산'에서도 간단하게 요기 정도는 할 수 있는 식당이 꽤 있다.

 

선성 문화단지 초입에 자리잡은 주유소 정면에 있는 슬라브 지붕의 단층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손면 전문 '일미식당'. 식당 주인장 부부는 댐이 들어서기 전부터 중국집을 운영하다가 수몰민 이주단지로 옮겨왔다고 한다. 50년이 지났다.

 

이 식당의 짜장면과 짬뽕에는 그 옛날 70년대 맛이 난다. 짬뽕에는 안동에서는 귀했던 해산물 대신 오뎅과 동그랑 소시지가 보였다. 어려웠던 시절 먹던 오리지널 옛날 짬뽕의 맛을 재현해준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