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이슈&이슈] 최적지 공방에 옥신각신…'우주청' 설립 해답은

  • 등록 2022.03.07 23: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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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경남 유치전 가열…과학기술계 "선심성 공약 우려"
항우연 등 전임 출연연 원장들 "R&D 인프라 집적된 대전이 최적"
'한국판 NASA' 첫 단추 잘 꿰야…"정책 연속성·전문성 확보 원칙"

 

 

민간이 우주개발을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가 열린 데 이어 지난해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1차 발사되면서 우리나라에도 미국 나사와 같은 '우주청(가칭)' 신설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있다. 특히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들마다 '항공우주청' 또는 '우주전략본부' 등의 우주 거버넌스 설립을 공약하면서 국민적 관심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대전-경남' 등 설립지를 둘러싼 지역갈등과 함께 세부 내용이 불분명해 으레 '선심성 공약'으로 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국가 우주전략에 관심이 큰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은 우주청이 본연의 제기능을 할 수 있도록 최적의 입지 선정은 물론 충분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설립지 경쟁 가열…알맹이는 없고 포퓰리즘만=우주청 설립지 경쟁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먼저 경남 설립 입장을 발표하면서 발단이 됐다. 윤 후보는 지난 1월 14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경남선대위 발대식에 참석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있는 경남에 항공우주청 설립, 항공우주산업 클러스터 조성, 항공우주 제조혁신타운 조성 등을 약속했다. 곧바로 대전시는 '우주청 최적지론'을 내세우며 윤 후보의 공약 취소를 촉구했다. 대전지역 과학기술 관련 단체, 전문가들은 일제히 "국가적 명운이 걸린 사안인데 특정 대선 후보가 경남에 우주청을 설치하겠다며 준비되지 않은 선심성 공약을 던지는 우를 범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당시 대선 주자였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관련 인프라가 집중된 대전이 최적의 입지"라며 대전의 손을 들어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입지에 대한 입장을 유보하다 "청(廳) 단위 행정기관은 대전에 집결하는 기본 원칙을 지키겠다"고 공언하면서 논란을 매듭지었다.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이 꼽은 최적지는=일단 과기계 인사들은 경남보단 연구개발(R&D) 인프라가 집적된 대전이 우주정책 수립의 최적지라고 꼽고 있다. 국가 우주정책 수립과 우주산업 육성 등과 관련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가 인근에 있고,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우주항공 연구와 관련된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한국천문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기계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한국에너지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ADD),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이 집적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명수 대전시 과학부시장은 "우주청은 단순히 발사체를 쏘아 올리는 것에 그 역할을 국한할 수 없으며 국가정책적, 산업적, 안보적, 그리고 행정적 차원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후 최적지를 선정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정부가 중소벤처기업부를 세종으로 이전하면서 '부'단위 중앙행정기관은 세종, '청'단위 중앙행정기관은 대전으로의 집적을 천명한 만큼, 당연히 우주청도 정부정책 기조에 따라 대전에 두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주요 정부출연연구기관 전임 원장들도 대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주진·임철호 전 항우연 원장 등은 "대전은 우주항공 개발의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는 지역"이라며 "우주청은 우주항공 기술·전략 연구 기관들이 집결된 대전에 설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동만 전 ADD 소장도 "대전은 우주항공 관련 정책, 기술, 인재, 인프라가 집적돼 있고 드론, 무인기, 소프트웨어 등 대전의 3군 사령부와 군 정보기구가 연결된 국방정보 관련 신산업도 성장 중"이라고 당위성을 설명했다.

 

R&D 역량을 넘어 우주산업 전략지로도 대전이 우수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9년 12월 30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발표한 '뉴스페이스시대, 국내우주산업 현황 진단과 정책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우주산업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대전, 부산·경남지역에 집중되며, 특히 제조업의 경우 대전지역이 가장 밀집돼 있다. 기업의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이지만, 최대 밀집지역은 대전시로 수십 개의 기업이 유성구와 대덕구 일대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우주벤처 창업·기업성장 지원측면에서는 기업이 현재 밀집된 지역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서울, 판교, 대전 등은 산업단지 내 지식산업센터 형태로 타 지역에 비해 임대료가 저렴하며, 교통과 주변 인프라가 양호해 벤처기업이 입주하기에 적합한 입지요건"이라고 평했다.

 

국가균형발전 취지에 따라 서울, 판교 등에 청 단위 기관을 설립하기 어려운 만큼 관련 인프라가 집중된 대전이 더 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준석 대전세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가균형발전 측면에서 수도권에 우주청이 설립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전은 우주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고 관련 기업이 많이 포진돼 있어 입지적 우위가 있다"고 말했다.

 

◇우주청·항공우주청·우주전략본부…명칭 두고 설왕설래도=신설될 우주전담조직을 두고 당초 한국판 NASA(미국 항공우주국)인 '항공우주청'에 이어, 항공보다 우주를 더 강조한 '우주청', '우주항공청', 그리고 이재명 후보가 공약한 '우주전략본부' 등 다양한 명칭이 혼재돼 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우주 쪽에 방점을 찍은 '우주청'이 더 적합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항공계에서는 항공은 국토교통부 소관이고 우주는 과기정통부 소관인 만큼 각 항공청과 우주청이 각각 독립된 형태로 설립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고영주 대전과학산업진흥원(DISTEP) 원장은 "우주청은 정부부처 하에 있는 청(廳) 조직이 아닌 미국 NASA 같은 조직으로 운영될 것이기에, 기존 개념대로 볼 땐 맞는 표현이라 볼 수 없다"며 "우주전략본부도 국민들이 바라보기에는 청보다 작은 전략부서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우주청이든 우주전략본부든 선심성 지역 공약으로 확정하기 보다는 NASA 같은 조직을 만들기 위해 충분한 연구와 논의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책 연속성·전문성 확보 원칙돼야…전문가 머리 맞댄다=우리나라는 현재 우주항공개발과 관련한 정책을 과기정통부 거대공공연구정책과, 우주기술과 등 2개 과에서만 전담하고 있다. 이마저도 순환보직이라 전문성과 연속성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크다. 이에 과기계에서는 우주 정책 수립에 전문가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하며, 특히 정치적으로 정책이 급변하지 않도록 의사결정체계의 역할과 책임이 분명히 명시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전문성 있는 우주조직 신설은 물론 국가 백년대계를 이끌 우주산업 육성을 위해 각종 R&D 인프라가 집적된 대전에서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대전과학산업진흥원(DISTEP)과 대전테크노파크 등을 중심으로 산·학·연 등 모든 유관기관·단체가 손을 잡아 내실 있는 우주거버넌스 전략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고영주 DISTEP 원장은 "우주산업 육성을 위해 이르면 이달이나 내달부터 포럼을 시작할 계획"이라며 "정부출연연구기관과 학계 등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 한국판 NASA를 만들기 위한 전략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jis@daejonilbo.com  정인선기자

정인선기자 jis@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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