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적극적으로 반응한 우리나라 민중미술 1세대 화가 강광(姜光·사진) 작가가 5일 새벽 숙환으로 영면했다. 향년 83세.
강광 작가는 1940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직전 서울로 이주해 마포 백마양조 주식회사를 운영한 부친 아래서 비교적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경복중·고를 거쳐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다. 여성 한국화가 최욱경이 그의 입학 동기다.
아버지의 투병에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며 6년 만인 1965년에 졸업했다. 졸업 후 입대해 월남전에 참전했다. 전역 이후 제주에서 1969년부터 1982년까지 14년 동안 오현중·고교 교사로 일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강요배(화가), 김영호(미술평론가), 강승희(판화가) 등이 그의 제자다.
1985년 인천대에 부임해 교수로 일하며 인천과 인연을 맺었다. 인천대 시립화 과정에서 교수협의회 회장을 하며 선두에서 활동했는데, 시립화라는 결과물을 이뤄낸 것에 대해 본인도 자긍심이 있었다. 대학에서 학장, 부총장, 인천학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역임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맞서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 '앞장'
문화계에도 큰 영향을 줬다. 인하대 이가림 교수와 함께 인천민예총을 설립해 예총과 민예총이 서로 보완 견제하며 어느 한쪽이 독주하지 않고 문화계가 균형을 갖추는 토대를 마련했다. 인천미술인 초대작가회, 창작미술인협회 회장, 인천문화재단 제3대(2010~2013) 대표이사로 일했다.
인천 지역사회 전반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활동을 주도했다.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 반대 운동을 이끌었고, 우리겨레 하나되기 인천운동본부 상임대표로 남북 교류에도 힘썼다.
설치미술가 이탈 작가는 "많은 작가가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작가"라며 "본인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아는 분이었다. 창작활동을 통해 생각을 표현했고 생각을 완성하기 위해 또 실천한 작가였다"고 말했다. 이탈 작가는 인천아트아카이브 작업을 맡아 최근 고인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빈소는 인천의료원 장례식장 20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8일 오전이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