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 녹조 쌓여 썩은내 진동… “보 개방해 낙동강 살려야”

2022.08.04 22:15:13

경상권 환경단체 낙동강 녹조 현장조사…4급수 지표종 발견
썩고 냄새나는 경남의 ‘물그릇’

수면에 녹조가 쌓이고 겹치면서 단단한 막이 형성됐다. 두툼한 초록막 위로 파리와 날벌레가 기어 다닌다. 플라스틱 와인잔 하나가 녹조물을 가르며 수면 위로 올라온다.

 

강호열 낙동강네트워크 공동대표와 민은주 부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기자들을 향해 와인잔을 들어 보이며 “녹조가 쌓이고 쌓여 썩은내가 나는, 이게 바로 우리 물그릇입니다”라고 외친다.

 

 

 

◇영남의 젖줄은 ‘4급수 저서생물 왕국’이다= 경남·부산·대구의 환경단체와 전문가가 낙동강 일대에 모였다. 이들은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 4개 지점이 모두 조류경보 ‘경계’ 단계에 들어 녹조로 덮이고, 남조류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도 검출된 상황에서 ‘수돗물은 안전하다’는 환경부의 발표에 반발해 ‘민간조사단’을 구성, 직접 현장 조사에 나선 것이다.

 

4일 오후 12시 30분께 창원 본포취수장을 찾은 조사단은 삽으로 강바닥 흙을 퍼 올렸다. 하얀 장갑을 낀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자연생태국장이 검은 흙더미를 펼치고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검은 흙더미를 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장갑 위로 몸을 둥글게만 빨간 생명체가 올려졌다. 진해 석동정수장에 나와 논란이 됐던 4급수 지표종, 붉은깔따구 유충이다. 정 국장이 빨간 바구니 안으로 유충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같은 4급수 지표종인 실지렁이도 한 마리 발견됐다.

 

예전 낙동강 바닥에서는 조개가 발견됐다. 귀이빨대칭이, 말조개, 재첩 등 맑은 물에서 발견되는 민물조개들이다. 그러나 낙동강에 보가 생기면서 유속이 급격히 줄고 강을 따라 유기물이 흐르지 않아 그대로 바닥에 가라앉으면서 썩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갈색 모래 대신 검은 펄이 낙동강 바닥을 차지했다. 이제 낙동강에는 조개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조사단원인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교수는 “심한 곳은 펄의 깊이가 1m가 넘는다. 이 썩은 펄에서 살 수 있는 생명체는 한정돼 있다”고 말했다.

 

조사단은 낙동강이 4급수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환경부 규정에 따르면 4급수는 ‘식수로 사용할 수 없고, 오래 접촉하면 피부병을 유발할 수 있는’ 물이다.

 

◇생명의 강으로 돌려놔야= 조사단은 남조류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 검출을 위해 취수장의 상하 가장자리 부근에서 두 번 채수했다. 플라스틱에 흡착되는 마이크로시스틴의 특성을 고려해 채수에는 유리그릇과 병이 사용됐다.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물 안에는 초록 알갱이가 둥둥 떠다녔다. 병을 담는 비닐에는 채수 위치와 시간, 기온과 수온을 적었다. 이날 본포취수장의 수온은 31.1℃. 채취한 물은 부경대 이승준 교수 연구팀에 맡겨질 예정이다.

 

조사단은 본포에서 다량의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이 지난 6월과 7월 진행한 조사에서도 본포의 상황은 심각했다. 조사단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6월 본포생태공원에서 미국 EPA(연방환경보호청)의 물놀이 기준 1075배가 넘는 마이크로시스틴 8600㎍/L가 측정됐다고 밝혔다.

 

창원 본포수변은 상수도와 공업용수로 쓰이며 야영과 레저시설을 갖춘 생태공원과 연결된다.

임희자 낙동강네트워크 공동집행위원장은 “본포뿐만 아니라 낙동강 전역에서 다량의 마이크로시스틴이 측정됐다. 식수는 물론 야영, 레저를 즐겨서도 안 된다”며 “마이크로시스틴은 에어로졸 형태로 비산할 수 있어 흡입으로도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조사단은 이번 조사를 통해 정부와 시민들에게 ‘낙동강이 병들었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한다는 취지를 설명했다. 조사단은 “강이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 4급수 저서생물이 사는, 지독한 독성물질이 존재하는 낙동강을 영남 시민이 제대로 먹고 즐길 생명의 강으로 되돌려야 한다”며 “제일 간단한 것은 보를 개방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이날을 시작으로 오는 6일까지 낙동강 30여 개 지점을 돌며 채수·채토해 그 결과를 이르면 8월 말에 발표할 예정이다.

 

글·사진= 어태희 기자

 

어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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