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과 서울, 두 도시를 이끄는 시장이 대한민국의 위기와 균형발전의 당위성에 뜻을 모았다. 이들은 수도권에 자원을 압축적으로 몰아넣는 기존 국가 경영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고, 수도권과 어깨를 나란히 할 혁신 거점을 키워낼 새 국가 경영 모델을 제시했다. 박형준 부산시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3일 한국정치학회가 동서대 센텀캠퍼스에서 개최한 하계 학술대회에서 균형발전을 강조했다.
두 시장은 이날 ‘한국 미래 지도자의 길’이라는 주제로 특별 대담을 가졌다. 한국정치학회 조화순 회장이 좌장이 되어 열린 이번 대담은 정치개혁 방안과 한국의 차세대 안보 외교 전략 등 다양한 주제로 진행됐다. 그러나 단연 관심이 집중된 주제는 수도권과 지방의 대표 지자체장인 서울과 부산시장이 내놓는 한국의 새로운 성장모델과 균형발전 해법이었다.
박 시장은 그간 한국이 고도성장에 활용해 온 국가 경영 패러다임을 ‘발전국가’로 지칭하며 더이상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없게 됐다고 역설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발전국가 모델로 서구사회가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한 성과를 불과 50여 년 만에 이뤘지만 한계가 분명해졌다”며 “발전국가 모델은 90년대로 넘어오면서 수도권 일극주의를 낳았고, 결국 성장률 저하와 저출산, 격차 심화라는 큰 부작용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발전국가’ 모델을 대체할 새로운 국가 경영 방식으로 ‘공진국가’ 모델을 제시했다. 공진국가는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共) 나아가는(進) 모델로 적자생존을 지양하고 공생과 협력의 가치를 우위에 두자는 의미다. 사회주의처럼 경쟁을 배제하자는 게 아니라 수도권과 지역이 경쟁 관계 속에서 서로의 진화를 촉진해야 균형발전이 이뤄진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오 시장도 마찬가지로 ‘지방 거점 대한민국 개조론’을 제시했다. 중앙정부가 파격적인 권한 이양으로 지역이 하나의 강소국가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오 시장은 “전국을 수도권, 영남권, 충청권, 호남권 등 4대 권역으로 나누고 각각을 하나의 강소국가으로 성장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학자 300여 명이 모인 이날 대담에서 나온 두 시장의 주장은 대한민국을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해서는 균형발전과 새로운 혁신 거점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
아울러 오 시장은 강소국가로 지방 거점이 성장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완전한 행정 거버넌스의 변화’를 제시했다. 그는 “두바이 등 해외 사례에서 보듯 각 강소국의 인구는 500만 명이면 충분하다”며 “초광역 지자체를 탄생시킨 뒤 중앙정부가 연방정부 수준의 권한만 남기고 모두 지방으로 하방시킨다는 자세로 인적 자원과 행정 권한을 나눠줘야 대한민국의 ‘퀀텀 점프’는 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오 시장은 기재부로 대표되는 중앙정부의 관료화된 사고와 자세도 비난하며 “중앙이 80%의 예산을 갖고 지방은 나머지로 발전하라고 하면 발전이 가능하겠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서울시에서 지자체 재산세를 일부 공유했던 실험을 소개하며 “중앙과 지방이 적어도 5 대 5의 예산을 갖고 각자 발전전략을 구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줄 때 미국이 쇠락했던 러스트벨트의 도시를 부흥시킨 것처럼 대한민국도 지역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