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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오석기가 만난 사람]“복사본만 있는 박물관 영혼 없어…제자리 돌려주는 게 문화분권”

'오대산 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궤' 환수 앞장선 월정사 퇴우 정념스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지닌 '환지본처(還至本處)'. 약탈문화재를 되찾기 위해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이어 가는 이들 가슴 한편에 숙명처럼 새겨지는 글귀다. 아이러니하게도 해외에서 문화재를 돌려받고도 원래 있던 자리에는 가져올 수 없는 안타까움과 절박함이 스며든 단어이기도 하다. 최근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가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과 의궤를 '환지본처'하기 위한 '범도민 환수 추진위원회' 출범을 공식화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동안 월정사의 화두는 변함없이 '문화재 제자리 찾기'였지만 이번에는 '선언'의 단계를 넘어선 듯 '결기'가 느껴졌다. 월정사 퇴우 정념 스님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들었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 범도민운동 11년, 최신 설비 박물관 결실
평창올림픽 때 세계에 알릴 좋은 기회였는데 부족했다는 생각

민간의 노력 끝에 도둑질당한 문화재 돌려받았는데 '기증' 형식
우리가 볼 땐 '반환'이 맞는데 명확한 입장 못 밝힌 정부 아쉬워


월정사는 2010년 서울과 평창, 춘천을 오가며 대대적인 문화재 제자리 찾기 범도민 운동을 펼쳤다. 그 이후로도 매년 '문화재 제자리 찾기'는 월정사의 중요한 '어젠다(Agenda)'로 다뤄졌다. 범도민운동 11년, 문화재제자리 찾기와 관련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다.

“다양한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전개해 오면서 우리가 성취한 하나의 결실은 문화재를 보관할 수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재작년(2019년)에 월정사 인근에 '왕조실록·의궤 박물관'의 문을 연 것이 대표적인 성과라고 하겠습니다. (돌아온 문화재를) 제대로 보존할 수 있는 장소까지는 모두의 노력으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제 지속적으로 영혼을 담아내는 작업을 해야겠죠.”

퇴우 정념 스님은 1시간 남짓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영혼'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많이 사용했다. 거기에는 정부가 그동안 문화재를 돌려보낼 수 없다는 논리로 장소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도 정작 최신 설비의 보관장소가 만들어지니 원본이 아닌 복사본(영인본)만을 보내는 행태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복사본만 있는 박물관은 영혼이 없는 빈껍데기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수장고도 그렇고 항온·항습 설비도 그렇고 (박물관이) 최신 설비로 아주 잘 지어졌거든요. 적어도 원본만 돌아오게 되면 영혼이 담기면서 그 의미를 높일 수 있는 그런 박물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범도민적인 염원으로 박물관이 지어졌기 때문에 (본지환처를 염원하는) 우리의 요구가 충분히 잘 반영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념스님이 갖고 있는 안타까움 속에는 오대산사고본 실록과 의궤의 반환을 위해 월정사를 중심으로 한 민간 차원에서 환수운동을 주도한 내막을 알고 있는 정부의 태도에 대한 아쉬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에는)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인해 문화재 반환 청구권을 상실한 정부를 대신해서 민간환수운동을 통해 제자리 찾기 운동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화재들은 '기증'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습니다만 우리가 볼 때는 우리 물건의 '반환'인 것이죠. 정부도 그것에 대한 명확한 입장은 가져주지 못했거든요.”

민간의 끈질긴 환수 노력 끝에 오대산사고본 실록과 의궤가 돌아오기 직전 도쿄대와 일본 정부는 해당 문화재를 서울대와 우리 정부에 '기증'이라는 이름으로 되돌려보내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도둑질당한 우리 문화재를 돌려받으면서 '반환'이라는 단어조차 쓰지 못한 우리 정부의 조치에 대해 스님은 못내 아쉬움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런 역사적인 우여곡절과 사연이 있는 문화재는 (정부가 나서) 연고에 따라 돌려줄 수 있는 이런 입장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화분권이라는 차원에서도 지방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지역의 문화재들을 충분하게 더 많은 활용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그런 배려를 해주기를 바라는 겁니다.”

특히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월정사를 찾는 세계 각국의 방문객들에게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등을 활용해 강원도의 문화를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당시는 여러 곡절을 겪으면서 아쉽게도 박물관을 완성하지 못한 거죠. 우리의 전통, 역사의식이나 문화적 내용들을 세계인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그런 기회를 만드는 것이) 조금은 부족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실제 사고는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힘든 곳에 있었으니 특별히 (콘텐츠화해 알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정념 스님의 이러한 발언에는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조하면서도 여전히 중앙 집중적인 우리의 문화정책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다. 대영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 등 약탈문화재의 창고라고 불리는 대형 박물관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이 보이는 행태와 정부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동의한다고 밝혔다.

“지역의 문화를 더 육성하고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지역 고유의 역사성 속에서 내려오던 문화는 충분히 존중돼야 합니다. 지역의 문화재가 제자리로 돌아오면 그것을 관광자원화하고 이를 통해 지역문화를 활성화시키는 모멘텀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형식이 됐건, 어떤 방법이 됐건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과 의궤의 제자리 찾기와 관련된 진지한 논의들은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그동안 문화재 제자리 찾기와 관련된 활동들은 다소 조용하게 진행된 것이 사실이다. 이번처럼 대외적으로 드라이브를 거는 모습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박물관이 완성된 지 벌써 3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박물관의 문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대외적으로 문화재제자리 찾기와 관련해 목소리를 높이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두고 우리의 의견들을 모아 가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 활동들은) 우리 스스로의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념 스님에게는 조선시대 왕실이 오대산에 사고를 짓고 월정사를 수호사찰로, 주지를 수호총섭이라는 직위와 함께 관리책임을 내린 것에 대한 막중한 사명감이 있다고도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빠른 시일 안에 오대산사고본 실록과 의궤가 실제로 돌아올 수 있을지, 그것이 가능할지에 대해 물었다.

“저는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북관대첩비를 북한으로 돌려보냈고, 원소장처인 원주로 봉안이 결정된 국보 제101호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의 예들이 있습니다. 정부가 나서 환지본처 시켜주는 이런 정책들이 실제 이뤄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대산사고본 실록과 의궤의 경우도 당연히 돌아올 수 있다는 자신감, 확신이 있습니다.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해 나가겠습니다.”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