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록체인 산업 생태계가 뿌리내리려면 부산이 혁신을 수용할 수 있는 특구다운 특구로 거듭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산업의 집적화, 블록체인 특화 금융, 전담 지원 기구 등이 이것을 가능케 하는 최소 요건이다. 이런 필수 요소가 제도적으로 정착되고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특구에 걸맞게 정부가 전향적 자세를 가지고 규제 완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관련 시설 집적해 클러스터 조성
자금 조달 위한 자산거래소 설립
사업 원스톱 진행 ‘특구청’ 필요
정부 규제 완화해야 제도 정착
부산 벤처컨벤션센터 설립 추진
투자 유치·시설 공유 역할 기대
■생태계 조성 위한 기본 ‘클러스터’
부산에 블록체인 특구다운 관련 산업 생태계를 만들려면 ‘클러스터’ 형성이 가장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안이라는 지적이 많다.
부산시도 이런 전략을 추진 중이다. 부산 남구 문현혁신지구 일원에 블록체인 산업 지원 인프라를 집적한다는 방침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2022년까지 벤처컨벤션센터같은 기업지원체계를 만들고 2023년까지 지역 주도의 혁신 클러스터 조성을 완료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정부와 여당도 프랑스의 초대형 스타트업 캠퍼스인 ‘스테이션 F’를 모델로 삼아 부산에 벤처컨벤션센터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지난해 약속했다. 금융기관, 기업, 대학연구소를 연결하는 벤처 생태계를 조성해 블록체인 스타트업의 창업부터 사업화까지 전 주기에 걸쳐 투자 유치와 시설 공유, 특화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게 핵심 역할이다. 이 사업에는 단계적으로 국비 210억 원 시비 90억 원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최초 예산인 블록체인 특화 벤처컨벤션센터 건축 사업 예산 24억 5000만 원 등 중점 사업 예산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부산블록체인산업협회 김태경 의장은 “초기 예산 확보조차 못한 것은 정부의 의지 부족이 원인이다”면서 “정부의 확고한 약속 이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산·기술거래소 등 특화 금융 필수
블록체인특구 부산에서 관련 기업 유치와 창업이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애를 먹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창업투자회사 149개 중 136개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있어도, 인지도가 떨어지는 지역 업체들은 좀처럼 투자자를 만나기 어렵다.
부산에서 블록체인 관련 기술을 개발 중이거나 창업한 업체들은 기술과 자금이 만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는 것을 일생의 소원처럼 생각하고 있다. A업체 대표는 “서울에 100개가 훨씬 넘는 가상자산거래소가 있는데 블록체인특구인 부산에 거래소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부산시도 지역 업계와 생각이 비슷하다. 기존 가상자산거래소의 부작용을 최대한 억제한 통합거래소 설립을 지원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가증권시장의 구조와 유사한 가상자산 통합거래소를 설립해, 상장 심사와 신뢰성 평가, 기업지원, 기술지원을 총괄하겠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 지원이 용이해진다면 창업과 기업 유치가 훨씬 용이해져 산업 생태계에 피가 돌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특구 내 가상자산 통합거래소 추진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정조정실도 블록체인 기술은 장려하되 가상화폐 거래는 금지시키겠다는 기조다.
업계 관계자는“문제를 우려해 규제를 먼저 할 것이 아니라 문제가 생기면 그때 규제하는 방식을 취해야 블록체인 같은 혁신 산업 생태계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제 일몰 책임질 ‘특구청’ 추진을
‘크립토밸리’라 불리는 스위스 주크는 시작 5년 만에 170여 개 암호화폐, 블록체인 기업이 파이프라인을 형성하며 ‘ICO(암호화폐 공개) 성지’로 성장했다.
스위스 주크가 이처럼 단기간에 세계적인 블록체인 산업 본거지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인은 특정 지역에 전폭적으로 규제를 완화해 마음껏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기 때문이다.
2년 전 부산은 블록체인 규제 자유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스위스 주크 정도의 규제 완화 특구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때마침 정부는 2019년 1월 신규 사업 허가가 필요한 경우 허가 기준 요건 등을 30일 내에 신속하게 확인해 주고, 해당 부처가 30일 동안 회신하지 않으면 제품을 시장에 출시할 수 있도록 한 ‘정보통신융합법’과 ‘산업융합촉진법’을 만들어 발효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특구 내 현실은 달랐다. 블록체인이라는 혁신적인 기술이 금융, 물류, 제조업, 유통, ICT, 게임 등 워낙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다 보니 관련 법령이 모호하거나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았다. 심지어 해당 사업 규제가 어느 부처 소관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B업체 관계자는 “개발 중인 기술의 사업화를 위해 이 부처에 문의하면 저 부처로 돌리고, 저 부처에 문의하면 이해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아 시간만 흘렀다”면서 “블록체인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각 부처에 혼재하거나 모호한 규정을 원스톱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소위 ‘블록체인 특구청’ 같은 전문 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도 “부산이 스위스 주크처럼 ‘한국의 크립토비치’로 성장하려면 규제를 없애고 세제를 지원할 새로운 전담 지원 관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진국 기자 gook7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