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끄트머리인 지난 5월 31일, 밀양 부북면 옥교산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닷새 동안 멈출 줄 모르고 치솟던 불길은 운동장 1000개 규모인 763㏊에서 나무 100만 그루가량을 태우고 6월 5일 완전히 진화됐다.1986년 산불 통계 이래 ‘산불보호기간’ 외에 발생한 ‘최악의 산불’이었다. 어느덧 산불 진화 이후 100일이 지났다. 두 번의 계절이 지나는 시간 동안 옥교산은 조금이라도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을까. 지난 13일, 산불의 최초 신고자이자 화산마을의 이장 김진오(54) 씨와 함께 옥교산을 올랐다. 마을과 이어진 산의 초입에는 푸른 잎사귀를 가진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5분을 더 걷자 산의 풍경이 급변했다.
◇생명은 돌아왔을까= 새 소리 한번 들리지 않았다.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산 능선은 불이 꺼지고 난 이후 시일이 지났음에도 누런 살갗을 황량하게 내보이고 있었다. 최근 잦은 강우와 태풍으로 현장에 산적했던 재는 씻겨 내려갔지만, 그날의 상처는 씻어내지 못했다. 새 생명을 내지 못한 채 그저 하늘로 뻗어만 있는 나뭇가지들은 검은 가시 같았다. 죽어버린 소나무의 껍질은 조금만 힘을 줘도 부스러졌다. 손에는 검댕이 묻어나왔다.
죽은 나무들의 뿌리를 간신히 붙잡은 토지에는 새롭게 파란 풀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타버린 산에서 번성한다는 고사리도 어김없이 올라왔다. 그러나 나무 위에 새 한 마리 앉지 않았다. 많던 노루와 멧돼지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땀에 젖은 사람들 사이로 까만 날벌레만 날아다닐 뿐이었다.
김진오 씨는 불을 끄고 난 이후 처음으로 옥교산을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산을 볼 때마다 답답해서 일부러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옥교산에는 유독 침엽수가 많았다. 김씨가 그슬린 자국이 있는 소나무 기둥을 짚었다. 사시사철 푸르다는 소나무의 잎은 모두 갈색이었다. 그는 “다 죽어가는 나무들”이라고 말했다. 산불 이후, 화재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지 않은 나무들도 대부분 잎이 변색해 활력을 잃었다. 그슬린 토양에 뿌리를 둔 나무들은 3년 안에 고사한다.
온몸에 뜨거운 화상을 입은 옥교산은 화산마을의 ‘뒷산’이다. 옛날 옥교산에 화산 폭발이 있었기에 마을 이름이 ‘화산’이라는 우스개 얘기도 어르신들의 입을 통해 내려오고 있었다.
“화산마을 주민 중 여기 옥교산에 안 오른 이는 없지요.”
화산마을에서 태어났던 김씨도 어린 시절 매일 소를 데리고 옥교산에 올라 풀을 먹였다. 동네 아이들은 숲에 들어가 큰 바위를 기지 삼아 아침부터 밤까지 놀기도 했다. 가난했던 시절에는 옥교산의 나무를 베어다 땔감으로 썼다. 마을 사람들의 선산이며 집이기도 했다. 그곳이 이제는 까맣게 타버렸다. 그날은 악몽이었다.
◇산에서 큰 불이 날아다녔다= “어 저게 뭐꼬 연기가?” 지난 5월 31일 늦은 저녁. 수로 공사가 진행되는 현장에 나가 있던 김진오 씨가 산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목격했다. 자세히 보니 연기가 나는 지점이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바로 119에 신고하고 밀양시에도 전달했다. 김씨는 밀양 산불의 최초 신고자였다.
감이 좋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다 바깥으로 나왔다. 씻던 사람, 잠을 자던 사람 너나 할 것 없이 산 앞으로 모여들어 불길이 치솟은 산을 바라봤다. 곧이어 밀양시로부터 소개령이 내려졌다. 120가구 500여명의 사람들이 집을 떠나 비교적 산에서 떨어진 교회로 모여들었다. 분위기는 부산스러웠다. 마을 사람들은 혹시나 산불이 커져 삶의 터전이 망가질까 봐 떨었다. 좀처럼 잠을 잘 수 없었다. 바깥은 소란스러웠고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다음 날에는 하얀 연무가 온 마을을 덮었다. 눈이 따갑고 기관지가 아팠다. 연기는 밀양 시내 전체까지 퍼져나갔다. 가뭄 때문에 바싹 마른 바람이 산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불어댔다. 불은 더 확산됐다.
“첫날에는 빨리 진화될 거라고 들었는데, 둘째 날부터 걷잡을 수 없이 불이 번져가더라고요. 불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였지요. 날아다니면서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불 도깨비 같았습니다.”
둘째 날에는 감당할 수 없이 피어오르는 연기로 소방헬기도 뜨지 못했다. 확산세를 키워가는 불에 아무리 물을 뿌려도 소용이 없어 불이 더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아래 쪽에 집중적으로 물을 뿌렸다.
소방관, 산림청·지자체 관계자, 군인, 자원봉사자와 젊은 마을 청년들까지 1000여명이 되는 사람들이 모두 불을 끄는 데 총력을 다했다. 그렇게 불이 난지 72시간 만인 6월 3일, 드디어 주불이 진화됐다. 그러나 잔불이 남아있어 방심하긴 일렀다. 마을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에는 3주까지 사태가 지속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발을 동동 굴렀다. 김씨를 포함, 마을의 젊은 사람들은 며칠간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산을 오르내렸다. 그리고 5일, 기적과 같이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산불은 닷새 만에 완전히 꺼졌다.
“사람들이 전부 비를 맞으며 손뼉을 쳤지요. 아 이제 끝났다. 드디어 끝났다. 비는 와이리 늦게 왔노, 더 빨리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다, 이제라도 와준 게 어디고 고마워 죽겠다. 다들 그랬지요.”
◇산이 생명력을 잃자 재난이 일어났다= 불이 꺼진 후 한동안 마을 도랑에는 까만 잿물이 흘러 내려왔다. 위험 요소들을 제거하는 복구 작업이 얼마간 진행됐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까맣게 타버린 산을 제외하고서 모든 것이 이전과 같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산이 생명력을 잃자 삶도 바뀌었다. 여름이 오자 마을 주민들은 유례 없이 더운 날들을 보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당최 잠에 들 수 없어 종일 에어컨을 틀었다.
환경이 달라지니 작물도 자라지 못했다. 마을 주민들이 키워오던 콩과 고추는 대부분 수확하지 못했다.
여름 장마 기간에는 수해 피해도 있었다.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장마로 내린 비가 산에서 줄줄 내려왔다. 죽은 나무는 물을 흡수하지 못했다. 바위가 많은 옥교산은 내리는 비를 흡수하지 못하고 그대로 마을로 흘려보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후로는 산사태가 연이어 발생했다.
“산사태가 계속 일어나더라고요. 밀양시에서 그런 위험 지역에 몇 번이고 복구를 해주긴 했어요. 아직 엄청 크게 난 것은 아닌데, 이제 시작 같아서 두렵죠. 산이 타버렸기 때문에 이게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지 다 알 수 없으니까….”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가려면= 마을 주민들이 이전의 삶을 되찾기 위해선 옥교산 또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옥교산이 이전과 같은 산림의 모습을 되찾는 기간을 30년이라고 본다. 토양의 기능이 다 회복되기까지는 100년이 걸린다. 고작 닷새의 화재였지만 복구까지는 아득히 먼 시간이 소요된다. 밀양시는 지난 7월부터 산불기본계획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오는 11월 용역의 결과가 최종적으로 나오면 전문기관 등과 의견을 나눠 연차적으로 복구 계획을 마련한다. 경남도는 옥교산 복구에 93억여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복구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적지적수(適地適樹)’다. 적당한 땅에 적당한 나무를 심는 일이다. 밀양 산불 현장 조사에 나섰던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전문조사관인 권춘근 박사는 “지역의 기후적인 요건 등과 토양의 성질 등을 고려해 ‘적지적수’로 생육이 원만할 나무들을 심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변수는 기후변화다.
“5~6월 산불이 이렇게 대형산불로 번지는 것은 유례가 없었죠. 기후가 변화하면서 산불이 잦아지고 있어요. 대형산불이 발생하면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킵니다. 그리고 다시 뜨거워진 온도가 대형산불이 일어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내죠. 이 굴레는 우리가 어떻게든 끊어내야 하는 난제가 됐습니다.”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