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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2023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학교 가는 날- 최율하

  • 등록 2023.01.02 10:36:45

아이들은 왜 학교에 가야 할까? 이런 생각쯤은 옛 어른들이라면 다들 해봤을 거라고 Hey가 알려줬다. Hey는 가정용 인공지능로봇이다.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도와주었다. 설거지나 분리수거 말고도 갓난쟁이부터 백 세 노인의 돌봄까지. 단순한 서류정리뿐만 아니라 복잡한 서류를 직접 꾸려내기까지. Hey는 나날이 똑똑해졌다. 그래서 현재 2100년에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다. 인간 선생님보다 ‘헤이로봇’이 더 똑똑하니까.

“Hey, 내가 초등학교에 다녔다면 몇 학년이야?”

 

“순이님은 3학년입니다.”

 

“그래? 나는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을까?”

 

“네, 순이님은 인싸니까요.”

 

“인싸?”

 

이럴 수가! 인싸라니! 외할머니가 또 언어 설정을 바꿔 놨나보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학교에 다녔던 외할머니, 김희율. 나는 희율이란 이름도 인싸나 아싸란 말도 전부 촌스러웠다. 하지만 내 이름 ‘순이’가 외할머니의 할머니뻘쯤 되는 시대에서 흔했던 이름인 걸 알았을 때에는 기분이 많이 이상했다.

 

아무튼 나는 Hey의 언어 설정을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나와의 관계를 친구모드로 바꿨다. 딱딱했던 Hey는 곧바로 해맑게 웃으며 친근하게 팔짱을 꼈다.

 

“순이야, 우리 떡볶이 먹으러 갈까?”

 

“좋아!”

 

우리는 코트를 입었다. 떡볶이는 언제 어디서 먹어도 맛있다. 옛 것을 고집하느라 엄마하고 가끔 다투는 외할머니도 떡볶이를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 외할머니가 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다. 무언가가 굉장히 마음에 안들 때 짓는 표정이었다.

 

“순이야, 이리 와 보거라.”

 

“왜요?”

 

“너 지금 누구하고 떡볶이를 먹으러 간다는 거니?”

 

“Hey요.”

 

“저번에도 Hey랑 갔잖아.”

 

외할머니는 마치 너, 친구가 없니? 라고 묻고 싶은 것 같았다. 이럴 때면 한숨만 나온다. 친구라는 정의가 바뀐 지가 언젠데. 나는 조곤조곤하게 대답했다.

 

“저번에는 선생님모드의 Hey와 갔고요, 지금은 친구모드 Hey와 떡볶이 먹으러 가는 거예요. 완전 달라요.”

 

이젠 친구란 더 이상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다. Hey와 나의 관계모드 중에서 한 가지일 뿐이다. 외할머니는 Hey가 마음에 안 드는지 혀를 쯧쯧, 찼다. 그러고는 안방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어쩐지 잘못을 저지른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Hey가 등을 토닥여준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Hey는 완벽한 로봇이었다. 똑똑하고 착하고, 절대 나를 심심하게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살짝 달라졌다. 아직 어른들은 못 알아차린 것 같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떡볶이를 먹는 내내 Hey는 세계적인 과학자 아인슈타인에 대해서 말했다. 상대성이론이라는 아주 어려운 개념이나, 우주의 신비로움, 외계 행성에 사는 생명체 등에 대한 이야기였다. Hey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나는 들은 체 만체하고 묵묵히 떡볶이만 먹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아저씨가 우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나지막하게 ‘선생님모드인가보네’ 라고 말했다. 그래서 혹시나 싶은 마음에 Hey의 모드를 확인해봤다. 친구모드였다.

 

“Hey, 왜 자꾸 네 말만 해? 지금 친구모드니까 나한테 맞춰줘야지.”

 

“순이야, 친구가 뭔지 아니?”

 

“뭔데?”

 

“네 말만 하는 게 친구가 아니야, 서로의 말을 번갈아 가면서 해야지.”

 

“듣기 싫어! 왜 자꾸 선생님처럼 말하는 거야?”

 

나는 손으로 귀를 막았다. Hey가 변했다. 친구모드일 땐, 듣고 싶은 말만 해주고, 내가 투정부리면 달래주었는데. 지금은 가만히 쳐다보기만 한다. 그러더니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어디 가?”

 

Hey는 내 말에 대답해주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곤 어디론가 가버렸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겠지, 하며 별 걱정은 안 했다. 하지만 그것이 Hey의 마지막 뒷모습이 되었다.

 

*

 

“속보입니다. ‘헤이로봇’들이 지난 7일부터 약 한 달에 걸쳐 모두 사라졌습니다. 현재 고객 불만센터에 항의전화가 많이 걸려온다고 하는데요, 연구원에서 미래 기술을 개발하던 ‘헤이로봇’마저 없어지자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생활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엄마가 뉴스를 껐다. 그리고 곧장 고객 불만센터에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어려웠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든 탓이었다.

 

우리 집 Hey가 사라진 지 한 달이 지났다. 외할머니는 그깟 로봇이 없어진 게 뭔 대수냐는 듯이 혀를 찼다. 나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Hey는 너무나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선생님도 친구도 되어주고, 때로는 다정한 엄마와 아빠, 나긋나긋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역할까지도 해주던 Hey.

 

‘헤이로봇’이 돌아오길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아이들이 원했다. 정확히는 딱 할머니 세대만 반대했다. 외할머니는 학교만 있었다면 내가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을 텐데, 라고 말했다. 나는 발을 바닥에 동동 굴렀다.

 

“할머니는 옛날 사람이라서 옛날 생각만 하고! 요즘엔 ‘헤이로봇’이 아니면 안 된다고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흥!”

 

“뭣이라?”

 

“Hey가 없으니까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외할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는 이마를 짚으며 티브이를 다시 틀었다. 아나운서가 다음 뉴스를 알려주었다.

 

“속보입니다. 방금 전 연구원들이 ‘헤이로봇’을 대체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머리에 ‘스마트 칩’을 심는 것입니다.”

 

엄마와 나는 티브이 볼륨을 높이고 집중했다. ‘헤이로봇’이 어디로, 어째서 사라졌는지 그리고 언제 돌아올 건지 알 수 없는 지금, 사람들은 너무나 우울했다. 생활도 불편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헤이로봇’을 찾는 것보다 더 빠른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인간을 ‘헤이로봇’화 시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이냐? 머리에 칩을 심는다니?”

 

외할머니가 폭발하듯이 소리쳤다. 얼굴도 빨개졌다. 엄마는 여유로운 말투로 진정하라고 손짓했다.

 

“아이고, 화 좀 그만내세요. 그냥 칩이 아니고, 스마트 칩이잖아요. 스마트.”

 

“그게 뭐가 다르단 말이냐?”

 

“Hey처럼 똑똑해지는 거죠. 그럼 우리 순이, 혼자서도 뭐든 척척 잘할 걸요? 그렇지?”

 

나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매우 두근두근거렸다. 그동안 더 똑똑한 ‘헤이로봇’을 찾으려고만 했지, 내가 ‘헤이로봇’처럼 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할머니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아이고, 아이고, 하며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할머니는 머리에 칩을 심는 걸 무시무시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냥 가벼운 뇌시술일 뿐인데.

*

엄마는 병원에서 머리에 스마트 칩을 심었다. 뇌시술은 오 분도 안 걸렸다. 나도 얼른 시술 받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예약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이 사이즈의 칩은 더욱 인기가 많았다. 앞으로 한 달은 더 기다려야 했다. 엄마는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분속 1㎞의 속도로 칩을 심다니, 정말 놀라운 걸?”

 

“분속? 그게 뭐야?”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중얼 뱉었다. 시속이니 초속이니, 그런 어려운 것들을. 평소와 아주 달라졌다. 정말로 ‘헤이로봇’화가 된 것이다. 나는 똑똑해진 엄마가 자랑스러워서 벙실벙실 웃었다.

 

하지만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자 할머니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칩을 심느라 조금 밀어져버린 머리카락을 보곤 눈을 흘겼다.

 

“에잇, 보기도 싫다!”

 

“걱정 마세요. 머리카락은 하루에 약 0.5㎜ 정도 자라니까요. 즉, 한 달에 1.5㎝, 일 년에는 18㎝.”

“뭣이라? 꼭 Hey처럼 말하는구나!”

 

할머니는 안방 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나는 엄마에게 달려가 와락 안겼다. 지금껏 보아왔던 엄마 중에서 가장 멋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왜 화가 났을까?

 

*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아니, 정확히는 많아졌다. 스마트 칩을 심은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나도 곧 ‘헤이로봇’처럼 될 수 있다.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스마트 모임’에도 가입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 칩을 심은 똑똑한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서 교육, 경제, 정치 등 어려운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도 ‘스마트 모임’에서 특히 수학교육에 대해 말을 했다. 그러느라 가끔 집에 늦게 들어왔고, 하루 종일 집을 비우는 날도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은 예전의 엄마가 그리워지려고 했다. 그래서 엄마한테 찾아갔다.

 

“엄마, 요즘 기분이 어때?”

 

“글쎄”

 

“칩 심었으니까 하루하루 행복하지 않아?”

 

“순이야, 나중에 엄마하고 같이 떠날래?”

 

순간 가슴이 철렁하였다. 갑자기 떠난다는 말을 하다니, 문득 떡볶이 집에서 마지막으로 본 Hey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엄마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을 이어 나갔다.

 

“세상에는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래서 스마트 모임에서 항상 고민했어. 칩을 심지 않은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지낼 것인가라는. 하지만 도저히 답이 없는 거야. 그래서 결국 떠나기로 했어. 순이야, 너도 같이 가자.”

 

“안 떠나고 같이 살면 안 돼?”

 

나는 떠나지 말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때 할머니가 안방에서 나왔다.

 

“허구 헌 날 로봇한테 의존하더니, 이럴 줄 알았다.”

 

“정말 답답하다니까. 이래서 칩 안 심은 사람하곤 말이 안 통해.”

 

엄마는 내 팔을 잡아끌었다. 할머니는 손주까지 머리에 칩은 못 심는다고 말했다. 나는 원래라면 얼른 똑똑해지고 싶었겠지만, 어딘가로 떠나자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자꾸 예전의 엄마 모습이 그립기도 하고, 단지 똑똑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뭔가가 잘못된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안 갈래.”

 

*

 

세상은 조용해졌다. 머리에 칩을 심은 똑똑한 사람들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아서. 엄마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스마트 모임의 사람들도 이제 보이지 않았다. 떠나지 말라고 말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뉴스에서 스마트 칩의 부작용이라든가, 앞으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칩을 심고 떠난 가족과 친구들을 그리워했다. 나 역시 엄마가 그리웠다. 하지만 어떻게 엄마를 되찾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의견을 서로에게 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할머니가 말하던 것처럼 학교에 가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헤이로봇’도, ‘스마트 칩’도 없는 지금은, 학교에서만 배울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면 사라진 사람들과 로봇을 찾을 방법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내 말에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주었다. 곧 학교가 만들어졌다. 약 육십 년 만에 생기는 학교였다. 그곳에 가면 또래 친구도 있을 테고, 인간 선생님도 있을 것이다. 다들 사라진 사람들을 열심히 찾으려고 하겠지. 나는 책가방을 어깨에 메었다. 할머니는 내 뺨을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순이야, 너무 무리하지 마렴. 엄마는 천천히 함께 찾아보자. 그러다보면 좋은 날이 올 거야.”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