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가장의 살인’ 자존감 지키려… 뒤틀린 가부장 문화

  • 등록 2025.04.17 09:4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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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서 ‘가장이 일가족 5명 살해’… 잇단 유사사건 배경은
“사업 실패 비관” 범행동기 진술
수원서도 3월 부부·자녀 4명 숨져
“의존형 장애, 짐지울수 없다 핑계”

가장이 가족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를 하는 일이 연이어 벌어진데는 ‘가부장적 악습’이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5일 용인시 수지구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 5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이들을 살해한 50대 가장 A씨가 광주광역시에서 붙잡혀 지난 15일 용인서부경찰서로 압송됐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업 실패로 빚이 생기고 민사 소송이 들어오는 것을 비관했다”는 내용의 범행 동기를 진술했다. A씨는 분양사업 투자 실패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으며, 1차 부검 결과 피해자들이 동일하게 목이 졸려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A씨가 수면제를 먹인 뒤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계획 범죄에 무게가 쏠린다.

 

비슷한 일은 지난달 수원시에서도 벌어졌다. 남편이자 아버지인 40대 남성 B씨는 장안구 아파트 단지 지상 화단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고, 집 안에는 아내와 중학생 아들, 초등학생 딸이 숨져 있었다. 경찰은 B씨가 가족들을 살해한 뒤 투신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생전 지인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는 수억원에 달하는 돈을 돌려받지 못한 상황을 토로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연이은 비극은 가부장적 악습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정의 수장’이라는 위계를 담은 가장에게 가족은 자신이 책임질 존재인 동시에 자기 뜻대로 거둘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이같은 권위가 부여된 탓에 가장의 실패는 자기 파괴에서 그치지 않고 전체 가정을 무너뜨리는 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평소 집안에서 우위를 점하던 가장이 사회에서 큰 실패를 겪게 되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는다”며 “자신의 입지를 확인할 최후의 방법을 가족의 운명을 끝내는 데서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에게 주어지는 권위가 범죄자들에게 핑계이자 권리를 부여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일가족 살해 범죄는 보통 자존감이 낮거나 의존형 장애가 있는 이들이 주로 저지른다”며 “가장이 돼서 짐을 지울 수 없다는 핑계를 대지만, 실상은 사회적 실패 후 떨어진 자존감을 범죄 과정을 통해 회복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배 프로파일러는 “가족 살해 후 자살은 미수에 그친 케이스가 훨씬 많다”며 “잘못된 가족 인식을 가진 범죄자를 가족에게서 분리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마주영기자 mango@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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