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정인이 사건 이후 우리 사회는 같은 비극을 저지르지 말자는 사회적 합의 아래 아동학대를 더 엄격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정에서 분리되는 아동이 많아지면서 시설·인프라 확충과 현장 처우 개선, 전문 인력 보충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분리아동 성장 지원 필요
167명 중 63명 보육원에
나머지는 쉼터 등 위탁
애착관계 시기 발달장애도
아동정서 치료기관 있어야
◇아동 성장 저해하지 않을 분리 방안 필요= ‘아동 즉각 분리’가 시행된 2021년부터 올해 3월까지 경남에서 분리된 아동 167명 중 63명은 아동 양육시설(보육원)에 입소했다.
또, 학대 피해 쉼터(1년간 공동 가정 형태의 주거환경 제공 시설) 31명, 공동생활 가정에 9명, 청소년 쉼터(그룹 홈)에 25명, 나머지 39명은 병원이나 친척, 위탁 가정 등에 맡겨졌다.
전문가들은 아동을 돕기 위한 가정 분리 제도가 자칫 아동의 정신적·육체적 건강과 성장을 저해하지 않도록 세심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아동 유형별로 입소할 시설을 세분화해 상황에 맞는 양육·보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일시 보호소(학대 피해 아동을 포함한 요 보호 아동을 3개월 동안 보호하는 시설)와 영유아 그룹 홈(0~6세 분리 아동을 보호·양육하는 시설)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경남에는 아동 양육시설 24개소(총 정원 1280명), 학대 피해 쉼터 4개소(총 정원 28명), 공동생활 가정 26개소(총 정원 182명), 청소년 쉼터 5개소(총 정원 44명) 등이 있다.
도내 한 시설 복지사는 “분리 아동들이 가정으로 복귀할 때마다 기존 입소 아동들의 심리적 동요가 크다”며 “분리 아동을 일단 일시 보호소에 보호한 다음 복귀 상황 등을 고려해 다른 시설로 보내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고 제안했다.
공혜정 (사)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애착 관계가 필요한 시기에 분리된 0~6세 아동은 후천적 발달 장애를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 때문에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보살펴 줄 그룹 홈 형식의 보호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분리 아동의 정서를 치료해줄 전문 기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학대로 분리된 아동의 경우 낮은 자존감과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 정서 불안, 공격적 행동, 대인관계의 어려움 등 정서·행동상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김지수 경남아동복지협회 회장은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아동의 성장과 발달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며 “아동별 적절한 보호조치와 서비스 제공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24시간 대기 지친 담당자
전담 공무원 도내 45명뿐
지자체별 1명인 곳도
행정업무까지 맡아 과부하
꾸준히 지켜볼 상담원 부족
◇지쳐가는 아동학대 대응·관리 현장직= 학대를 발견하고 학대 재발을 막는 것은 모두 사람이다. 일선 담당자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만 이들은 고된 현장에 지쳐가고 있다.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은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왔을 때 경찰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간다. 낮과 밤, 주말을 따지지 않고 24시간을 대기해야 하는 업무다.
일선 공무원들은 일반적인 행정 업무와 병행되는 아동학대 업무에 피로를 느끼고 있다고 답한다.
현재, 경남 18개 시·군에는 45명의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활동하고 있는데, 인원수가 적은 지자체 공무원들의 업무난이 심각하다. 창원과 김해가 각각 7명으로 가장 많고, 진주 6명, 양산과 거제가 3명, 통영과 사천, 창녕에 2명이 있다. 이외 나머지 10개 지자체에 1명씩 배치돼 있다.
한 지자체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은 “아동학대가 매일 있는 사건은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행정 업무도 맡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며 “현장 하나하나에 집중이 필요한데 피로가 누적되면서 현장에 대응할 동력이 사라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아동이 가정에서 분리된 이후 부모 교육과 아동의 심리 상담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장기적으로 사례를 관리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원은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이 기관의 지난해 상담원 평균 근속 연수는 2.3년이다.
이들은 업무 특성상 월평균 40시간 이상을 초과근무하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힘들다. 장기 근무자와 초임자 수당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이 때문에 장기 근속자는 물론 현장에 필수적인 남자 상담원 지원자가 상대적으로 적다.
박미경 경남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업무 특성상 오랜 시간 일해서 많은 사례를 경험해야 학대 징후를 파악할 수 있다”며 “상담원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능숙한 근무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