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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비극이 예약된 사람들

경기도 9만 가구 '반지하 비극' 예약… "비주거로 전환해야"
'침수 취약층' 대책 시급

 

오늘도 9만 반지하 세대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유례 없는 폭우로 경기도 곳곳에서 반지하 침수피해가 발생하고 있어서다. 

 

자식들에게 말도 못했어요. 속상해할까봐…

10일 오전 수원시 호매실동의 한 다세대 주택. 반지하에 거주하는 신모(70대)씨가 계단에 쪼그려 앉아 쓰레받기로 물을 퍼 나르고 있었다. 집 내부엔 침수 피해 흔적이 선명했다. 장판은 마르지 않아 축축했고, 접착력이 약해진 벽지는 부풀어 있었다. 젖은 곳을 닦는 데 쓰인 수건이 집 안 곳곳에 널려 있었다.

신씨는 "자정부터 화장실, 베란다, 창문으로 물이 들어와 발목까지 찼다. 부인이랑 잠도 못 자고 어제부터 물을 퍼 날랐다"며 "한평생 남의 집 월세만 살다가 처음 생긴 내 집이다. 그런데 이 꼴이 났다. 속상해할까봐 자식들에게 말도 못했다"고 말끝을 흐렸다.

 

"한평생 처음 생긴 내 집인데…"
수원 호매실 다세대 주민 망연자실
축축한 장판에 벽지 부풀어 올라

 

 

같은 날 찾은 성남시 태평 2동의 한 반지하 계단, 흙탕물이 가득 찬 대야를 들고 계단을 오른 남정열(63)씨가 곧 물을 바닥으로 뿌렸다.

단칸방에서 작은 모자공장을 운영하는 박혜숙(60)씨가 남편 남씨와 함께 반지하 위로 빗물을 퍼내고 있었다. 박씨는 일하던 중 감전사고로 중증 장애를 얻은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15년간 공장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폭우로 부부의 공장은 빗물에 잠겼다. 모자 재료로 쓰일 천은 물에 젖어 망가졌고 바닥은 흙탕물로 엉망이 됐다.

박씨는 "어제 저녁까지 물을 퍼내고 갔는데, 오늘 와보니 또 물이 발목까지 차 있었다"며 "적어도 한 달은 운영을 못 할 텐데 이걸 다 어쩌면 좋을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물을 나르다 허리를 다쳤다는 박씨는 연신 절뚝거리면서도 물을 퍼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노동자 하산(31)씨는 침수피해로 인해 반지하 방에서 1층으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안양시 박달1동의 반지하 주택가에서 만난 하산 씨는 "어제 출근도 하지 못하고 물을 퍼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내가 임신 8개월인데, 많이 놀라서 걱정된다"며 "반지하에서 피해를 겪고 나니 다신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사를 가려 하는데, 생활고가 심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道 피해 44% '반지하 주택'
"공공매입 활용 지상거주 유도를"

 

경기도는 도내 반지하 주택 세대가 모두 8만7천914세대로 전국의 4분의1에 달한다고 10일 밝혔다. 지난 2016년부터 2020년 8월까지 발생한 도내 반지하 침수 피해는 모두 1천775건으로 전체 주택 침수 피해의 44%에 해당한다.

피해를 막기 위해 하수 설계 지침을 바꾸고 반지하를 비주거용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현행 하수 설계 지침은 30년간 가장 많이 내린 비의 양에 맞춰 대응할 수 있게 설계됐다"며 "최근 100년에 한 번 올 비가 연이어 내리는 등 기후변화가 심각해진 만큼 하수 설계 지침을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지하에 사시는 분들은 대체로 취약계층이다. 장기적으로는 도심의 빈집을 공공이 매입해 반지하 주민들이 지상 주택에서 거주하도록 정책을 만들어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이자현·수습 김동한·수습 김산기자 naturelee@kyeongin.com