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의 한 건물, 무당집 문을 열고 3층으로 올라오면 장두루(25) 작가의 ‘신당’ 같은 작업실이 나온다. 왜 신당이냐, 장 작가는 작업실에 여러 신들을 모시고 있는 듯하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님까지는 아니옵고 어디선가 잊히고 있는 신들이다.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물건에 혹은 공기 중에, 흔들리는 나무 속에, 설화 속에, 그림 속에도 들어 있다. 그래서 그의 작업실은 재밌다. 잊히는 신들처럼 잊히는 이야기가 다시 그려지는 공간이다.

▲ 장두루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품과 같은 자세로 앉아 있다./김승권 기자/
-이번이 첫 작업실이라고.
△2023년 가을 즈음 들어오게 됐다. 사실 옛날에 우리 가족이 살았던 집이다. 2층에 집주인인 이모가 살았고, 3층에 가족과 살다가 제가 8살 즈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다음 이사 오신 분이 오래 살다가 이사를 가셨는데, 이모 배려로 제가 청소를 하면서 이곳을 쓰기 시작했다.
-작업실로 올라오는 길에 물고기 벽화를 봤다. 작가님이 그린 것인지.
△중학생 때 사촌언니랑 같이 그린 벽화다. 건물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이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건물도 많이 낡았고, 동네 자체가 환하진 않아서 어두운 느낌을 없애고자 이모가 부탁해서 그렸다. 안으로 좋은 기운이 들어오게 헤엄쳐 올라오는 물고기들을 그렸다.
-작업실이 물건들로 가득한데, 새것은 안 보이고 주로 낡은 것들이다.
△애초에 새것보다 헌것을 더 좋아하는 취향이다. 중고거래 마켓 거래나 이곳저곳서 주워오는데, 다 쓰임이 좋다. 어떤 사람은 물건을 주워오면 귀신이 붙는다는데, 나는 오히려 헌 물건을 닦고 또 쓰는 과정에서 물건들이 치유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주워온 물건을 작품에 쓰기도 하지 않는가. 물감을 만들기도 한다고 들었다.
△액자틀 같은 것도 모았다가 작품과 어울릴 것 같을 때 쓰기도 한다. 잉크, 종이도 직접 만들어 봤다. 돈이 없는 상황은 언제나 기본인데, 돈 없다고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시작했다.

▲ 장 작가의 작업 공간./김승권 기자/
-작가님은 따로 미술을 배운 적이 없다고 들었다. 어떻게 예술을 시작한 건지.
△어릴 때부터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림을 그려 왔다. 나에게는 놀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대안학교를 나왔는데, 수업은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를 공부하고 발표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 모든 발표를 그림으로 하고 있더라. 스스로 ‘나 그림을 그리고 싶네’ 생각했다. 작가의 삶도 잘 몰랐고,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작가가 되어야겠다’보다는 ‘그림으로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작가’가 된 것은 언제부터라 생각하는지.
△작가가 됐다기보다 작가를 생각할 수 있었던 계기가 있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근처 마글랑이라는 지역에 커뮤니티를 이뤄 사는 공동체가 있다. 민족예술을 하는 그런 공동체다. 그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기록이 많이 쌓여서 전시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부산의 예술공간 이일구에서 경력 없는 청년 작가 전시를 지원한다고 해 신청했다. 그때 첫 전시를 했고 전시 보러 온 작가 한 분이 레지던시를 신청해 보라고 하더라. 하동 악양에 있는 악양 창작스튜디오였다.

▲ 작업실로 올라오는 벽면에 그려져 있는 물고기 그림./김승권 기자/
-레지던시를 통해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됐을 것 같다.
△그렇다. 그때가 21살이었고 이전까지는 작가를 접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때 다른 작가들을 처음 만나게 된 거다. 전문용어나 미술의 언어들을 처음 들었다. 엄청 신이 났었다. 내가 알아야 될 새로운 세계를 배우게 된 것 같았다.
-전시 중 ‘부적’ 시리즈가 기억에 남는다. 토속적·무속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가.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다. 특히 민간신앙을 되게 좋아하는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는 믿음이 항상 있어 왔다. 물건을 주워오면 물건이 기뻐할 거라는 상상도 하고. 고등학생 때까지는 모든 신들과 조상의 이름을 연결한 나만의 주문을 외우기도 했다. 거기다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이 계속 이뤄지니 그럴 때마다 ‘이래서 신앙을 안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님의 부적 작품은 그림에 어떤 ‘쓸모’를 부여하는 것 같다.
△쓸모랄까, 내가 작가 생활을 할 수 있으려면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집에 들이는 여가생활이 이뤄져야 되지 않을까. 근데 그런 여가생활도 물질적이나 심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잘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부적 그림을 그렸다. 사실 그림이란 것이 삶을 환하게 만들거나 경고를 하는 것들이 있겠는데 결국엔 삶을 나아지게 만든다는 취지에서 부적과 같은 결이라고 느꼈다.

▲ 물감 등 재료./김승권 기자/
-그렇다면 ‘사람들의 삶을 좋아지게 만드는 그림’이 지향점일까.
△그것도 있겠고, 지켜야 할 것을 그림으로 지켜내는 작가가 되고 싶다. 민속이나 신앙과 자연, 그런 잊혀 가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마산 돛섬에 있는 황금돼지와 최치원 설화는 유학자 최치원을 신성하게 만든 설화인데, 토벌당했던 황금돼지를 자연의 상징처럼 무신도로 그리게 됐다. 황금돼지는 왜 토벌되어야만 했는지, 그 정체는 무엇이었는지 찾고 싶었다. 그 과정이었던 것 같다.
-이어지는 다음 전시에서도 ‘지켜야 할 것’에 대한 이야기 하게 될까.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과도 이어진다. 현대에 와서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땅을 뒤엎고 산을 허물며 공사를 한다. 산신이 노할까 봐 무섭지도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지켜 왔던 개념들이 사라지고 결국 자연에 대한 신성함도 줄어드는 것이다. 이번 작업을 통해 그 지점을 짚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