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유물을 보존하고 연구하듯 미술관은 미술품을 보존하고 연구한다. 미술 작품 하나에는 예술적 가치는 물론이고 당대의 시대적 흐름과 삶의 흔적까지 함축돼 있다.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가치, 경남도립미술관 수장고 안에는 경남도민의 예술 자산이 잠들어 있다. 경남도립미술관 개관 20주년을 맞아 소장품의 의미와 수장고 건립의 시급성, 최근 경남도가 밝힌 ‘개방형 수장고’ 논의에 대해 짚어본다.
전체 소장품 현황
20년간 1439점 수집·보관
소장품 58%는 ‘무상 기증’
유상구입 65%가 경남 작가
국내외 거장 작품도 다수
◇미술관 소장품으로 지역 미술의 흐름 얘기하다= 경남도립미술관에서는 미술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한 ‘GAM 컬렉션: 미래의 기억’을 통해 미술관의 소장품을 내보였다. 미술관은 도립미술관이 20년간 수집한 소장품 1439점을 분류하고 조사해 이 중 160여점을 전시, 작품을 통해 한국과 경남 미술의 흐름을 설명했다.
미술관은 매년 심의를 통해 평균 35점가량을 구입, 관리 전환하거나 기증받아왔다. 근현대 주요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경남미술사 정립을 위해 지역 작가의 대표 작품, 경남의 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 등을 소장했다. 이 중 작품 기증 비중이 높다. 총 1439점 중 58%인 839점은 무상으로 기증받았는데 신옥진 컬렉터에게 252점을, 강국진의 부인인 황양자 여사에게 201점, 채준 작가에게 41점, 최운의 아들인 최경철 씨에게 40점, 김인하 작가에게 18점, 이준 작가에게 10점 등을 기증받았다. 특히 경남에 소속된 만큼 경남의 거장뿐만 아니라 유망한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주목하고 소장하면서 지역 미술인의 성장을 도왔다. 이제까지 미술관이 작품을 구매하는 ‘유상구입’의 비중을 보면 총 521점 중 341점(65%)이 경남 작가의 작품이다. 이렇게 수집한 소상품은 학예연구사가 연구를 통해 미술사를 정립하는 한편, 소장품을 기반으로 전시를 진행하기도 한다. 도립미술관이 개관했던 2004년 처음으로 판화 소장작품전이 열린 이후, 소장품에 기반한 전시는 지금까지 115회 열렸다. 2006년부터는 ‘찾아가는 도립미술관 전시’로 도내 18개 시군에서 소장품을 이용한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는 것= 경남도립미술관은 지역적인 가치를 넘어 전국과 세계적 가치를 지닌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의 보고(寶庫)를 들여다보자면 경남에서는 △진주 출신 박생광의 ‘십장생(학)’ △창원 출신 김종영의 ‘작품 78-25’ △진주 출신 이성자의 ‘밭고랑의 메아리’ △통영 출신 전혁림의 ‘한국의 환상’ △함안 출신 이우환의 ‘With Winds’가 있다. 경남 출신이 아닌 거장의 작품들도 대거 있다. 국내에서는 백남준, 도상봉, 최만린, 강요배, 이강소가 대표적이며 휴고 바스티다스(미국), 장 샤오강(중국), 웨민쥔(중국), 쿠사마 야요이(일본), 니콜라 물랭(프랑스)과 같은 해외 거장들의 작품도 보관하고 있다.
공공미술관의 소장품은 미술관의 존립 이유이자 지역민이 두고두고 가져갈 예술 자산이다. 마산 출신으로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을 지냈던 강선학 미술평론가는 “미술관 소장품은 미술관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자 운영자들의 태도와 이해 정도를 반영한다고 본다”며 “소장품에 드러나는 영혼과 정신, 예술성은 작품을 통해 밝혀가는 사유의 해석과 그 물증이며, 역사를 만드는 지식생산의 근거”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장품은 다른 지역과 자신이 속한 한 시대와 사회를 구사하고 표현하는, 현재와 과거, 미래를 이어주는 감각적 사유의 물증이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술 소장품이 중요한 만큼, 이를 보관하는 수장고의 관리와 공간 확보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강 평론가는 “수장고는 문자이자 도서관이며, 기록이자 사물이며, 정보이자 해석의 박물관이라고 봐야겠다”며 “풍부할수록, 정교할수록, 체계적일수록, 소장품을 수용할 만한, 미래적 수준을 예견하고 그 필요에 대응할 만한 장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장고 건립 시급
중소형 작품 기준 포화 6년 남아
입체작품 등 수집 땐 더 빨라져
수장고 여유 없어 기증 못받아
경남도 ‘개방형 수장고’ 건립 제시
◇수장고 늦어도 6년 안에 가득 찬다= 2004년 경남도립미술관의 개관과 함께 채워지기 시작한 미술관 수장고는 시간이 갈수록 공간의 여유가 줄어들어 포화율 90%를 바라보고 있다. 이에 따라 미술관 수장고 포화에 관한 지적이 이어졌고, 경남도는 지난달 12일 ‘경남 문화예술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보존·관리를 위한 지역분산방식 개방형 수장고 건립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경남도에 따르면 현재까지 수장고 건립과 관련해서는 방향성인 ‘지역분산방식 개방형 수장고’가 나왔을 뿐, 구체적인 시기나 예산 등의 계획 수립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경남도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수장고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했을 때 지역분산형으로 개방형 수장고 형태로 가야 된다는 방향이 정해져 장기적 계획을 세워보려 준비 중에 있다”고 전했다.
미술관은 4개 수장고에 작품 총 1439점을 보관하고 있다. 제1수장고에는 대형 작품을 보관하고 제2수장고에는 소형 작품을, 제3수장고에는 중대형 작품을, 임시수장고에는 부피가 비교적 큰 입체작품을 보관한다. 수장고의 포화율은 적으면 75%에서 많으면 90%에 이른다. 앞으로 215점까지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데, 이전과 같이 매년 평균 35점을 수집한다면 늦어도 6년 안에 포화율 100%에 도달할 수 있다. 그것도 작품이 소형(평면 세로 50x가로 50㎝)이나 중대형(100x100㎝)일 경우다. 이 이상의 초대형 평면 작품이나 조각과 설치 등의 입체 작품이 수집될 경우 포화 속도는 더 빨라진다. 현재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중 가장 큰 것은 입체 작품으로 최정화 작가의 ‘인류세’다. 냄비 등을 합쳐 설치한 ‘인류세’는 높이가 24m에 육박해 현재도 미술관 내 수장고에 수납이 불가능하다. 평면 작품도 크기에 따라 입체 작품보다 더 큰 부피를 차지한다. 미술관에 소장된 김창락의 ‘고향의 봄’(196x623㎝), 정문현의 ‘연’(260x445㎝)과 ‘여일(지리산 下)’(260x445㎝), 박생광의 ‘십장생도’(30x653㎝)가 대표적이다.
경남도 또한 현재 수장고 상황에서 입체 작품의 소장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도 관계자는 “조각 작품이 수장고에 들어갔을 시에 포화가 빨리 될 것이라 보고 있다”며 “일반 미술품(평면 작품)만 가지고는 아직 포화 상태가 아닌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남 미술사에 있어서 조각 미술은 빠질 수 없다. 경남은 문신, 김종영, 박종배, 박석원, 심문섭, 김영원 등 다른 지역에 비해 조각 거장을 많이 배출했기에 경남 미술사 정립을 위한 조각 작품의 연구와 이를 위한 소장은 필연적이다. 수장고 건립에 막대한 예산이 발생되는 만큼 오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도립미술관의 수장고는 이미 여유가 없다. 도는 임시 공간 확보에 별도의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