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지금 당신 옆, 기후괴담·(1)] 먼 나라 이야기 치부했던 지구온난화… 자연의 복수는 시작됐다

  • 등록 2024.08.26 09: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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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하 수상하다.
수상해도 보통 수상한 게 아니다.
지구온난화, 그간 멀리서 들리는 메아리마냥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올 여름 대한민국, 경기도, ‘우리 동네’ 날씨가 심상치 않다. 더워도 너무 덥고, 비가 와도 너무 온다. 7월엔 장마오고, 8월엔 더위가 온다는 날씨 기사의 공식이 있었는데, 더이상 관성대로 쓸수 없게 돼버렸다. 날씨 관측이 ‘틀렸다’고 기상청을 욕하는 일도 사라졌다. 우리 스스로 느끼고 있어서다. 이 날씨, 더이상 예측이 불가능하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그 곳의 날씨가 흉흉하다.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실제 우리동네 여름 ‘기후괴담’의 실체를 쫓았다.

북한 인접한 경기북부서 출몰하던 말라리아, 왜 경기남부로 남하했을까

 

1960~70년대 대대적 퇴치로 자취 감췄지만

1993년 휴전선 인근서 군장병 중심으로 발생

2022년부터 경기 남부서도 나타나 확대 양상

우리 곁에 말라리아 모기가 있을 가능성 농후

 

안산의 A 보건소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말라리아 감염자가 나타났다. 아주 가끔, 경기북부 지역에서 군복무하다 휴가 나온 군인들 중에 감염자가 발생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경기 남부 지역인 안산에서 군인이 아닌 말라리아 감염은 발생한 적이 없었다. 이 감염자는 경기 북부와도 관련성이 없었다. 이상함을 느낀 A 보건소는 집요하게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감염자가 말라리아 위험지역인 인천에 캠핑을 다녀온 적이 있고,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된 모기에게 물렸을 것으로 ‘일단’ 추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뒷맛은 개운하지 못했다. 감염자가 안산에 서식하는 모기에 물렸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찝찝함의 이유를 두고, A 보건소 관계자는 조심스럽게 ‘기후’를 언급했다.

 

“이상 기후로 경기 북부에 서식하던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남하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우려의 배경에는 안산 뿐 아니라 경기 중남부지역 상당수가 이제 말라리아로부터 안전한 지역이 아니라서다. 실제로 질병관리청은 지난 1월 경기도 내 말라리아 감염 위험지역을 기존 7개 시군(고양, 김포, 동두천, 연천, 의정부, 파주, 포천)에서 12개 시군(가평, 광명, 광주, 구리, 남양주, 부천, 시흥, 안산, 양주, 양평, 하남, 화성)으로 추가 확대했다.

말라리아는 1960~70년대 정부와 WHO(세계보건기구)의 대대적인 퇴치 사업으로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러던 중 1993년 휴전선 인근에 복무 중인 군장병을 중심으로 다시 발생했고, 이후 경기 북부 권역과 강원도, 인천 일대로 퍼져나갔다. 이들 지역은 예방의료의 수준이 떨어지는 북한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또 모기를 매개로 한 감염병인 만큼 모기의 활동 시간대인 오후 10시부터 새벽 시간, 풀숲 등지에서 활동이 잦은 군인들이 주 감염자가 되는 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상황이 묘하게 흘러간 것은 지난 2022년부터다. 그 전과는 말라리아 확대 양상이 확실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경기도 남부에서도 말라리아 환자들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 기준 광주, 부천, 시흥에서 각각 감염자가 1명씩 나왔다. 화성에선 4명이 발생했다. 이듬해인 2023년엔 양평에서도 1명이 발생했다. 부천은 11명이라는 두 자릿수 감염 기록이 나왔다. 그리고 올해 안산에서만 5명의 감염자가 발생했다. 단순히 북한과 인접하고 군대가 많은 경기북부에서 옮겨왔다고 추정하기에는 관련성도 크지 않았다.

이동규 고신대학교 보건환경학부 교수는 “말라리아 매개 모기인 얼룩날개모기는 비행 거리가 길어 100km 밖에 떨어진 곳에서도 발견된 사례가 있다”며 “날이 더워질수록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는 얼룩날개모기 성충의 비율이 높아지며, 활동 범위와 기간 역시 길어진다”고 말했다. 조심스럽지만, 높아진 기온으로 말라리아 모기가 우리 곁에 살 가능성이 농후해진 셈이다.

 

서해바다에 출몰한 해파리, 더워진 경기바다에 살수도 있다?

 

경기 바다 수온 이미 ‘고수온 예비주의보’ 수준

남해서 발견되는 ‘보름달물해파리’ 서해서 출현

사람이 살기 힘든 바다, 해파리에겐 좋은 환경

1마리가 내년 최대 5천 마리까지 증식할 수도

지난 6일 경기도해양수산연구소(이하 경수원) 갯벌연구팀은 도내 바다 10개소에 대한 환경조사를 시행하던 중 의미심장한 결과를 마주했다. 통상 남해에 대규모 출현해 어민에게 피해를 끼치는 ‘보름달물해파리’가 경기도에 인접한 서해에서 눈에 띄게 늘어났다.

지난달 초 100㎡당 1개체에 불과했던 보름달물해파리가 지난달 말에는 10개체, 이번달 조사에선 20개체로 증가했다.

당시 조사에 나섰던 배재용 연구사는 “물때가 맞아서 간혹 경기도 바다로 밀려오는 보름달물해파리가 있긴 했지만, 이번 조사에선 꽤 많은 수가 떠다니는 것을 확인, 특이사항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경기도해양수산연구소의 보고를 받은 국립수산과학원(이하 국수원) 기후변화연구과 역시 경기 바다에 북상한 해파리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위기 대응 매뉴얼에 따라 해파리가 100㎡당 5개체 이상 발견되는 등의 어업피해가 우려될 때 해파리 주의 특보를 발령을 해양수산부에 건의한다.

김경연 국수원 해파리 모니터링 연구사는 아직까지 경기 바다의 보름달물해파리의 경우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정도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안심하고 있을 순 없다. 왜냐면 보름달물해파리는 8~28℃의 표층 수온에서 서식하는 개체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선 표층 수온이 30℃가 넘어가거나 영하 2℃가 기록되는 바다에서도 살아있는 것이 관측돼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점차 따뜻해지는 경기도 바다가 보름달물해파리에게 적정한 수온 조건을 마련해주는 건 대발생을 우려할 만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경기 바다 수온은 이미 ‘고수온 예비주의보’ 수준까지 도달했다. 지난달 8일, 22.1℃를 기록한 평균수온은 같은달 24일에 23.7℃를 보였고, 이달 6일엔 26.1℃까지 기록했다. 이는 국수원의 고수온 예비주의보(25~27℃) 기준에 도달한 수치다. 수온 상승은 이미 꾸준히 진행됐다. 서해의 연평균 수온 기록을 살펴보면 평균 온도가 점진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1970년 13.8℃를 기록하던 수온은 1990년 14.6℃로 올랐고, 2010년 15.5℃에 이어 2023년엔 16.5℃를 기록했다.

한인성 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사는 올해 경기도 바다가 유독 더운 원인으로 ‘기후변화로 길어지는 폭염 일수’를 꼽았다. 한 연구사는 “예년과 달리 올해 8월은 2~3℃ 정도 평균 수온이 더 높아졌다”며 “7월 중하순부터 시작된 폭염이 바닷물을 가열된 상태에서 이후 태풍의 영향력 등 수온을 낮출 외력들까지 약해지며 이례적으로 높은 수온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름철 기단에 따라 연평균 수온이 달라지지만 점진적으로 수온이 올라가고 있는 상황은 맞다”며 “높아진 수온에 따라 해양생물의 서식지 환경 등이 달라져 어떤 양상으로 변화가 일어날 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사람이 점차 살기 힘들어지는 바다는 해파리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보름달물해파리는 먹이 조건과 수온 조건 등이 맞을 때 대량 증식한다. 보름달물해파리의 생애주기를 살펴보면 유성생식을 통해 알에서 어린 개체로 자란 해파리는 20개 정도의 딱딱한 부착유생 형태인 ‘폴립’으로 성장한다. 국수원에 따르면 수온이 높아질수록 이러한 폴립은 무성생식을 통해 1개당 250마리의 해파리로 증식할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올해 여름 경기 바다에서 해파리 1마리가 보였다면 가을 산란기를 지나 내년 봄엔 최대 5천 마리까지 해파리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동남아 사람이 느끼는 ‘동남아보다 더운 한국’

 

동남아에 살던 사람도 ‘한국 더위’ 백기들 정도

7월 평균 상대습도는 2021년부터 꾸준히 상승

해수면 온도 상승·긴 장마·기록적 폭우의 영향

뜨거운 지구,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 아니다

경기도 생태계만 이상한 것이 아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더위는 지금 바로 이순간, 일상에서 우리의 목을 죄어오고 있다. 경기도는 지난달 24일 31개 시군 전역에 폭염특보가 발령된 이래로 한 달이 넘게 해제되지 않고 있다. 일 최고 기온이 33℃가 넘는 날을 기준으로 집계되는 폭염일수는 23일 기준 ‘17.3일’로 지난해 14.2일의 기록을 넘어섰다.

17일이 넘어가는 폭염일수는 최근 5개년 중에도 최장기간이며 이례적으로 긴 폭염 탓에 재난안전법까지 개정됐던 2018년의 폭염일수(31일) 기록에 도전(?) 중이다.

온열질환자의 수도 폭염일수와 비례해 급증한다. 22일 기준 경기도 누적 온열질환자 수는 652명으로, 지난 1년간의 경기도 전체 온열질환자 수 683명에 근접했고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이달 들어선 18일 동안 최소 13명 이상의 두 자릿수대 온열질환자가 줄곧 발생했다.

그런데 폭염 속 온열환자는 단순히 기온이 ‘높아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상기후로 인한 ‘습도’의 습격이다.

평택에 살고 있는 캄보디아 출신의 원석유씨는 올 여름 평택날씨를 이렇게 말했다. “동남아는 덥지만 습도가 낮고 바람도 좀 선선하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정말 그냥 덥기만 해서 힘들어요.”

동남아 사람인 원씨는 습도를 꼬집었다. “(제가 느낄 때) 2년 전부터 여름철 습도가 더 높아진 것 같아요. 전 더위를 타지 않는 편인데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2~3년전쯤 에어컨을 구매했어요.”

지구에서 대표 더운 지역인 동남아에 살던 사람도 ‘한국 더위’에 백기를 들었다. 그가 유독 견디기 힘든 건 ‘습도’다. 그의 말이 맞다. 실제로 지금 우리가 겪는 폭염이 힘든 건, 습도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체감 온도가 올라간 것으로 분석된다.

습도는 공기 중 수증기 양을 뜻하는 절대습도와 온도라는 변수를 고려한 상대습도로 나뉜다. 이중 체감 온도에 영향을 주는 상대습도는 특정 온도에서 공기가 최대로 함유할 수 있는 수증기 양에 대한 실제 공기 속 수증기 양을 뜻한다. 상대습도가 50% 이상일 때를 기준으로 10%p씩 오를 때마다 체감온도는 1도 가량 높아진다.

기상청에 따르면 경기도의 상대습도는 최근 가파르게 상승했다. 경기도에 관측소가 있는 5개 지역(동두천, 수원, 양평, 이천, 파주)의 7월 평균 상대습도를 살펴보면, 지난 2021년부터 올해까지 81.4→83.4→86.4→87을 기록했다.

하경자 부산대학교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사람은 땀을 흘려서 체온을 낮추는데 날씨가 습하면 결과적으로 사람이 배출한 땀이 공기 중에서 증발하기가 어렵다”면서 “기온에 습도까지 높아지면 생물이 생활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습도를 주요한 기후인자로 인식하고 예측해야하는 이유”라고 경고했다.

상대습도가 높아진 주된 이유는 ‘이상기후’에 있다.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대기 중 유입되는 수증기량이 늘면 비와 눈이 더 많이 내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해수면 온도가 상승한 점, 예년보다 장마가 길어지고 기록적인 폭우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 등이 상대습도를 높이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지구가 뜨거워지는 일이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다. 경기도는 더이상 이상기후를 피해갈 수 없다. 심지어 기후가 변하는 속도마저 빨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동네, 경기도는 앞으로 어떻게 더 ‘더워질까’.

김지원·이시은·공지영기자 zon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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