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보) 그 시절 우리를 울고 웃게했던 극장과 극장 사람들

  • 등록 2025.03.20 17: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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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구 ‘동구의 극장과 사람들’
일제강점기부터 극장 변천사 발간
원로들이 말하는 흥망성쇠 담아
‘인문도시 광주 동구’ 기록 일환

“어린 시절 동네 형들을 따라 제일극장에서 본 ‘십계’가 처음 본 영화였습니다. 당시 티켓값이 100원이었죠. 십계, 벤허, 타이타닉…. 세월이 흘러도 그 아름다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매표소 앞에 길게 늘어선 줄, 영화 속 배우와 닮은 듯 닮지 않은 듯 강렬함이 전해지던 극장 간판, 어둑한 상영관과 어디선가 풍겨오는 달콤짭짤한 냄새, 작은 몸을 압도하는 대형스크린…. 지역민들을 웃고 울리던 영화의 추억들이 가득 담긴 광주의 극장들.

 

그러나 지역의 극장들은 시대 흐름과 함께 새롭게 생겨나고 변화하고 사라져갔다.

 

광주 극장들의 역사를 담은 책이 발간돼 눈길을 끈다.

 

광주시 동구가 엮은 ‘동구의 극장과 사람들’은 영화계 원로들이 전하는 광주 극장들의 흥망성쇠에 관한 이야기이다. 위경혜 전남대 연구교수가 책임과 감수를 맡았으며 임인자 독립책방 ‘소년의 서’ 대표, 윤연우 시각예술작가가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1917년 일제강점기 광주 최초의 극장 ‘광주좌’가 황금동에 자리잡은 이후 동구는 광주의 영화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해방 이후 무등극장과 광주극장 등 충장로와 금남로, 광주천변을 중심으로 영화관들이 차례차례 생겨났다.

 

하지만 TV와 비디오의 보급으로 극장의 역할이 점차 축소되고, 대기업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등장하면서 지역 단관극장(스크린을 한 개만 갖춘 극장)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다. 올해 개관 90주년을 맞는 광주극장만이 전국 유일의 단관극장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책은 수십년간 극장을 터전 삼은 이들의 삶을 기록한다. 필름을 배급하고 영사기를 돌린 이들, 간판을 그리고 매표소를 지키고 영화관을 청소한 사람들, 지역 영화계를 이끌어온 영화 원로 등 13명의 목소리는 추억 속 극장 이야기만큼이나 흥미롭다.

 

OTT는 물론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이전인 단관극장 시절, 한편의 영화는 하나의 극장에서 상영했다. ‘터미네이터’와 ‘인디아나존스’는 무등극장에서만 개봉하는 식이다.

 

영화사에서 일했던 김상옥씨는 “당시에는 신문에 영화광고를 냈어요. ‘광주에서는 무등극장에서, 순천은 맘모스극장에서 우리 영화 상영합니다’는 식으로요. 부수가 많은 광주일보에 광고를 내면, 신문이 지방에도 내려가니까 광고가 지방에도 내려갈 거 아닙니까?”라고 회상했다.

 

영화관은 현재와 같이 전국이 동시에 개봉하지 않았다. 지역 개봉관에서 한 영화를 개봉하면, 상영 종료 2~3개월 후 재개봉관에서 해당 영화를 상영한다. 2~3년이 지나고나면 군소영화사에서 리바이벌해 또 배급하는 식이다.

 

광주를 대표하는 개봉관은 무등극장과 제일극장, 광주극장. 시민들은 인기있는 신작을 보기 위해 이들 극장에 일찍부터 달려가 줄을 서야했다.

 

책에는 광주영화사에서 20여년간 일한 임홍씨가 1998년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타이타닉’을 떠올리는 내용도 나온다. 임씨는 “사람들이 표를 끊고 차례대로 들어와야 하는데, 그 아침에 사람들이 얼마나 몰렸는지 한번에 문을 열고 우르르 들어온 거예요. 제가 가운데서 양팔을 벌리고 서있었죠. 다행히 사람들이 착하니까 다 표를 주고 들어갔어요.”

 

하지만 대기업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겨나며 지역 극장들은 관객들을 잃어갔다. 충장로 5가에 엔터시네마 등 지역 멀티플렉스관도 생겨났지만 극복하지 못했다. 지역 영화관과 배급사, 그리고 그 곳에서 일해온 직원들도 모두 갈 곳을 잃게 됐다. 김상옥씨는 “광주 지역 극장이 1000여개는 됐다. 하지만 이제 변두리 극장까지 다 없어졌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지방 매체에 주는 걸 봤나. 모두 중앙에서 이뤄진다”며 탄식했다.

 

이번 책은 광주 극장의 흥망성쇠는 ‘인문도시 광주 동구’ 기록화 작업의 일환으로 발간됐다.

 

임택 동구청장은 “그 시절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땀 흘렸던 극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며 “책은 동구가 발간한 17번째 기록물이라는 의미를 갖는 만큼, 동구는 앞으로도 우리가 사는 도시의 역사와 발자취를 적어나가겠다”고 전했다.

장혜원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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