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불편한 시설, 불편한 시선… '감옥'에 갇힌 동물들 [시대착오 동물원, 존폐를 묻다·(1)]

  • 등록 2024.07.22 09: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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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바닥·인위적 조형물서
머리 좌우로 흔드는 반달가슴곰
맥 없이 창밖만 바라보는 호랑이
방치·학대 속 여전히 '관리 소홀'

비좁은 공간에서 생기를 잃은 동물의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더러는 죽고, 버티다 못해 도심으로 탈출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경인일보는 지난 5월부터 동물 방치와 학대가 자행되는 전국 동물원의 실태를 추적했다. 관련 법·규정의 미비점을 살피고, 독일·네덜란드·일본 등 현지 동물원 취재를 통해 국내 동물원의 개선 가능성과 미래를 모색한다.

부천시 한 실내 동물원(플레이아쿠아리움) '정글존'. 이름처럼 울창한 정글 수풀이 떠오를 법한 이 구역에는 호랑이와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동물들의 존재를 지우면 얘기는 달라진다. 콘크리트 모형 바닥과 인위적인 조형물이 놓인 비좁은 공간만 남을 뿐이다.

지난달 4일 플레이아쿠아리움. 취재진은 올해 1월에 이어 6개월 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정글존 내 사자가 있던 자리를 다른 동물이 채웠을 뿐 생활환경은 달라진 게 없었다. 반달가슴곰은 여전히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무의미한 움직임인 정형행동을 보였고, 호랑이는 눈이 풀린 상태로 맥없이 창밖만 바라봤다. '경기도민청원'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 동물원의 열악한 사육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민원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국내 동물원 동물들이 열악한 생활환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 동물원의 경우 협소한 공간에 밀집된 형태로 동물원이 조성된 경우가 대다수라 특히 심각하다. 대형 야생동물들이 비좁은 철창에 갇힌 광경은 그야말로 감옥과 다름없다. 기존 전시·관람 형태 동물원에서 체험·테마파크형 동물원으로 사람의 선택 폭이 다양해지는 동안 동물들의 처지는 과거 그대로 멈춰있다.

지난달 25일 찾은 하남시의 한 민간 체험형 동물원에 들어서자 미어캣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남아프리카 일대에 주로 서식하는 미어캣은 햇볕 쬐는 걸 즐기고 땅굴을 파며 무리 지어 생활하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실내 동물원인 이곳에서는 미어캣 고유의 습성을 무시한 채 인공 조명과 함께 나무 알갱이가 바닥에 얇게 흩뿌려져 있었다. 이 동물원에서 미어캣은 방문객들이 '교감 도구'란 이름의 긴 주걱모양 막대기를 활용해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있었다.

동물을 직접 만질 수 있는 공간은 교감도 사치였다.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어린이는 토끼에게 먹이를 주려다 갑자기 자신에게 다가오는 토끼에 놀라 먹이를 던졌다. 교감도구로 물을 받은 다른 어린이는 왈라비의 몸과 바닥에 물을 뿌리기도 했다. 혹시 모를 위험 상황을 통제할 관리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날 4살 조카와 동물원을 찾은 박경미(53)씨는 "(관람객이) 동물을 때리거나 털을 뽑는 경우도 여러 번 봤다"며 "동물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클 것 같다"고 했다.

야외 동물원이라고 해서 나은 건 아니다. 서울어린이대공원에 조성된 '맹수마을'의 호랑이·사자·스라소니 등 야생동물들은 타원형 우리에 살고 있다.

이곳의 동물들은 관람객의 시선을 피할 곳이 없다. 관람객들은 줄지어 맹수마을 주위를 한바퀴 돌며 유리 너머 동물을 구석구석 살폈다. 호랑이 등 몇몇 동물의 공간은 관람객이 2층 높이의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로 지어져 은신처 하나 없었다.

한주현 변호사(동물의권리를옹호하는변호사들 모임)는 "최근까지도 동물원은 지자체에 서류만 내면 설립이 가능할 정도로 '관리 밖'에 있었다"며 "동물원을 영리 목적에 기댄 채 운영해 동물을 방치하고 학대하는 문제가 지속·반복됐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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