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김제 아리랑문학관과 아리랑문학마을로 향하며 아리랑을 불러본다. 아리랑 가락이 절로 흘러나온다. 아리랑을 부르고 나면 늘 그렇듯 가슴 속에 얹힌 무언가가 내려가는 느낌이다. 부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주는 노래가 아리랑이다.
아리랑에 대한 기억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특별한 행사 때 불렀거나, TV를 통해 방영되는 공연을 봤거나, 아니면 국제 행사에서 동포들이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리며 부르는 장면을 봤을 수도 있다.
경험과 인식에 따라 아리랑 의미와 느낌은 상이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아리랑이 우리 민족의 노래이자 ‘문화표상’이라는 사실이 그렇다.
아리랑이 정확하게 언제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다. 짐작하건대 오래 전부터 사람들 입을 거쳐 후대로 이어졌을 것이다. 구비문학의 특성상 다양한 버전이 생겨났으며, 민초들의 입을 통해 자연스레 전해졌을 거라는 얘기다. 특정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민초들의 핍진한 삶속에서 배태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광주에서 김제까지는 넉넉잡고 1시간여 거리. 보통의 속도로 내달려 지루할 느낌이 들 정도면 당도하는 거리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지방도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당도한다.
김제는 특별한 목적이 아니면 방문하기가 쉽지 않다. 그 때문인지 들를 때마다 매번 새로운 느낌과 마주한다. 1700여 년 전 백제 비류왕 330년에 만든 최초 수리시설 ‘벽골제’라는 문화자원이 환기되기 때문인지 모른다.
김제평야는 가을이면 황금물결로 장관을 이룬다. 하늘과 땅이 닿는 지평선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곳으로, 신성한 기운마저 감돈다.

먼저 당도한 곳은 아리랑문학마을.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모티브로 조성된 이곳은 구한말 우리 선조들의 핍진한 역사가 응집돼 있다. 한마디로 아리랑의 역사라 해도 무방하다. 눈물과 정한, 고난과 역경을 뚫고 일어서는 한민족의 역사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아리랑’(12권)은 조정래 작가가 지난 1990년 ‘한국일보’에 연재를 시작해 1995년 8월 해방 50주년을 맞아 완간한 대하소설이다. 2002년에는 프랑스 아르마땅 출판사에서 전 12권을 완역 출간했다. 유럽 지역에서 한국의 대하소설이 완간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아리랑 문학관은 지난 2003년 개관했다. 작가가 밝혔듯이 소설 배경으로 징게맹갱(김제만경)을 선택한 것은 ‘수탈당한 땅과 뿌리뽑힌 민초들’의 고난과 역경을 대변하는 소설의 중심축이기 때문이다.
아리랑문학마을은 문학관 개관 9년만인 2012년 문을 열었다. 2만9316㎡ 부지에 모두 19개 시설이 들어서 있다. 홍보관에는 일본이 왜 수탈 대상으로 김제를 선택했는지 보여주는 자료들이 비치돼 있다. 전체적인 건물 모형은 생명의 쌀이라는 상징성을 내포한다.

이밖에 근대수탈기관인 주재소, 면사무소, 우체국, 정미소 등이 재현돼 있으며 소설 공간인 내촌, 외미 마을 등이 스토리텔링형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감골댁, 송수익, 지삼출 가옥 등은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면 금방이라도 실제 인물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소설이 허구가 아닌 실재 이야기로 다가오는 것은 그만큼 배경과 재현물이 사실적이라는 방증이다.
가장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공간 가운데 하나가 하얼빈 역이다. 1910년대 실존건물을 토대로 재현한 이곳은 안중근 의사의 영혼이 숨 쉬는 역사적 공간이다. 1909년 하얼빈역에서 조선 통감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안 의사의 붉은 애국혼을 느낄 수 있다.
아리랑문학마을을 나와 아리랑문학관으로 향한다. 전자가 소설을 토대로 조성된 문학마을이라면 후자는 소설을 쓴 작가 조정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떻게 ‘아리랑’을 창작했는지 취재 과정을 비롯해 창작 관련 자료 등이 비치돼 있다.

문학관 1층에는 작가의 친필 원고가 압도하듯 쌓여 있다. 웬만한 성인의 키보다 높은 원고는 글을 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감내했던 작가의 의지를 보여준다. 살아 있는 생명으로 다가오는 ‘아리랑’의 실체다.
작가는 소설을 쓰기 위해 군산과 김제를 비롯해 지구를 세 바퀴 반이나 도는 취재여행을 감행했다. ‘발로 씌어졌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철저한 자료조사와 치열한 작가 정신이 빚은 수작이다.
깨알 같은 글씨들로 빽빽한 취재 수첩, 현지 이미지를 기억하기 위해 그린 세밀화, 현장을 찍었던 카메라, 작가가 사용했던 만년필 등 다양한 소품은 치열한 작가정신을 느끼게 한다. 작가 조정래는 우연히 탄생한 게 아니라, 피나는 집념과 노력의 결집체다.
“‘아리랑’이 노동요에 망향가, 애정가이자 만가(輓歌), 투쟁가로 민족의 노래가 되었던 것처럼 소설 속 징게맹갱(김제만경)은 강탈당하는 조선의 얼과 몸의 또 다른 이름이자 끝까지 민족 독립을 위해 싸워나갔던 무수한 민초들의 삶을 배태(胚胎) 한 땅이다.”
아리랑문학마을과 아리랑문학관은 지평선 축제를 즈음해 많은 이들이 방문한다. 역사와 문학의 현장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다. 문학이 삶과 유리된 예술이 아니라 현장에서 목도하고 체화할 수 있는 장르라는 점을 보여준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