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이 수도권, 영남권 등 타 지역보다 발전이 더딘 것은 미흡한 SOC(사회간접자본, Social Overhead Capital) 때문이다. 정부가 대규모 국가 재정을 꾸준히 투입해 도로, 철도, 공항 등이 제대로 구축되고 그 편의성이 타 지역보다 우수해야 지역 경제가 성장하기 때문이다. 민선 7기 전남도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최근 지역 숙원이었던 다양한 SOC가 착공하거나 국가계획에 반영됐다. 광주일보는 전남의 주요 기반시설을 점검한다. 주말이면 여수 낭도 입구는 대형 버스와 자가용으로 붐빈다. 섬의 좁은 산책길은 바다와 주변 섬을 구경하는 외지인들로 가득하고, 젖샘(아이 젖이 안 나오는 산모가 이 샘에서 가슴을 씻었더니 젖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해서 붙여진 낭도의 샘물) 막걸리를 파는 식당에는 줄을 서서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다. 3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둔병도는 어촌뉴딜 300 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관광객들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주민 모두가 65세 이상 고령자인 이 섬에서는 할머니들이 직접 커피를 내리고, 마을 앞 갯벌에서 나오는 바지락이나 굴을 소포장해 둔병도를 찾는 이들에게 직접 팔아 소득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방치된
광주·전남이 수도권, 영남권 등 타 지역보다 발전이 더딘 것은 미흡한 SOC(사회간접자본, Social Overhead Capital) 때문이다. 정부가 대규모 국가 재정을 꾸준히 투입해 도로, 철도, 공항 등이 제대로 구축되고 그 편의성이 타 지역보다 우수해야 지역 경제가 성장하기 때문이다. 민선 7기 전남도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최근 지역 숙원이었던 다양한 SOC가 착공하거나 국가계획에 반영됐다. 광주일보는 전남에 들어섰거나 착공한 주요 기반시설과 반드시 필요한 기반시설들을 점검한다. 해안을 수놓은 섬들은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경쟁력 있는 관광자원이다. 다만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전남도가 도내 서남해안의 유인도 272곳(무인도 포함 2,165곳) 가운데 인구밀도가 높고, 다양한 관광자원과 특산물을 가진 섬들을 연륙·연도하려는 이유다. 섬과 내륙, 섬과 섬의 연계는 자연스럽게 방문객의 이동을 촉진하면서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천혜의 자연자원과 관광 인프라가 결합하면서 지역민의 소득 증대와 지역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하지만 연륙·연도교에 투입되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전남도나 시·군이 온전히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전남도는 이에
광주·전남이 수도권, 영남권 등 타 지역보다 발전이 더딘 것은 미흡한 SOC(사회간접자본, Social Overhead Capital) 때문이다. 정부가 대규모 국가 재정을 꾸준히 투입해 도로, 철도, 공항 등이 제대로 구축되고 그 편의성이 타 지역보다 우수해야 지역 경제가 성장하기 때문이다. 민선 7기 전남도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최근 지역 숙원이었던 다양한 SOC가 착공하거나 국가계획에 반영됐다. 광주일보는 전남에 들어섰거나 착공한 주요 기반시설과 반드시 필요한 기반시설들을 점검한다. 호남의 중심도시 광주에서 전남의 22개 시·군을 신속하게 이동하게 하는 도로·철도망의 구축은 유동인구·물류의 이동을 촉진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 경제 성장에 기여하게 된다. 부산, 울산, 경남이 부·울·경 메가시티, 서울, 경기, 인천 등이 수도권 광역철도·도로망 구축 등을 추진하는 이유 역시 중심도시와 주변 지역의 신속한 소통을 위해서다. 광주~완도 간 고속국도 사업은 2시간 이상 소요되는 광주와 전남 최남단 가운데 한 곳인 완도 사이에 총 연장 88.61㎞의 4차선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약 3조3000억 원이 소요되는 대규모 국책 사업이다. 광주 서구 벽진
차를 타고 무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드넓은 붉은빛 황토밭이다. 농작물을 키우는 땅의 힘, 지력(地力)이 뛰어나기로 정평이 나있는 황토밭에서는 양파, 마늘, 대파 등 각종 채소류가 쉼없이 재배되고 있다. 게다가 무안은 해안선을 끼고 있어 겨울철이 온난해 생육 여건까지 뛰어나다. 이런 여건 때문에 무안 ‘황토양파’는 양파 고유성분의 농도가 다른 지역의 것보다 훨씬 진하다고 알려져 있다. 동그랗게 모양이 만들어져 커가는 시기에는 서늘해 충분히 땅의 기운을 받으면서 황토의 여러 성분까지 양파에 고스란히 스며들고 있다. 무안군이 자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무안 황토에는 항암, 진통, 면역기능 증진, 노화방지와 해독작용, 혈액정화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게르마늄 성분이 평균 1.43㎎/㎏으로 일반 토양의 0.96~0.30㎎/㎏보다 다량 함유돼 있다. 항산화 작용으로 각종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좋은 이유다. 다만 무안 양파는 재배 면적과 생산량이 매년 감소하면서 갈수록 귀한 존재가 되고 있는 점이 아쉽다. 2022년 무안 양파 재배면적은 2037ha로 전남의 38.8%(5249ha), 전국의 11.5%(1만7672ha)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6년 전
한말 의병은 임진왜란 의병, 병자호란 의병보다 외로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가 한반도 침략의 야욕을 보인 19세기 말부터 1910년 8월 경술국치까지 일본군의 치밀한 추적과 현대식 무기를 동원한 대규모 공격, 조정의 외면 또는 비협조 속에 재래식 무기를 들고 소수의 병력으로 맞서 오로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광주일보 의병열전(1975.12.1~1977.7.21)에서 다룬 한말 남도 의병장은 기우만, 기삼연, 고광순, 심수택(심남일), 임병찬, 전수용, 이기손, 박영근, 신덕균, 김준, 양진여·양상기 부자, 안규홍, 오성술, 기산도, 황병학, 이대극 등 17명이다. 참봉 오성술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1884년(고종 21년) 5월 15일 광산군 삼도면 송산리 죽산마을에서 오영선과 나주 임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죽파로, 22세에 조정에서 충의 참봉을 제수받아 오참봉이라고 불렸다. 오영선은 지방 부호로 집안이 넉넉해 머슴에게도 후한 품삯을 주고, 가난한 이를 돕는 등 선행을 실천했다. 아이를 얻기 위해 임씨 부인은 잉어를 잡아 먹으려했지만, 주변에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친정 아버지의 당부를 듣고 그 잉어를 황룡강에 놓아줬다. 그 이후로도 잉어
한말 의병은 임진왜란 의병, 병자호란 의병보다 외로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가 한반도 침략의 야욕을 보인 19세기 말부터 1910년 8월 경술국치까지 일본군의 치밀한 추적과 현대식 무기를 동원한 대규모 공격, 조정의 외면 또는 비협조 속에 재래식 무기를 들고 소수의 병력으로 맞서 오로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광주일보 의병열전(1975.12.1~1977.7.21)에서 다룬 한말 남도 의병장은 기우만, 기삼연, 고광순, 심수택(심남일), 임병찬, 전수용, 이기손, 박영근, 신덕균, 김준, 양진여·양상기 부자, 안규홍, 오성술, 기산도, 황병학, 이대극 등 17명이다. 초야에 묻혀 일자무식의 머슴으로 살던 백성으로 능히 의리를 떨치고 용기를 내 호국의 별이 된 이가 안담살이 안규홍이다. 보성, 순천, 고흥, 화순에서 활동했는데, 신화처럼 그 일화와 무용담이 전해지면서 일본 본토 육군성의 조선 반도 지도에는 전남이 붉게 표시돼 그 위에 ‘안’이라는 글자가 수십 개나 기록돼 있었다. 그만큼 안규홍의 활약은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는 의미다. 가난으로 인해 머슴살이로 편모를 공양했던 안규홍은 1879년(고종 16년) 4월 10일 보성 택촌(보성군 보
“만고의 충의는 성재 기삼연이라면 일세의 영걸은 태원 김준이니 조경환과 김준 두 장수 죽어가는 날 천지의 큰 공은 해산 전수용일세.” 1909년 대한매일신보 호남지방편에 게재된 의병에 관한 기사다. 전수용의 본명은 전기홍으로, 호는 해산이다. 1878년(고종 16년) 10월 18일 임실군 둔남면 국평리에 사는 전병국씨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서울에 살다가 임실로 낙향한 전병국과 부인 경주 김씨는 5년이 지나도록 아기를 못 가졌는데, 어느날 백발노인이 쇠북을 치며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수용을 잉태했다. 당대 석학 이한룡에게 글을 배우고 글방친구인 이석용과 의기투합해 나라 걱정을 함께 했다. 기개 있는 청년으로 당대 유명 학자들을 찾아가는 유람에 나서 장성의 송사 기우만, 성재 기삼연, 태인의 면암 최익현을 찾아 경세와 구국의 방안을 들었다. 수용은 장성 수연산 석수암의 기삼연을 찾아가 호남창의소 종사에 임명된 후 임실로 돌아와 동지들을 규합했다. 1907년 겨울 200여 명을 모아 마이산 용바위에서 거병한 그는 임실 일본헌병대를 기습했다가 오히려 역습을 당해 3명의 동지가 희생된 채 후퇴했다. 의병들이 하나둘 흩어지자 진안으로 돌아온 수용은 기삼연
“영특하고 호기롭게 뛰어났건만, 하늘을 만나지 못해 어쩌다 오늘날 이 먼 바다 건너왔는가. 다행히 선생 모셔 이 길을 함께 하니, 천년에 꽃다운 이름 청사에 빛나리.” 을사조약 후 전북 태인에서 면암 최익현과 함께 거병해 싸우다 대마도까지 붙잡혀 간 임병찬에 대해 동지 고석진이 지은 시다. 병찬은 1851년(철종 2년) 2월 5일 전북 옥구군 사면 상평리 남산 아래서 아버지 임용래와 어머니 왕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임용래는 42세에 얻은 병찬을 애지중지해 세살부터 인근 서당에 보내 글을 익히게 했는데, 곧 천자문을 외우고 11세에 논어를, 13세에 시경을 배웠다. 15세에 임천 조씨 집안 규수와 혼인했으나 곧 사망하자 여산 송씨와 재혼, 6년만인 21세에 맏아들 응철을 얻었다. 17세 때부터 옥구 형방에 나가 일하며, 예방과 공방을 거쳐 옥구 호장을 지내는 등 지방 관아에서 일했다. 30세에 둘째 아들 능철을 낳고 32세에 옥구에서 태인군 산내면 영동으로 이사했다. 38세에 무과전시에 급제했고, 그해 호남지방에 큰 흉년이 들자 돈 3,000냥과 벼 70석을 헌납했다. 그 공로가 인정되고 관민의 신임도 깊어 39세에 낙안(현재의 순천시 낙안면)군수에
한말 의병은 임진왜란 의병, 병자호란 의병보다 외로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가 한반도 침략의 야욕을 보인 19세기 말부터 1910년 8월 경술국치까지 일본군의 치밀한 추적과 현대식 무기를 동원한 대규모 공격, 조정의 외면 또는 비협조 속에 재래식 무기를 들고 소수의 병력으로 맞서 오로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광주일보 의병열전(1975.12.1~1977.7.21)에서 다룬 한말 남도 의병장은 기우만, 기삼연, 고광순, 심수택(심남일), 임병찬, 전수용, 이기손, 박영근, 신덕균, 김준, 양진여·양상기 부자, 안규홍, 오성술, 기산도, 황병학, 이대극 등 17명이다. 고종으로부터 총리호남의병대장이라는 칭호를 받은 고광순은 1848년(헌종 14년) 음력 2월 7일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에서 13개월 만에 출생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의 이름은 고정상, 어머니의 성은 김씨다. 8세에 아저씨 고경주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임란 의병장 고경명 아들 의열공 학봉 고인후의 봉사손(조상의 제사를 맡아 지내는 자손)이 됐다. 자는 서백, 호는 녹천을 썼고, 글은 외조부인 김경찬에게 배웠다. 15세에 상월정이라는 정자에 올라 10년 동안 문을 닫고 학문에 매진할만큼 고
역사문화의 산실이자 의로운 고장 전남 곳곳에 자리한 서원, 사원 등이 지자체의 무관심 속에 방치·훼손되고 있다. 한 번 사라지면 다시는 복원하기 어려운 소중한 유산임에도 불구하고, 재정 투입의 우선순위에서 번번이 밀려 다시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해당 지자체들이 대규모 예산을 들여 건물 짓는데만 혈안이 돼 있고 관리·운영에는 무관심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여기에 외곽 면지역 거주주민이 급감하고, 후손 발길마저 사라지면서 잡초로 우거지고 있는 것이다. 후손들에게 과거 역사적인 가치마저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민낯이라는 지적과 함께 이들 역사문화유산을 젊은 세대들이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 가미, 공간 재구성, 관리·운영 시스템 마련 등이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1659년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사암 박순(1523~1589)의 학덕을 흠모하는 사림들이 상소를 올려 창건된 월정서원은 1669년 사액이 내려졌다. 1787년 중수했고, 1789년 김계휘, 심의겸, 정철, 홍천경 등이 추가로 배향됐다. 1868년 서원훼철령으로 인해 철폐되고 1974년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 광곡마을에 복원됐으나 50년 가까운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